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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Jul 23. 2023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이토록 평범한 미래]


 좋아하는 작가 하면 바로 떠오르는 3명이 있다. 그중 한 분이 김연수 작가다.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고 나서부터 한동안 김연수 작가 책만 읽었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다 보니 이 책의 두께는 아주 얇게 느껴졌고 8개의 단편소설이라 며칠이면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을 읽는데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다.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의미를 생각했다. 편하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책 읽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특히 진주의 결말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진주의 진심은 정말 무엇일까. 범죄심리학자인 그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그녀는 교묘한 방식으로 나를 비난하고 조롱하고 있었다. 자신이 피해자의 죽음을 바랐다고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를 사랑했다고 말하고 내가 자기 마음을 읽어내려고 그렇게 애썼음에도 분석은 완전히 빗나갔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메일에 남긴 '진심'이라는 단어를 한참 바라봤다.


누군가에게 내 진심을 인정받고 싶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만큼 본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일까. 어렵다. 이 부분을 읽고 난 후 어떤 내용이 나올지 궁금했다. 정말 유진주의 진심이 먼지 정말 아빠를 죽인 건지 알고 싶었다


 제가 공책에 받아 적은 끔찍한 글을 읽고 난 뒤에도 저를 이해해 준 사람은 아빠뿐이었어요. 사람의 마음을 연구한다는 선생님도 저를 이해하려고 애썼을 뿐이지 이해하진 못하셨잖아요.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진주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남들의 시선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들은 단지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니까. 그들에게 본인은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니까



 세상을 살면서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나 자신을 위해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아빠는 제가 쓴 문장들에 줄을 그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어. 하지만 이건 네가 아니야. 너는 이 생각들에 줄을 긋는 사람이야. 네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겁먹지 말고 가만히 지켜봐. 그다음에 너는 그 생각에 줄을 그어 지울 수 있어. 지금은 공책에 써서 지우지만 나중에는 머릿속에서부터 지울 수 있어. 어떤 생각을 지우고 어떤 생각을 남길지는 네가 선택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그게 너의 미래가 될 거야.


 끔찍한 글을 읽은 보통의 부모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렇게 딸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나조차도 이렇게 침착하게 대처하지 못했을 거 같다.


  가끔은 나쁜 생각을 통제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끊임없이 부정적이고 이상한 생각이 든다. 멈춰야 하지만 생각은 돌고 돌아 내 머리 한구석을 차지하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생각을 선택하긴 어렵다.  


  진주는 아빠의 말들을 떠올리며 좋은 생각들을 선택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빠가 안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힘들어하는 상황에 아빠의 죽음을 맞이한다. 진주는 존속상해치사죄로 조사를 받지만 무죄로 풀려난다. 이때 집에 불을 질렀다. 이유는 없고 이해만 있다고 했다.


 보통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왜 일어났는지 이유를 찾으려고만 한다. 상황을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진주는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한 건 아닐까. 자신과 아빠가 함께한  공간에서 벗어나 이제는 어떤 이야기에서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자신을 희망의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믿는다.



'진주의 결말'  기억에 남는 문장

     나는 인간에게 숨겨진 진심이 따로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유죄이든 무죄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나는 성직자가 아니라 심리학자다.   


     이상한 글을 써대는 저를 보고는 이상한 애야.라고 간단하게 이해해 버렸겠지요. 아빠는 제가 쓴 문장들에 줄을 그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어. 하지만 이건 네가 아니야. 너는 이 생각들에 줄을 긋는 사람이야. 네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겁먹지 말고 가만히 지켜봐. 그다음에 너는 그 생각에 줄을 그어 지울 수 있어. 어떤 생각을 지우고 어떤 생각을 남길지는 네가 선택하는 거야. 마음껏 생각하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생각을 선택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그게 너의 미래가 될 거야.   


     저는 그 어떤 이야기도 아니에요. 저는 혼돈 그 자체입니다. 카오스 그 자체예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아깐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마치 치매에 걸린 것처럼 사전 경고도 없이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는 신의 마음을 이해한 사람처럼 살아보기로 한 거예요. 그래서 불을 질렀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어요. 이해만 있었죠.  소방관들이 우리 집의 유리창을 깨는 걸보고 제 속이 얼마나 시원했게요. 가슴이 얼마나 벅차올랐게요. 저는 비로소 자유를 얻었거든요. 그 순간  전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워진 거예요.   

#이토록평범한미래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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