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니작가 Sep 29. 2020

엄만 나를 낳은 게 신의 한 수에요!!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엄마!! 마스크 챙겼어요!"
"아 맞다!! 니엘아 좀 가져다주라!"
"엄마... 핸드폰도 안 챙겼네!"
"아... 그러네... 미안.. 그것도 좀 부탁해요!"
"엄마는 나를 낳은 게 신의 한 수라니까.. 누가 엄마를 이렇게 챙겨주겠어요!"

아침에 수업 가는데 또 딸 니엘이에게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들었다. 그런데 다 맞는 말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니엘이와 여행을 많이 다녔다. 국내 버스여행부터 국외여행까지 시간만 허락하면 어디든 갔다. 나는 성격이 급하다 보니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하려고 한다. 일을 신속하게 잘할 때도 있지만 실수할 때도 많다. 여행 가방을 싸는 건 비행하면서 매번 해왔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자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위해 준비해놓은 비상약이나 간식거리를 깜박하고 못 챙긴 경우도 있었다.. 분명 체크리스트를 작성해서 준비했는데도 호텔에 도착하면 그때야 필요한 물품이 생각났다. 이상하게도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니엘이에게 들켰다. 영리한 니엘인 내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거 같았다. 니엘인 덤벙거리는 엄마를 믿는 대신 스스로를 챙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런 엄마까지 살뜰하게 챙겼다.

다양한 나라를 여행했지만 니엘인 제주도를 가장 좋아했다. 시간이 나면 딸과 함께 그곳에 자주 갔다.
니엘 아빤 우리 둘이 여행을 자주 다녔어도 여전히 걱정을 했다. 여행 갈 때마다 꼭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한마디 했다.


"주야, 다른 건 잃어버려도 되지만 니엘인 잘 챙겨!"
" 나 니엘이 엄마라고!! 뭔 그런 걱정을 하냐고!"​
"니엘아, 엄마 잘 챙겨주라. 부탁해요!"
"아빠, 내가 엄마 잘 챙길 테니 걱정 마요!!"


아이고, 누가 엄마고 누가 딸인지 모르겠다. 부녀가 신나서 장난치며 까르르 웃는다.



제주도다. 제주공항에만 도착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버스를 타고 30분 후 호텔에 도착했다. 이 호텔은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먼저 니엘이가 원하는 수업을 신청한 후 수영하러 갔다. 수영장에 가려면 수영모를 챙겼어야 하는데 니엘이 꺼만 챙기고 내 거는 깜박했다. 수영을 자주 하지도 않는데 거금 들여 구매했다. 난 분명 수영모를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건망증이 문제다. 핑계를 대자면 비행성 치매라고 할까... 시작이 좋지 않아 불안했다. 그 다음날은 체험학습이 오전과 오후 두 번 있었다. 니엘이가 오전에 체험 학습할 동안 난 독서하는 시간을 가졌다. 3시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해서 그런지 니엘이가 많이 피곤해 보였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이고 오후 4시에 체험활동이 있어서 니엘이를 재웠다.
푹 자고 일어난 니엘이가 일어나자마자 시간을 물었다. 지금 오후 2시 조금 넘어서 더 자도 된다고 하니 수업이 2시라며 펄쩍 뛰었다. 다시 확인해보니 니엘이 말이 맞았다. 분명 14시라고 쓰여있는데 난 왜 4시라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체험 학습하는 곳으로 갔다. 다행히도 니엘이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즐겁게 수업에 참여했다. 정말 아이와 함께 있으면 있던 정신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2박 3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김포공항에 도착 후 공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시간에 딱 맞춰서 왔다. 먼저 니엘이를 태우고 뒤이어 탔다. 그런데 니엘이가 "엄마 엄마"를 다급히 부르며 뒤를 가리켰다. 뒤에는 우리의 여행 가방이 외롭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다행히 출발하기 전이라서 기사님께 말씀드린 후 버스에서 내려 짐을 챙겼다. 니엘이를 챙기느라 여행 가방을 완전히 뒷전이었다. 니엘이 아니었으면 가방 찾으러 다시 공항에 왔어야 했다. 마음고생에 몸 고생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버스 안에서 정신없이 자다 핸드폰 진동에 깼다. 니엘 아빠였다. 때마침 이번 정거장이 우리가 내려야 하는 곳이었다. 니엘이를 깨운 후 짐을 챙겨 부랴부랴 내렸다. 니엘 아빠에게 연락하려고 보니 핸드폰이 없다.
"엄마, 배낭 두고 내렸어요??"
저기서 니엘 아빠가 우리를 불렀다.
"나 어떻게 해! 폰 두고 내렸어.. 가방 통째로!"
신이 도왔다. 버스는 신호에 걸려 서있었다. 정신없이 뛰어 버스 문을 두드렸다.
"기사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가방을 두고 내려서요!!"
가방은 맨 뒷좌석에서 나를 어이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탈 때는 여행 가방을, 내릴 때는 배낭을 두고 내리다니... 정말 이번 여행은 '정신 가출한 날'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가 니엘이를 항상 돌본다고 생각했지만 니엘이가 나를 하나하나 챙기고 있었다. 지금도 덤벙거리는 엄마를  걱정하며 잔소리를 한다.


"엄마, 요가 시간 다 돼가니 준비해요! 이제 단거 그만 좀  먹어요!! 살쪄요! 엄마, 그런 거 필요 없는데 왜 사요!"
이젠 이런 잔소리가 정겹기까지 하다. 내가 정말 딸 하나는 잘 뒀다. 니엘이가 내 딸로 태어난 건 정말 신의 한 수다. 니엘이가 한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니엘아,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이미지 출처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