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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Sep 03. 2020

똥 손인 듯 금손 같은 내 손

이젠 황금손이 되어볼까?

엄마, 쿠키 모양이 이상해요!!
 하트 모양 맞아요??

딸에게 이쁜 하트 모양의 쿠키를 만들어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번에도 망쳤다.
나는 왜 이리 손재주가 없을까? 완전히 똥손이다...

나는 투박하고 손가락이 짧은 못생긴 손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내 손에 불만이 많다. 나도 남들처럼 요리도 잘하고 싶고 쿠키도 맛있게 굽고 싶고 뜨개질도 잘하고 싶은데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요리는 레시피대로 시도해봤지만 맛은 그저 그렇고 쿠키도 구워봤는데 모양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내 똥손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뜻하지 않게 어쩌다 보니 화학과에 입학했다. 과 특성상 실험이 많은데 특히 나에게는 분석화학실험시간이 너무 괴로웠다. 필수 전공과목이라 무조건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었다. 스포이트로 시약을 아주 극소량을 넣어가며 색깔의 변화를 관찰해야 했다.

하지만 내 손은 그 작은 차이를 감지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실험을 반복했다. 두 시간이면 끝날 실험을 4시간 넘게 한 적이 있었다. 섬세하지 못한 똥손 때문에 내 몸이 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자꾸 똥손이라고 해서 정말 똥손이 돼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금손' 일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투박한 손이지만 난 손이 정말 빠르다.
'빠른 손'은 한정된 비행시간 안에 모든 임무를 끝내야 하는 승무원에게 중요한 자질이다.
그래서 비행할 때 겔리( 부엌)와 면세품 판매를 도맡아서 한 적이 많았다. 겔리 오퍼레이터(겔리를 담당하는 승무원)를 하는 걸 대부분의 크루들이 주저한다. 손이 빨라야 할 뿐만 아니라 무거운 것들을 옮겨야 하고 기내식과 모든 음료와 술의 개수도 정확하게 세야 한다. 앉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승객의 요청이 있으면 바로바로 준비하고 음식 카트도 빨리 준비해야만 서비스를 제시간에 나갈 수 있었다. 기내식을 데우다가 손에 화상을 많이 입었고 카트를 정리하다가 많이 긁히기도 했지만 내 금손 덕에 잘 해낼 수 있었다.

면세품 판매 또한 손이 많이 간다. 면세품의 상품명과 개수를 하나하나 다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현금으로 계산할 시 거스름돈을 환율에 따라 계산해야 한다. 특히 2시간 미만인 단거리 비행인데 면세품 판매가 잘 되는 도시는 정말 지옥행이라서 대부분의 크루가 면세품 판매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승객과 판매하며 소통하는 것이 재밌고 계산을 빨리할 수 있어서 자원해서 했다. 판매 후에는 면세품 개수와 판매액을 다시 확인 후 리포트를 작성해야 한다. 돈과 연관된 일이라 많이 신경이 쓰이지만 빠른 손 덕에 단 한 번의 오차 없이 이 역할 또한 잘 해낼 수 있었다. 이쁘지 않고 투박한 손이지만 승무원으로서 일할 때 내 손은 그야말로 금손이었다.

이렇게 고생한 손을 자꾸 똥손이라고 구박하지 말고 아껴줘야겠다. 내 손은 '빠름 빠름'에 특성화돼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더 살리고 섬세함을 보완하면 '황금손' 이 될 수 있으니까.




이미지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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