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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작가 Mar 04. 2020

Jack, you are my savior!!

플로리다에서의 1년

 플로리다의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작은 동네인  게인스빌에서 3년을 살았다. 하지만  이곳에  정착하기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우 님 (남편)이 학교에 갈 때 따라가서 난 도서관에서 영어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학교가 정말 커서 공부하다가 졸리면 나와서 산책을 하거나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빵도 먹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재밌는 한국 드라마나 예능 찾아서 보면 하루가 이렇게 끝났다. 한 달 동안은 이렇게 살만했는데 두 달 세 달 지날수록 답답해지면서  비행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비행이 약간 중독성이 있어서  그렇게 힘들고 하기 싫었었는데 시골에서 한두 달 지내다 보니 사람 많은 공항도 그리워졌다. 그래서 우 님한테  한국 가서 다시 비행하고 싶다고 했더니 온 지 두 달 됐는데 벌써 그러면 안된다고  하면서 시험 끝나면 어디든  놀러 가자고 했다. 그리고   조금만 있으면 익숙해질 거니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여줬다. 그런데 계속 일을 하다가 일을 안 하니까 이렇게  갑자기 주어진 많은 시간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경제생활을 못하니  내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항상  내가  벌어서  썼는데 우 님에게  생활비를  받는 것도  너무  어색했다. 여기에  배우자 비자로 왔기 때문에 일도 수없어서  커뮤니티에서 하는 영어 수업에  나가서 새로운 외국 친구들도 만나고  같이 수업 후 점심도 함께 먹으면서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을 했다. 최대한 집에 있지 않고 외국인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지냈는데 이것도 한 달 정도 되니  또 무료함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싸이월드에 들어가서 친구들이  비행 가서 찍은 사진 보니 또 갑자기 우울해졌다.


 '나도 거기 가서 저거 먹고 싶은데!! '

 '아 맞다! 거기 정말 이뻤는데!'

' 난 이 시골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정말 돌돌이(캐리어) 끌고  어디라도 가고 싶었다.


내가 너무  무료해하니 우 님이 며칠 정도 마이애미에 가자고 했다. 거기서 해변도 가고 헤밍웨이 집이 있는 키웨스트도 가자고 했다. 게인스빌은 학교만 있는 동네라서 정말 조용한데 반해서 마이애미는 정말 매력적인 도시였다. 두 번 정도 와봤는데도 다시 와도  너무 즐거웠다.

마이애미 해변에 가서 유람선도 타고 이쁜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정말 오래간만에 꿀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키웨스트에 가서 모히또도 마시고 헤밍웨이 집도 구경했다. 


게인스빌에는 한국음식점이  없어서 마이애미에서 먹고 싶었던 한국음식도 종류별로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게인스빌에서 정말 천천히 갔던 시간이 여기서는 정말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조용한 게인스빌로 돌아오니  매일 똑같은 루틴이 반복됐다. 그러던  어느 날  우 님이 학교 가기 전에 랩탑을 주더니 이거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니까 이거 보면 시간이 금방 갈 거라고 했다. 드라마가  바로 유명한 잭 바우어가 나오는 ' 24'였다.


'24'는 24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을 시간 단위로 만든 드라마라서   한 리즈마다 2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매편마다 긴장감을  느끼면서  정말  초집중해서  즐겁게 봤다. '멈춤 '하고 화장실에 가도 되는데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랩탑을 들고 갈 정도로 몰입감 진짜 최고였다. 


 24 모든 시리즈를 섭렵하자 우 님이 또 다른 미드를 추천해준다.  뉴욕 맨해튼 최상류 층 자녀들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인   Gossip girl ( 가십걸)이었다.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은  난  플로리다가  아닌  뉴욕에  있는 것 같았다. 

 역시  미드가  최고다!!


또 다 봤다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색다른 드라마를 보여준다. 이번엔 Desperate housewives( 위기의 주부들)였다.

 내가  드라마를 다 볼 때쯤 이면 우 님은 항상 내가  뭘 좋아할지 찾아보고 바로바로 보여줬다.


난  플로리다에 와서 외국인과 대화를 한 게 아니라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소통하며  하루하루를 서바이벌했다.   한국에 간다는 말도 안 하고 미드에 빠져 사는 날보고 어떻게든 재밌는 미국 드라마를 찾으려고  노력한  우 님이 정말 고생했다. 미국 드라마 덕분에  무료하고 조용한  게인스빌에서 1년을 무난히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24'의 잭 바우어를 티브이에서 보면   너무 반갑고 고맙다.

Jack,  you are my savior!!
 Thank you a m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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