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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Apr 08. 2020

승객과 승무원으로 만난 그와 나

가장 어색했지만 설레었던 비행

2008 년 6월  GMP(김포공항)- CJU(제주)


매번 하는 비행이지만 오늘은  기분이 좀 묘하다.   비행이 결혼하기 전 마지막 제주비행인데 비행기에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너무 어색할 거 같아서 절대 그가 타는 걸 하지 않았는데 내가 비행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해서 함께 했다.  제주비행은 거의 만석인데 내가 비행하는 이날은  큰 기종이라 자리가 많이 남아서 직원 티켓이지만 마음 편하게  탈 수 있었다.  그에게 탑승권 받으면 좌석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고 난 브리핑을 하러 갔다.  


브리핑 후 그에게 좌석번호와 함께 문자가 와서  비행기 탈 때 동료들과 나눠먹을 간식거리를  부탁했다.  기내 도착해서  엽서를 꺼내 짧게 편지를 써서 그의 좌석 앞에 꽃아 두었다.  


드디어 보딩이다. 난 L2도어에서 탑승권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저기에 양손 가득 먹거리를 들고 걸어오는 그가 보인다.  갑자기 웃게 될까 봐 감정 컨트롤한 후 탑승권 확인 후 자리를 안내했다. 서로 어색한 상황이지만 나름 재밌었다.


이제 데모 시연(안전사항)을 해야 해서 왼쪽 통로 쪽에 데모 킷을 가지고  준비했다. 나는 왼쪽 통로였지만 가끔은  그가  있는 오른쪽을 보면서 데모 시연을 했다. 그때서야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서로 멋쩍은 웃음.. 그리고 이륙 준비를 하는데 그가  큰 봉투  개를 나에게 내민다. 제주 한 시간 비행인데 이렇게나  많이  종류별로  다양하게 사온 그의 배려심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바로 겔리로 와서 과자의 출처를 동료들에게 알렸더니 사무장님이 왜 얘기 안했냐고 하면서  그가 있는 쪽으로 포지션을 변경해주셨다.  


서비스가 시작됐다. 이제 그에게 서비스할 차례이다.

손님 , 어떤 음료 준비해드릴까요?
 시원한 음료와 따뜻한 커피와 차 준비되어 있습니다.


역시나 그는 커피를  주문했고  커피를 주면서 두 번째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승객이 계속 나를 쳐다봤다. 나중에 그에게 들은 기인데 데모할 때 나는 그를 쳐다보았는데 그 승객분은 내가 본인을 보고 웃었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가 이륙 전에 나에게 먹거리를 줬을 때  "승무원에게 선물 줘도 되요?" 라고 물어봐서 결혼할 사이라고 했더니  어떻게 하면 승무원과 결혼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내가 그를 보느라 그쪽을 봐서 승객분이 오해하셨나 보다. 그렇게 티가 날  정도로  쳐다보지 않았는데  마음은 숨길 수 없나 보다.


이렇게 짧은 비행인데 왜 이리 길게 느껴지고 어색한지 모르겠다.  겔리에 가니 후배들이 러브스토리 물어보며 신났다. 중학교 때 친구였다가 남자 친구 된지는 별로 안됐다고 했더니 정말 그게 가능하냐면서 질문이 쏟아졌다. 이땐 이런 얘기가 가장 재밌긴 하다.


그와 승객과 승무원으로 만난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이었다. 비행 후 그에게 비행이 어땠는지 물어봤는데  정말 많이 놀랐다고 한다.

네가 이렇게까지 잘 웃는지 몰랐어!말투도 정말 부드럽고 서비스 마인드도 장난 아니던데! 나한테도 그렇게 좀 웃어주라! 완전 정배우야! 정배우!

그럼요! 전 공사구별이 확실한 프로 승무원이니까요.ㅋ


이렇게 하는 건 당연한 건데 그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란 표정이었다. 솔직히 내가 승무원으로 일하는 모습을 처음 봤으니  그럴 만하다. 많이 어색했지만 즐겁고 설레었던 비행이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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