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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Sep 29. 2021

이런 책이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이 책을 읽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읽을 자신이 없었다. 작가가 아빠에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간 성폭행당한 힘든 경험을 적은 마음이 저리도록 아픈 기록이다. 이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멈췄는지 모르겠다. 깊은 한숨을 쉬고 가슴을 치기도 하고 일어나 걷기도 했다.


솔직히 어렸을 때 생각이 나서 더 괴로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많이 아파서 조퇴하고 학교 계단을 내려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달려와 나를 번쩍 안아서 몸을 더듬었던 기억이 났다. 거의 실신 직전인 나는 소리 지를 힘도 없어 저항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인기척이 들리자 그 아저씨는 나를 내려놓고 후문으로 정신없이 도망갔다. 갑작스러운 일에 너무 놀라서 엉엉 울면서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만 아픈 나를 안아주시고 달래주신 후 학교로 달려가셔서 교장선생님께 내가 당한 일을 말씀하셨고 후문을 등하교 시에 만 열어 놓는 걸로 바뀌었다. 그 일이 있는 후 엄마는 내가 끝날 때쯤이면 항상 교문 앞에서 기다려주셨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사람은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럽고 흉측한 바퀴벌레가 여기저기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처럼 그런 인간들은 장소를 따지지 않고 기생한다. 더럽고 추악한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 그 어린 나이에 난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집에서 이런 몹쓸 짓을 당한 작가는 대체 어디서 쉴 수 있었을까? 집이 아니라 학교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고 방학 때가 가장 슬펐다는 그 어린아이의 상처 받은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하니 한없이 슬펐다.





수치심은 가해자에게나 던져주고 당신은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고. 먹어야 할 밥을 먹고, 자야 할 잠을 자기 바란다. 그러다 보면 당신이 겪은 일의 강도를 능가하는 당신 내면의 힘이 자연스럽게 일깨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 지금 당신이 여기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경험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이 아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가지고 무엇을 했느냐이다."  올더스 헉슬리


집이라는 공간은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엄마와 오빠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만 아빠의 폭력성에 죽을까 봐 숨죽여 살았다니 이 어린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게다가 이런 아빠가 목사라니 할 말이 없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태어난 동물, 아니 개도 자기 새끼는 안 건드린다고 하는데 기가 찬다. 그 어린 나이인 6학년 때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는데도 아빠의 짐승 같은 그 짓과 폭력은 계속됐다고 한다. 게다가 수능 전날 호텔 스위트룸을 잡아 놓고 딸과 함께 샤워하자는 아빠를 딸이 경멸하는 눈으로 보자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허리띠로 온몸을 때렸다는 글을 읽고 더 이상 화를 참기가 힘들어 혼자 욕을 했다. "야, 네가 사람이냐? 진짜? 개만도 못한 쓰레기 같은,  버러지 같은...." 수능 전날은 정말 예민하고 푹 쉬어야 하는데 작가는 아빠에게 맞고 굶었다고 한다. 기가 막힌다. 지금  딸 니엘이가 5학년이다. 나에게 니엘이는 아직도 너무너무  자그마하고 어린 아이다. 그런데 그 아빠라는 작자는 어리고 작은  아이에게 그런 몹쓸 짓 아무런 죄책 감 없이 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오늘 다 읽으려고 했는데 내일 읽어야겠다. 숨이 자꾸 막혀 몰아쉬게 된다.


이외수의 책에서 봤다. 나뿐인 놈이 나쁜 놈이라는 표현. 내가 그런 것 같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고, 내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고, 남들이 힘들다고 하면" 내가 이렇게나 많이 힘들었는데, 너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지금 힘들다고 하는 거야?"라고 반문하며 날 선 칼을 휘둘렀다. '어디 감히 나보다 힘들다고 지랄이야?" 하는 유치한 비교를 했다.


고통의 기준은 뭘까? 사람마다 겪는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고통의 크기와 강도는 다르다. 가끔은 나보다 불쌍하고 힘든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의 경험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작가는 이런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치유를 받기 위해 자기만의 처방전을 만들었다.

노출하기: 힘들었던 일을 혼자서 끙끙대며 아파하지 않고 상처를 노출하는 것

표출하기: 욕하기, 싸우기, 따지기

투자하기 : 내 수입의 범위 안에서 나에게 투자하다.


자기만의 처방전으로 자신을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힘든 일이 있으면 세상을 원망하며 산다. '왜 나만 이런 가정에 태어난 거지? 왜 저런 거지 같은 아빠가 내 아빠인 거지?'  이렇게 신세 한탄하며 세상을 증오하지 않을까? 그런 아빠를 용서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저자는내면의 자유를 위해서 아빠를 용서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얼마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까... 하지만 저자는 더 이상 과거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현재를 살길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싶어 용서를 선택했다.


딸에게 그 아빠라는 사람은 평생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적어도 사죄하는 마음으로 딸의 축복을 빌어주면서 말이다.




성폭력은 갈수록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다. N번 방 사건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그 어린 미성년자 여자아이들에게 대체 어른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단지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다. 작가는 숨겨왔던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밝히며 힘들었던 경험을 말하는 이유를 우린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문제는 단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절대 바뀌지 않는다. 혹시 주변에 이런 고통으로 힘든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일어설 수 있게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우리가 함께 노력한다면 세상은 분명 변할 거라 믿는다. 이젠 이런 끔찍한 성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런 책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성폭력' 이란 단어조차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눈물도빛을만나면반짝인다#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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