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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Oct 21. 2020

엄마, 나 이러다 닭 되겠어요!

모녀의  계란 사랑

"니엘아, 엄마가 가장 잘하는 음식이 뭐야?"

"울 엄마는 계란 요리는 다 잘해요! 그중에 계란말이가 가장 맛있어요."


누구라도 니엘이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답은 정해져 있다. 유일하게 니엘이에게 인정받은 음식이 계란말이다. 준비물은 계란만 있으면 되고 요리 실력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계란말이는 나에게 정말 감사한 존재다. 계란말이를 해주면 울던 니엘이가 눈물을 그쳤고 떼쓰던 니엘이가 착한 양이 됐다. 나에겐 '계란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다.


시드니에 살면서 한식이 이렇게 맛있는지 알게 됐다. 원래 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빵을 좋아했다. 이곳에 살면서 먹고 싶은 빵을 먹고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두바이에 살면서 인스턴트 음식에 빠졌다. 비행 다녀오면 너무 지쳐서 요리할 힘이 없었다. 다양한 인스턴트 국 종류를 한국 비행을 가면 사다가 쟁여뒀다. 육개장, 미역국, 시금치 우거짓국 등 기분에 따라 국을 선택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국은 바로 육개장이었다. 더운 나라에 사니 그렇게 매운 게 당겼다.

미국에 살면서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은 많은데 마트에 없는 게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요리가 늘었다. 먹고 싶은 음식은 블로그를 보며 다 만들어 먹었다. 떡과 빵을 좋아하는 나는 백설기 찰떡뿐만 아니라 단팥빵까지 다 만들어 먹었다. 지금 여기 한국은 없는 게 없다. 굳이 힘들게 만들 필요가 없다. 마트만 가면 천국이다. 먹고 싶은 모든 요리를 다 구매할 수 있다. 핑계일 수 있지만 한국에 오니 요리를 별로 안 하게 됐다. 하지만 어디에 살든 내가 꼭 해 먹은 음식이 바로 '계란 요리'였다. 이건 요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음식에 '계란이 있고 없고'가 나에게는 정말 중요했다. 어느 나라에 살던 마트에 가면 무조건 계란을 먼저 챙겼다. 하얀 쌀밥에 계란 프라이가 올라가야지만 뭔가 나를 스스로 대접하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더 좋은 날에는 계란말이를 했다. 혼자 먹지만 계란 4개로 만들어서 케첩을 듬뿍 찍어 먹었다. 나만의 소확행이었다.


결혼하고도 이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다. 니엘이가 계란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나의 영향이 크다. 밥을 줄 때마다 계란 프라이를 올려줬다. 참기름을 계란 위에 조금 뿌려주면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야채를 잘 안 먹는 딸을 위해서는 당근, 파, 양파를 넣어서 계란말이를 했다. 귀신같이 야채가 많이 들어간 걸 알지만 맛있게 먹어주었다. 가끔은 니엘이가 밥투정을 할 때는 오므라이스를 해줬다. 계란 위에 케첩으로 하트를 그려주고 이름을 써주면 맛있게 먹었다. 거의 모든 식사에 계란이 빠진 적이 없다.

갑자기 니엘이가 밥을 먹다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엄마, 아침엔 계란 프라이, 점심은 계란말이 지금은 계란찜... 엄마!! 이러다가 나 닭 되겠어요!"

그러고 보니.. 내가 이날은 좀 심했다. 아무리 니엘이가 계란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날 리포트를 쓰느라 정말 정신없었나 보다. 이제는 계란을 사용한 요리는 하루에 한 번 하거나 니엘이가 원할 때만 한다.



"니엘아 오늘은 뭐 먹고 싶어요?

"엄마, 오늘은 오므라이스 먹을래요!! 케첩으로 그림과 글은 내가 그릴 거예요!"

그럼 오므라이스 한번 만들어 볼까? 이번 오므라이스는 스팸, 김치, 양배추, 양파를 듬뿍 넣었다. 니엘이가 만드는 걸보더니 양배추를 대체 왜 넣냐고 한마디 한다.

"니엘아, 일단 한번 먹어보라니까!! 진짜 맛있다니까!"

야채를 조금이라도 먹이기 위한 엄마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 엄마! 모차렐라 치즈도 넣어줘요!" 니엘이의 요구 조건을 수용해서 드디어 오므라이스를 완성했다.

그러자 바로 케첩으로 뭔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센스 있는 니엘이가 이번엔 자기 이름이 아니라 내 이름을 쓰고 하트를 그린다.

"엄마가 요새 집에 있으니까 요리가 늘었어요! 우와.. 양배추 맛이 안 나요. 진짜 맛있는데요! 진작 이렇게 맛있게 좀 해주지... 엄마,  내일도 오므라이스 해주세요!"

이렇게 칭찬해 주고 맛있게 먹어주니 딸에게 참 고맙다. 이런 맛에 요리하나 보다. 벌써 계란 한 판을 다 썼다. 이제 마트에 계란님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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