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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파워 Dec 26. 2022

'잘 들어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말 그대로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더라구.

"잘 들어주는 것에 대한 정확히 정의가 뭐야?�"

이전 연애에서 대화를 할 때 충분한 교감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위 질문은 대화를 잘 하는 것에 대한 주제로 상대방과 이야기를 했을 때 받은 질문이다.

미안하게도(?) 당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대략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은데 말로 정의하고 표현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은 잘 듣는 사람’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흔히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응, 그래서?’, ‘맞아, 그렇지’ 등으로 장단을 맞추는 사람을 잘 듣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잘 듣는 사람이란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할 것 같은 것을 앞서서 질문하여, 상대방이 즐겁게 이야기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 <영업맨들이여 절대 부탁하지 마라>, 가가타 아키라 지음 (김창경 옮김)

‘잘 듣는다’는 게 대체 뭘까?

이를 한참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전 연애를 할 때 이 고민을 많이 했었다. 상대방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대화를 할 때 심리적으로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항상 있었고 그것이 연애에 마침표를 찍은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 같다.

그는 분명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느낌이나 혹은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의지가 된다는 느낌은 부족했다. 그래서 왜 그럴까? 하고 혼자 고민도 하고 또 용기를 내서 그에게 이 주제를 꺼내서 대화해봤던 기억이 있다. 아쉽게 당시 해결책은 생각해내진 못했지만.


당시에 정확한 고민은 이랬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데 왜 대화가 충족되지 않는 느낌이지? 뭐가 우리 대화의 부족한 점일까? 대화의 코드가 다른 건가? 아님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


그래서 그 당시에는 ‘잘 들어주는 것 = 듣고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것’이라고 얼추 정의를 내렸었고, 우리가 서로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경험이 달라서 깊은 공감대 형성이 어렵나보다 하고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최근까지도 ‘잘 듣는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선뜻 내리지 못했었는데, 그러던 도중 우연히 한 책에서 이 구절을 만났고 속으로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그 구절을 살펴보자.

“잘 듣는 사람이란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할 것 같은 것을 앞서서 질문하여, 상대방이 즐겁게 이야기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


이 구절을 읽으면서 ‘아, 내가 그래서 그때 대화의 빈자리를 느꼈었구나.’ 하고 공감이 갔다. 단순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잘 들어주는 게 아니라고 이 구절에서 명확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묵묵히 들어주고 리액션을 잘 해주는 것도 대단하고 어려운 일인 건 분명하지만, 잘 들어준다는 것은 그 이상으로 정말 어려운 것이었구나.’ 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연애 당시의 우리 대화를 돌이켜보면, 이야기를 묵묵하게 잘 들어주는 것과 리액션은 존재했지만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할 것 같은 것을 앞서서 질문하는 포인트는 없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지속적인 갈증을 느꼈던 게 아닐까.


이 글귀를 읽으면서 연애 당시의 내가 느꼈던 대화에서의 갈증 포인트를 깨달으면서 동시에, 현재 그럼 나는 잘 들어주는 사람인가? 에 대해서도 성찰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정의를 내린 이후에.

그럼 여기서 또 생각해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에 대한 것이다.

How에 대한 부분이다.


잘 들어주는 능력은 결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분명히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부분이고, 노력할수록 잘 들어주는 능력도 커진다고 믿는다.

앞서 이야기 한 잘 들어주는 사람에 대한 정의를 두 문장으로 쪼개어보면서 잘 들어 주기 위한 요건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이제부턴 뇌피셜이다.)



정의를 두 개로 쪼개면 다음과 같다.

“잘 듣는 사람이란

1)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할 것 같은 것을 앞서서 질문하여,

2) 상대방이 즐겁게 이야기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할 것 같은 것을 앞서서 질문한다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할 것 같은 것을 앞서서 질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 다음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1.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존중

2. 호기심 갖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다.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할 것 같은 것을 질문할 수 있으려면 당연하게도 상대방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관심사를 아는 방법은 굉장히 많은데, 간접적으로는 상대방의 SNS를 살펴보는 것이 있겠고, 직접적으로는 상대방과 대화를 시작할 때 직접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방법이 있겠다. 요즘 취미는 무엇이고, 쉴 때는 무엇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등등. MBTI와 같이 가벼운 주제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상대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동시에, 상대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벌어지는 대화 속에서 비중을 차지하려는 대신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서 들으려는 태도가 중요할 것이다.


두번째로 필요한 것은 호기심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 그 이야기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더 알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갖는다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대화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흥미로운 대화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관련 없는 주제에 호기심을 가지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머릿속 편견과 귀차니즘을 던져버릴 필요가 있다. 음. 이 부분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에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건 나도 어렵다)


2) 상대방이 즐겁게 이야기하게 해준다

그럼, 그 다음으로 상대방이 즐겁게 이야기하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필요한 것은 적절한 리액션과 꼬리 질문이라고 본다.

우선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주제를 잘 이끌어낸 후에, 그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고 그 대화를 통해 교감을 나눌 수 있기 위해서는 적절한 리액션과 꼬리질문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리액션과 더불어 꼬리질문을 하는 것이다. 단순히 리액션으로 끝나는 순간 대화가 단절되는 느낌,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는 느낌이 들기 쉽다. 따라서 그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인 후에 더 알고 싶은 포인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흠 그럼 꼬리 질문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건 경험과 내공이지 않을까 싶다. 해본 사람이 더 잘하듯이, 처음에는 어렵더라도 계속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꼬리 질문을 던지다보면 점차 늘지 않을까?

나중에 좀 더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도 글로 적어보겠다.



아무튼. ‘대화’라는 것이 하루에도 수십번 벌어지기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 같다.

그렇지만 대화를 그냥 할 수 있는 것과, 대화를 잘 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정리하면,

잘 들어주는 사람이란 1) 상대방이 이야기하고 싶어할 것 같은 것을 앞서서 질문하여, 2) 상대방이 즐겁게 이야기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잘 들어 주기 위해서는 우선 대화를 시작할 때에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선행되어야 하고 동시에 왕성한 호기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화를 하는 도중에는 적절한 리액션과 꼬리 질문이 수반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요건들이 충족될 때 비로소 서로 대화를 통한 교감을 형성하고 공감대가 탄탄하게 세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를 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화를 잘 하는 것은 어렵다. 대화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며,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본다.


이렇게 정리해보고 나서 이전 연애를 돌아봤을 때,

우리 대화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리액션은 있었지만, 더 나아가 새로운 주제에 대한 호기심과 꼬리 질문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화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공감대 형성에 한계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이 모든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못되었던 것 같고.


이전 연애를 통해 ‘잘 들어주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생겨서 감사하고, 그에 대한 정의를 얻게 되어 기쁘다. 물론 그 정의는 앞으로 또 바뀔 수 있겠지만.

더불어 이 정의를 바탕으로 더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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