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한낮의 열기 때문인지 약국 안에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에어컨이 무용지물이 될 만큼 너무 더웠다. 환자들이 많이 몰려드는 시간대라서 정신없이 투약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그쪽을 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바닥에 엎드려서 주변 환자들에게 둘러싸여 계셨다. 혹시나 심정지일까 봐 군대에서 배웠던 CPR 순서와 119를 되뇌며 다급히 뛰어 나가 아주머니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심혈관계 증상을 보이시진 않으셨고, 좁은 공간에 퍼진 향수로 인한 알러지 반응이 온 것이었다. 밀폐된 약국 안에 계속 계시게 놔둘 수 없어 약국 밖 복도로 부축하여 모시고 나갔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혹시나 약을 잘못 받으실까 성함과 받을 약이 맞는지 꼼꼼히 확인한 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상황판단을 했다. 의식은 있으시고, 말도 하시긴 했지만 너무 힘들어하셔서 엠뷸런스를 불러 응급실로 모셔드리려 했다. 하지만 응급실이나 엠뷸런스 내에 있는 소독용 알코올에도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갈 수가 없다고 힘겹게 말하셨다. 차가운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계시게 놔둘 수도 없고, 혼자 몸을 가누실 수도 없는 상태인 것 같아 댁까지 모셔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이 몰리는 상황인지라 내가 자리를 비우면 다른 직원들이 힘들어지게 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약을 주면 그만이고 환자가 어떻게 되든 약사가 할 일은 끝이겠나. 다른 사람들이 안 한다면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국장님께 이런 설명을 하고, 아주머니와 함께 택시에 올랐다. 다행히 근처에서 빵집을 운영하시는데, 거기로 가면 된다고 하셔서 무사히 모셔드리고 빵집 직원들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나왔다. 택시비를 주시겠다는 말을 뒤로한 채 황급히 다시 택시를 탔고, 약국으로 돌아갔다. 혹시 몰라서 여쭤본 번호로 괜찮아지시면 답을 해주시고 쾌차하시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날 저녁, 감사하다는 문자가 왔고 사례를 하고 싶으시다길래 정중히 거절했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이틀 뒤, 출근을 하니 조제실 안쪽에 못 보던 빵들이 많이 보였다. 전날 밤에 그 아주머니께서 다양한 페스츄리와 빵들을 가지고 오셨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몇 년간 제빵을 배우시고 한국에 돌아와 빵집을 여셨는데, 원래부터 알러지로 평생 살아오신 분이라고 했다. 그날따라 약이 모자라 우리 약국 위에 내과에서 약을 타서 가려던 중에 그렇게 알러지 반응이 와버린 것이라 했다. 약국의 직원분들과 약사님들은 나 덕분에 빵을 먹게 됐다고 좋아하셨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맛은 너무 훌륭했다. 빵 덕분인지 뿌듯함 덕분인지 그날은 일이 힘들지 않았다.
아직도 그분이 보내신 문자를 잊지 못한다. '한국에 돌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라는 말. 알러지라는 병태생리와 치료하는데 쓰이는 무수한 항히스타민제, 면역반응 조절제들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지겹도록 배웠다. 하지만 그날, 그분께 이런 지식들은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평생을 고생하며 사신 분이 경험적으로 체득한 지식들은 내가 전하는 지식보다 더 광범위할 수 있다. 그분이 필요했던 것은 공감과 도움의 손길이었다. 사람들은 병에 걸리면 낫길 원하고, 병을 고치는 데에는 약이 필요하다. 약사는 이런 약에 대한 전반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몸의 병을 낫게 하는 약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도 다스릴 수 있는 '약'을 주는 것. 그것이 이 시대에 약사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배웠다. 내 작은 행동으로 세상과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향기와 거룩함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신앙인으로서, 약사로서 큰 기쁨이자 업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