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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May 04. 2020

영어가 내 인생을 차지하는 비율

영어를 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난 언제부터 영어를 좋아했지?


니엘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내가 어렸을 때 영어를 좋아하게 된 계기와  어떻게 공부했는지 생각해봤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따로 영어 수업이 없었고 특별활동으로 일주일에 한번 있었다. 그때 한번 수업에 참여한 후 영어에 관심이 생겼다.


중학교 때 처음 제대로 영어를 배웠다.

이때는 영어회화보다는 문법 위주였기 때문에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정확하게 아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무조건 영어단어를 죽어라 외웠다. 그랬더니 영어점수가 잘 나왔다. 공부한 만큼 영어점수가 잘 나와서 영어가 좋아졌다. 영어에 흥미가 생기니  공부하는 게 재밌었다. 우리 반에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가 있어서 동기부여가 많이 됐다. 그렇게 영어를 좋아하니 영어점수가 잘 나왔고 중3 때 담임선생님이 외고를 추천해줘서 외고 입시를 준비하게 됐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아예 시험을 못 보게 됐다. 지원서를 써놓고 접수를 깜박했다. 예비 소집일 날  갔다가 접수가 어제 끝났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런 경우가 나 말고 또 있을까...

 일부러 영어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멀리하려고  했고 수학을 잘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봐도 난 문과 머리인데 이과를 가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성적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화학과에 입학했는데  전공수업이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편입 준비를 했다.  편입을 하려면 영어를 해야 되는데 역시 영어를  공부하니 너무 재미있었다. 완전 문법 위주의 편입영어라서 문제은행식으로 계속 문제를 풀었다. 하지만 편입은 학점이 중요한데 학점이 좋지 않으니 아무리 영어를 잘 봐도 합격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전공 공부를 할 자신이 없어서  영어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다. 이곳을 가니 내가 영어를 얼마나 엉터리로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난 소통하는 영어가 아니라 시험을 보기 위한 영어만 했기 때문에 처음에  시드니에서 정말 고생했다. 이때부터 서바이벌 영어가 시작됐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무조건 영영사전으로 찾아가며 공부를 했고  맥카페 가서 단어로 질문하지 않고 문장 형식으로 주문했고  외국인 친구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내가 주문을 했을 때 못 알아들어서 메뉴를 보며 말한 적도 있었는데 영어가 조금씩 늘면서  메뉴 없이 말해도 소통이 됐다. 그래서  이곳에서 더 공부하고 싶었는데 IMF 때문에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빨리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학교로 복학 후 공부를 하면서 보습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화영어로 회화를 공부하면서 그 회사에서 강사 제을 받아서  회화강사로도 일하게 됐다. 아침 6시부터 전화영어 수업을 3시간 하고 오후에 학원 수업 후 다시 저녁엔 전화영어 수업을 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영어회화를 하고 문법을 가르치나 보니 영어실력이 더 많이 늘게 됐다.  그러다 좋은 기회로 대학교 4학년 때 필라델피아에 캠프 카운슬러로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일을 하면서 다시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리고 졸업 후 미국에 유학을 가고 싶어서 토플 공부를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학원비를 아끼기 위해 학원에서 조교를 하면서 열심히 준비를 했고 나름 좋은 점수가 나왔는데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포기하게 됐다. 그래서  외국에 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보는 중  나라에서  지원하는 외국 취업 장려 프로그램 중에 하나인 외항사 취업에 신청했다. 영어면접에 합격하면 6개월간 무료로 외항사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너무 좋은 기회였다. 이 면접에 합격해서 수업을 듣고 감사하게도 한 번에 에미레이트 면접에 합격했다. 그렇게 두바이에서 4년간 비행을 하게 됐다.

대한항공에서 비행 후 미국에서 3년간 거주하면서 석사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토플은  PBT에서 IBT로 바뀌었고 스피킹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 어렵다는 GRE를 공부했다. GRE를 하면서 내가 영어를 공부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단어가 너무 생소하고 어려웠다.  임신 중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 토플 점수가 있는데도 다시 토플을 다시 공부했고 TESOL certificate도 이수했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  UF의 SPECIAL EDUCATION (특수교육)과 ESOL에서 어드미션을 받았는데 이젠 또 다른 문제로 입학을 못하게 됐다. 열심히 6년간 비행한 이유가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이때 많이 힘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또 영어로 일을 시작했다. 외항사 경을 살려서 승무원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했고 이젠 니엘 아카데미에서 니엘쌤 으로 영어면접 코칭을 하고 있다. 이렇게 대부분의 내 인생은 영어와 함께 했다.  영어 덕분에 이렇게 꾸준히 일을 할 수 있었다.  전공은 0.001%도 살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영어를 하면서 살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영어를 잘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바로  영어에 대한 관심과 흥미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영어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제는 내 딸이 영어를 즐기면서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미지출처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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