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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Aug 28. 2023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에게 빠져있어선 지...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눈에 들어는 왔지만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서점에 갈 때마다 이 책이 가장 먼저 눈에 보였고  베스트셀러인 이유가 궁금했다. 드디어 마음먹고 이 책을 읽었다.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부러웠다. 빨치산인 아버지의 이념 때문에 인민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는 정지아 작가에게 사랑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었고 이 힘든 세상을 이해하기보다는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라며 모든 걸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보여주셨으니까.


 책의 첫 문장이 충격적이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아버지의 사망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왜 하필 전봇대일까 생각했었다. 전봇대는 전선이나 통신선을 잇기 위한 기둥이다. 정지아 작가는 아버지는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통을 위한  전봇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했다. 작가의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빨치산인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민을 위해 희생하는 분이다. 주인공인 아리는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했지만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낀다. 아버지가 그런 세월을 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빨치산의 딸이라서 빨치산의 가족이라서 아버지는 가족에게 미움을 받지만 그런 아버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인민을 위해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리를 아꼈던 길수 오빠는 아리의 아버지 즉 작은 아버지가 빨치산이라서 육사에 합격하고도 입학하지 못했다.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작은 아버지가 빨치산이라서 길수 오빠의 창창한 잎 길은 먹구름이 드리운다.  당연히 가족과의 사이도 멀어진다.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작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니 아버지 때문이라도 화가 날 텐데. 작은 아버지가 빨치산이라서 꿈이 좌절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연좌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에 태어난 게 죄라면 죄랄까. 그렇게 저렇게 살아온 길수 오빠는 작은 아버지인 아리 아버지 조문을 오고 당사자도 죽음에 가까워진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가로막은 작은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길수 오빠는 어떤 마음으로 왔을까. 삶에서 점점 멀어지는, 죽음과 가까워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길수 오빠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삶은 참 불공평하다고 소리치고 싶지 않을까. 허무한 인생이었다고, 아니면 작은아버지 나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 위해서 왔을까.



 아리의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작은아버지는 아리 아버지가 자기형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한 후 할아버지는 총살을 당하게 된다. 작은아버지는 그때부터 빨치산인 형을 평생 원망한다. 형이 빨치산이라서 할아버지가 초등학생이었던 작은아버지 앞에서 죽음을 당하게 되니 그 고통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 형이 아니라 원수라고 생각될 수밖에. 작은아버지 탓도 아니다. 단지 자기 형을 자랑스러워해서 생긴 일이었으니까. 그런 형의 장례식장에 온 작은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소설 속의 인물들의 감정을 공감하다 보면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한편 나에게 이런 일이 안 일어나서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내 인생도 참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참 인간은 이기적이다.


다만 당하기로 따지자면 내가 더 당했다. 아버지는 선택이라도 했지, 나는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빨갱이가 되기로 선택하지 않았고, 빨갱이의 빨로 태어나겠다 선택하지도 않았다. 태어나 보니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었을 뿐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군들 빨갱이의 딸을 선택하겠는가. 선택할 수만 있었다면 나는 당연히 이부진이나 김태희의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p76


 어쩜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이리도 잘 아실까. 부모 복도 타고나는 건가 보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태어나 보니 엄마와 아빠가 있었으니까. 누군들 금수저가 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다시 엄마 배로 들어갈 수 없으니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밖에. 그런데 그런 부모 때문에 계속 차별을 받고 힘들게 살아가게 되면 부모라도 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리는 그런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부모 자식의 연은 천륜이니까.


 하지만 가끔은 그런 천륜을 끊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내가 이 집안에서 안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니까. 좀 나은 조건의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내 삶은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리는 그런 핑곗거리를 찾지 않고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버지니까.


 아버지는 그럼 제목대로 해방됐을까. 자신의 이념대로 살며 힘들기도 했지만 인민을 위한 삶을 살며 보람을 느끼며 살았다고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나름 그렇게 평가하지 않았을까.



 오십 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p249



 난 여전히 아빠를 잘 모른다. 아빠의 안 좋은 면만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좋은 면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아니 일부러 찾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식과 아내에게는 그저 그런  남편이고 아버지이지만 타인에게는 참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아빠를 보면 가끔은 괴리감을 느낀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새는 경우도 있는가 보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정말 좋은 면을 타인이 발견했거나. 여전히 미스터리다.


 나에게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빠는 내가 성적이 좋으면 가장 기뻐했다. 사업을 하는 아빠와 엄마는 주말부부였고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아빠를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중2 때부터 열심히 공부했다. 매번 우등상을 받아서 아빠를 미소 짓게 했다. 나름 아빠의 사업은 그때는 나쁘지 않았다. 딱 거기서 멈췄어야 하는데 욕심을 부려 확장을 했고 힘든 상황이 됐다. 집안의 상황이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런 아빠는 우리에게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고 엄마와 우리를  너무 힘들게 했다. 그런 아빠를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건 내가 망가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멍청한 생각을 했을까 싶다. 일탈하려고 했지만 나에겐 가출은 무섭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불효는 공부를 놓는 거였다. 솔직히 공부할 수가  없었다. 집안 분위기는 항상 무거웠고 숨이 막혔다. 자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 새벽에 숨 쉬고 싶어 교회를 간 적이 있다. 고 1 때까지 상위권이었던 난 가장 중요한 시기인 고 2 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멍청한 생각을 한 나를 한대 쌔게 때리고 싶다. 아리처럼 더 정신 차리고 살았어야 했는데.  아빠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했어야 했는데. 참 무지했다. 진짜 최고의 복수는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서 자립하는 거였는데 말이다. 그 2년의 시간이 나에겐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어떻게든 성인이 돼서 집을 나가고만 싶었다. 덕분에 난 해외 생활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시드니어학연수를 시작으로  두바이에서 4년간 비행 생활 후 미국에서 3년을 거주하게 됐다. 맞다. 아빠 덕분이다. 어떻게든 집을 나가고 싶었고 자립을 최대한 빨리하고 싶었으니까. 감사하다. 나를 이렇게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동기부여를 줘서.



  

 아리는 아버지의 유골을 아버지에게 좋은 추억이 있는 곳에 뿌린다. 중앙교, 반내골, 삼오시계방, 오거리 슈퍼까지. 오거리 슈퍼의 다문화 노란 머리 소녀와 아리의 아버지는 맞담배를 피우는 사이였다. 그 아이는  '할배가 아줌마 궁뎅이를 두들겨서 아리가 겡찰보다 군인보다 무서웠다고' 말한 장소로 아리를 데려갔다. 아버지의 남은 유골을 쥔 채 우는 아리의 마음이 느껴졌다. 빨치산인 아버지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 아리는 알았으니까. 남에게는 빨치산이고 빨갱이일 뿐이지만  아리에게는 유일한 아버지이니까. 정지아 작가는 마지막 부분에 다문화 노란머리소녀가 등장하는 이유가 사회의 가장 약자인 소녀와 소통하는 어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끝까지 아버지는 인민을 위한 삶을 살았다.


 사투리가 난무해서 뭔 말인지  뜻은 모르겠는데 어떤 감정인지는 느껴졌다. 작가가 왜 끝까지 사투리를 고집했는지 읽고 나니  알 거 같다.



 

 나도 내 아버지가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다고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아버지라서 무작정 이해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다.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아버지의 사정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아주 조금이 조금씩 커지면 마주 보며 웃으며 대화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럼 얼마나 후련해질까. 미움때움에 마음이 항상 무거웠다. 이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다. 나도 해방되고 싶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노력은 이제부터 해보려 한다.  나도 작가님처럼 아버지의 이해하며 감사하다고 언젠가 말할 날이 오길 바라며 말이다.



#아버지의해방일지

#정지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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