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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Apr 10. 2020

비행기 안을  BAR로  착각하신 걸까?

손님이 50유로를 주셨다.

오늘은  러시아 모스코 비행이다.   

특히 이 비행은 랜딩 하기 전까지 술을  요청하시기 때문에 바 카트( bar cart)가  동나는 날이다.  그래서  만취 승객도 많아서 항상 그런 부분을 브리핑 때 사무장님이 한 번 더  상기시켜주신다. 특히  면세점에서 구매한 술은 절대 기내에서 드시면 안 되는데 승객분이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승무원이 술을 제한할 경우  가끔 직접 구매하신 술을 병째로 드시는 분도 계시기 때문에  항상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오늘은 비즈니스 승객이 많지 않았는데  내가 담당한 구역의 승객 두 분이  이륙 전인데도 이미  약간 술에 취하신 것 같아서 계속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사무장님께 보고 후 승객 프로파일을 한번 확인했는데 특이 사항은 따로  없었다.


드디어 서비스 시작이다.

역시나  두 분 다 보드카를 계속 찾으신다.  그래서 스미노프 보드카와 앱설루트 보드카 중 어떤 걸 원하시는지 물어보니 스미노프를 달라고 하시면서 돈을 내신다.

전히  탑승 전  술을 마신 바로 생각하시는 건가?

하지만  저비용항공사에서는 음료수를 판매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손님 , 비행기 안에서는 모든 음료가
무료로 제공됩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이미 술을 많이 드신 것 같으니 이번 보드카까지만 마시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씀드리고 사무장님께 두 분 상태에 대해 보고했다.


역시나  콜벨이 울려서 가보니  술을 한잔 더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보드카보다는  무알콜 칵테일을 어떤 신지 여쭤봤는데 무조건 싫다고 하셔서 보드카를  베이스로 한  스크루 드라이버를 추천해드렸다. 

대신 보드카를 아주 적은 양으로 하고 얼음과 오렌지 주스를  많이  넣어서 드렸다.

 그런데  다시  콜벨이 울렸다. 보드카의 양이 너무 적다고 하시면서 더 넣어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 칵테일은 이 정도의 보드카를 넣어서 마셔야 맛이 좋다고 말씀드렸지만  맛이 없다고 하시면서 다른 술을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기내에서는 지상에서보다 훨씬 빨리 취하기 때문에 승객의 건강을 위해서 알코올음료보다는 다른 음료수를 드시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더니 알았다고 하시며 시원한 물을 달라고 하셨다.  생각보다 빨리 수긍을 하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겔리로 돌아왔는데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승객이 면세점에서 구매하신 보드카를 꺼내서 드시려고 하셨다. 그래서 사무장님께서 직접 가셔서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바로 알았다고 하시면서 넣으셨다.

보통 술에 취하면 폭력적이 되거나 소리를 지르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은 취하셨는데도 전혀  그런 부분이 없어서 어려움 점은 없었다.


또  콜벨이 울린다. 보드카를 마시고 싶다고 하시며 돈을 주신다.  이분은 그전에 있었던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말씀드렸다. 기내에서는 무료로 제공되지만 지금 많이 취하신 거 같으니 다른 음료수를 드시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신다.  그리고 한동안 잠잠하다가  다시 콜벨이 울린다.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랜딩 할 시간이 됐다. 


그래서 내리실 때 인사를 드리는데 갑자기 내 주머니에 뭔가를 넣어주시며  러시아어로 쓰빠씨빠( 고맙다)라고 하시면서  가셨다.  그때는 정신없어서 주머니를 보지 못하다가 손님들 다 내리신 후  확인하니 50유로가 있었다.  

이걸 나에게  왜 주신 거지?
이분은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기내를   BAR로  생각하신 걸까?
이 돈은 나에게 주신 팁인가?

비행기에서 내리시면서  돈을  주시는 승객이  처음이었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 일 없이  비행이 무사히  끝난 것만으로도  감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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