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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Oct 14. 2020

시어머니의 사랑 덕에 냉장고는 행복 모드

어머님 감사합니다.^^


"반찬 뭐 있지?"


냉장고를 열었다. 왜 이렇게 썰렁할까... 한동안 맛있는 반찬으로 꽉 차 있었던 냉장고에 지금은 반찬 몇 가지와 유제품만 보인다. 가끔은 눈을 감았다 뜨면 마술처럼 맛있는 반찬으로 가득 채워지길 바란 적이 있었다. 매번 어머님이 월초에 니엘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주시곤 했는데 9월은 어머님이 많이 바쁘셨다. 나름 내가 유튜브 보면서 열심히 정성 들여 반찬을 했지만 울 어머님 반찬에 익숙한 딸 니엘이에게 맛있을 리가 없다. 내가 해준 반찬을 잘 먹으면 좋을 텐데 이 아이, 아빠 닮아 입맛이 까다롭다.


어머님은 요리사로 일하셔서 어떤 음식이든 뚝딱하고 만드신다. 니엘이는 그런 할머니와 어린 시절을 함께 했다.

"할머니, 저 짜장면이랑 탕수육 먹고 싶어요."


니엘이의 말에 어머님은 집에 있는 재료로 음식을 바로 만들어 주셨다. 나에게 이런 음식은 바로 '배달 각'인데 말이다. 손녀를 위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드시는데  신속하게 하시는 어머님의 능력을 난 감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방법이 없다. 니엘이가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수밖에...


"엄마, 오늘은 반찬이 뭐예요? 설마 오늘도 김밥 아니죠? 요새 매번 같은 반찬이라서 먹기 싫어요!"

"뭐 먹고 싶은데?"

"음. 점심은 계란말이랑 순두부찌개... 그리고 저녁은 치킨!"


니엘이의 반찬투정이 시작됐다. 삼시 세끼를 챙기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계란말이는 자신 있지만 순두부찌개 양념은 대기업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니엘아, 엄마가 순두부찌개 재료 다 샀으니 맛있게 해 줄게요!"

"엄마가 할 수 있어요? 나가서 먹자고 한 거였는데."

" 아니야, 엄마 할 수 있어! 엄마 한번 믿어봐!"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니엘이가 원하는 맛이 아니었나 보다..

"역시 울 엄마는 계란말이랑 계란찜을 가장 잘한다니까! 엄마 나 그냥 계란말이 먹을게요!!"


칭찬인 듯 디스 하는 내 딸... 엄마가 나름 열심히 만들 걸 아니까 못 먹겠다는 말을 못 하고 계란말이를 먹겠다고 돌려 말하는 센스... 반찬가게를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찰나 천사 같은 울 어머님이 딱 때맞춰 등판하셨다. 우리가 좋아하는 떡볶이와 잡채 그리고 두부 무침 등을 해주셨다. 니엘이는 할머니 음식을 보더니 손뼉 치며 환호를 한다. 이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며...

한동안은 어머니에게 반찬 만드는 걸 배우고 싶었다.

"안 그래도 수업하느라 바쁘고 힘든데 뭔 반찬 하는 걸 배워! 반찬은 엄마가 해줄 테니까 딸은 수업 집중해. 엄마는 잘하는 음식 만들고 딸은 수업하면 되지. 서로 잘하는 거 하자."


지금은 수업이 거의 없어서 시간이 많으니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이제는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니엘이 하루 종일 보느라 얼마나 힘들어. 그냥 엄마가 해주는 반찬 먹으면 되지. 엄마가 좀 봐주면 좋을 텐데 요새 일이 많아서 그러질 못하네. 이번 주말에는 쉬니까 딸 자유시간 가져."


어머님은 우리에게 반찬을 만들어 주실 때 너무 행복하다고 하신다. 그런 행복을 왜 자꾸 뺏어가려고 하냐면서 한소리 하신다.

"엄마가 해준 반찬 맛있게 먹어주면 그게 행복이야, 엄마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주고 싶으니까 이제 그 얘긴 그만하자!"

그래도 계속 어머님께 조를 작정이다. 지금은 똥 손이지만 잘 배워서 어머님처럼 금손이 되고 싶다.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맛있고 영양도 풍부한 '구절판'이다.

진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어머님은 밀전병과 소스까지 모든 것을 직접 만드신다. 이런 귀한 음식을 어머님은 매번 내 생일날 해주신다. 채소를 좋아하지 않은 딸도 구절판은 맛있는지 밀전병에 싸서 잘 먹는다. 정성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라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있다. 이제는 내가 잘 배워서 어머님 생신 때 해드리고 싶다. 그래야 나중에 니엘이에게도 어머님의 손맛을 알려줄 수 있으니까...


어머님이 해주신 반찬을 냉장고에 하나하나 넣었다. 냉장고에 조금씩 일용할 양식이 채워지는 모습을 보니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어머님이 해주신 반찬과 계란말이라면 니엘이에게 칭찬받을 수 있으거라 믿으며... 오늘 냉장고는 '어머님의 사랑 담은 반찬 덕'에 행복 모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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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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