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니작가 Sep 14. 2020

너 리포트 받을 각오해!

대화가 통해야 소통을 하지...

"띵똥" L4에서 콜이 왔다.
" 줄리아, 오늘 만석이니까 준비 잘하고 미드 겔리(mid- galley)에서 00번째 줄까지 서비스하면 돼"

정말 정신없이 바쁜 인도 000 비행이었다. 이 비행은 일등석 없이 비즈니스와 이코노미로 운항했다.
에미레이트는 두티가 정해서 나오지 않고 브리핑할 때 크루들이 정한다. 비즈니스 크루 중 한 명이 미드 겔리를 담당하는 겔리 오퍼레이터 ( 주방 책임자)을 해야만 한다. 즉, 비즈니스 크루이지만 이코노미에서 겔리를 책임 진다. 이 역할을 한번 맡아본 크루는 웬만해서는 정말 피하고 싶다. 나 또한 그랬다. 역사나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아무도 하겠다는 크루가 없었다. 인도 비행의 겔리 담당... 고난과 역경의 비행이 될게 뻔하니까. 누군가가 제발 자원하길 바랐지만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이런 분위기가 불편했다. '그래. 그냥 내가 하지 뭐. 금방 끝나겠지..'​
이 선택이 화근이 될지 생각도 못 했다. 난 동료들이 주저하는 두티를 맡은 거뿐인데 말이다.

이코노미는 부사무장이 후방 겔리(Back galley)를 담당하기 때문에 미드 겔리를 맡은 나와 부사무장과의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 서비스 처음부터 끝까지 부사무장과 인터폰으로 정보를 주고받아야만 했다.


이륙 사인 후 바로 오븐 스위치를 켜고 기내식을 데웠다. 좌석벨트 사인이 꺼진 후 바로 카트 준비를 했다.

" 우린 지금 카트 준비 다 됐는데 지금 나가면 될까?"
" 내가 오븐 켜는 걸 깜박해서 10분 정도 더 걸릴 거 같으니까 너네 먼저 나가도 돼"

기내식 카트가 먼저 나간 후 음료 카트가 뒤따라 나갔다. 우리가 맡은 줄까지 거의 서비스가 끝나가는데도 후방 겔리에서 카트가 나오지 않았다.

"너네 언제 나오는 거야? 뒷좌석에 앉은 승객들이 계속 우리한테 컴플레인하고 있어."
" 곧 나갈 거야. 너네 다한 거야? 그럼 너네가 우리 좀 도와줘, 너는 들어가서 겔리 정리하고 크루 2명 보내줘."

이건 무슨 소리지?? 이미 그 동료들은 자기 서비스를 다 끝내고 이젠 트레이 수거를 해야 하는데 그럼 일을 두 배로 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래.. 도와가면서 해야지. 동료들도 이해해 줄 거야' 상황을 전달한 후 두 명이 후방 겔리로 갔다. 그래서 나는 겔리 정리와 함께 트레이 수거까지 했다.

그런데 다시 "띵똥" 콜이 왔다
"너네 남은 기내식 얼마나 있어? 식사를 데우긴 했는데 승객들이 차갑다고 컴플레인을 하네. 남은 거 전부 다 보내줘."
그래서 다른 크루 한 명이 기내식을 전달했다. 그런데 크루가 미드 겔리에 오자마자 부사무장 욕을 하기 시작했다.

"줄리아, 다른 크루들은 바빠서 정신없는데 걔는 신문 보고 있더라, 미친 거 아냐? "
이 얘길 듣고 설마 했다. 그런데 후방 겔리를 도와주고 온 크루 2명도 똑같은 말을 했다.

"우린 이렇게 도와주러 왔는데 걔는 커피 마시면서 잡지 보는 게 말이 되냐고?? 일을 전혀 하지 않아!!"

모든 서비스가 끝났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머리까지 아팠다. 부사무장과 대화가 필요했다. 아웃바운드가 너무 힘들어서 인바운드는 제대로 하고 싶었다.
인터폰을 한 후 후방 겔리로 갔다. 대박... 다른 크루들은 카트 정리하느라 정신없는데 부사무장은 아까 크루들이 말한 데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얘기 좀 할까? 지금 우리가 한 서비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넌 기내식 데우는 것도 깜박해서 서비스도 늦게 나왔어. 그래서 서비스 중인 우리가 승객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었어. 그리고 이미 서비스를 끝낸 크루들이 도와주러 왔는데 넌 신문 보고 있었어. 지금도 다른 크루들을 일하는데 넌 커피 마시며 쉬고 있잖아. 그리고 넌 우리에게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도 안 했어."

" 줄리아, 난 내 역할을 다 해서 쉬고 있는 거야. 넌 미드 겔리만 맡으면 되지만 난 이코노미를 책임지는 부사무장이라고. 근데 왜 네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었다. 감사하게도 이럴 땐 영어가 술술 잘 나온다. 서비스 중에 있었던 일과 동료들이 한 말을 정리해서 다시 했다.

"줄리아, 네가 지금 나한테 한 행동 다 사무장에게 보고할 거야. 너 리포트 받을 준비해."
"물론 얼마든지! 나도 너 리포트할 거야. "

말이 끝나자마자 부사무장이 바로 인터폰으로 사무장에게 콜을 했다. 비행할 때는 무조건 영어를 써야 하는데 부사무장은 그들의 언어로 소통을 했다. 둘 다 인디언이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난 미드 겔리로 돌아와서 부사무장과 대화한 내용을 크루들에게 얘길 했다.

"줄리아, 걱정하지 마, 우리가 다 백업해 줄게. 그리고 우리도 리포트할 거야."


"띵똥" 콜이 왔다.
사무장 호출이었다. 부사무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사무장은 화가 많이 나있었다. 그래서 비행하면서 일어난 일을 객관적으로 정리해서 말을 했다. 그랬더니 비행 후 디브리핑을 세 명이서 하자고 했다. 디브리핑은 특별한 문제가 있을 경우에만 진행했다. 인바운드 비행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빴다. 그리고 디브리핑을 하기로 한 장소를 갔더니 부사무장은 없고 사무장만 있었다.

"줄리아, 서로 오해한 점이 있는 거 같은데 이해해 주면 안 될까? 부사무장이랑은 내가 잘 얘기했어. 그리고 리포트는 걱정 안 해도 돼. 너도 알다시피 리포트를 작성하면 일이 많아지잖아. 우리 좋게 넘어가자."

'이건 뭐지? 난 아무런 잘못한 게 없는데 리포트를 작성하면 너네가 힘들지... 그리고 얘기하기로 했으면 당사자 간 서로 풀어야 되는 거 아닌가? 왜 사무장이 중간에 껴서 이 난리지.. 둘이 연인 관계인가?? 왜 이렇게 부사무장을 도와주는 거지??...'


욕이라도 시원하게 하고 싶었지만 말할 힘이 없었다. 비행 내내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너무 피곤했다.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비행한 느낌이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참 거지 같은 비행이었다. 다행히도 이 두 명을 비행하는 동안 두 번 다시 만나지는 않았다.
상사라고 일 안 하고 후배들만 시키고 돈은 꼬박꼬박 받아 가는 인간들 보면 정말 짜증이 난다. 아니 화가 난다. 돈 받았으면 일을 하라고 제발... 여기선 그나마 선배에게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직 후 더 높고 험난한 산이 내 앞에 놓여있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3박 4일 동안 여왕으로 모실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