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통해 넓어지는 세상
2일 저녁.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과 저녁을 먹은 뒤 각자 페이스북을 들여다보았다. 마침 홍덕 님이 보여서 그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있잖아, 이 총각 얼마나 부지런한지 몰라. 부모님을 도와 포도농사짓는데 공부도 되게 열심히 해. 내가 홍덕 씨 때문에 ‘한마디로 닷컴’을 알게 됐잖아. 더운데 일하면서도 이어폰 끼고 공부하나 봐. 영어도 하고, 최근에는 중국어도 하는 것 같아. 영어도 하나만 듣는 게 아니라 ‘비틀비틀 잉글리시’도 듣는가 봐. 예전엔 그래픽 디자인 일을 했대.”
“그래?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네. 자기 말 들으니 사람이 진국인 것 같네. 가만있자, 금요일에 우리 회사 창립기념일인데 화성으로 놀러 갔다 올까? 포도도 사고.”
“그래요? 나도 뭐 금요일엔 별일 없으니까 좋아요. 자기 덕분에 여행도 하고, 홍덕 님도 볼 수 있겠네.”
“나한테 주소 주면 내가 주변에 뭐가 있나 검색해 볼게.”
기다리던 금요일이 왔다. 아이들 학교 가는 시간에 맞춰서 우리도 준비하고 떠나기로 했는데 여자 사람들은 그렇게 금방 떠날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10분 간격으로 나가는 아이들 밥 먹이고, 우리도 밥 먹고, 설거지까지 하다 보니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갔다. 부랴부랴 준비를 끝내고 경기도 화성을 향해 출발했다. 모처럼 남편과 떠나는 여행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남편도 회사일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게 되니 좋은 모양이었다.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1시간 49분 걸린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잠깐 쉬어 가기로 했다. 남편이 꽁꽁 언 아이스커피를 한 병 사가지고 왔다. 찔끔찔끔 녹아 나오는 커피를 번갈아가며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계속했다. 혼자 운전하면서 가는 길은 지겹고 졸리지만 둘이서 가는 길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훌쩍 지나갔다.
이윽고 홍덕 님 집 앞에 도착했다. 아무도 안 계시는 것 같아 홍덕 님께 전화를 걸었다. 3분 후에 도착한다는 얘기를 듣고 포도밭 주변을 기웃거리다 포도밭 안에 들어가 구경을 했다. 사진에서 보았던 포도밭을 실제로 보게 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 홍덕 님이 여기서 이렇게 일을 했구나!’
줄줄이 심어져 있는 포도나무 위로 검은 비닐이 바닥에 덮여 있고, 나무 사이사이엔 비닐들이 날아가지 않게 벽돌들이 꼭 누르고 있었다.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포도밭이 참 예뻐 보였다. 조금 있으니 홍덕 님 아버님이 트럭을 몰고 오셨다. 어머님을 모셔 와야겠다며 다시 가셨다. 바로 후에 홍덕 님이 나타났다. 집에 들어가자고 하셔서 사양하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께서 내오신 포도를 맛보았다. 정말 싱싱하고 맛있었다. 홍덕 님과 홍덕 님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우리 부부는 잠깐 동안이지만 이야기꽃을 피웠다. 홍덕 님은 약간의 장애를 갖고 있었다. 다리를 조금 절었다. 초등 5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28일 만에 깨어났다고 한다. 그 후로 또 한 번의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를 다쳐 절게 되었다고 한다. 차들이 서로 먼저 가려고 하는 바람에 홍덕 님이 크게 다쳤다고 한다. 사고를 당해 걷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내가 홍덕 님 칭찬을 했더니 그의 부모님은 홍덕 님이 어서 장가를 가야 한다며 걱정을 하셨다. 나는 아직 때가 아닌가 본데 조금 있으면 홍덕 님을 알아보는 좋은 배필이 꼭 나타날 것이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수확철을 맞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분들을 한가한 우리가 마냥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덤으로 챙겨 주시는 포도를 차에 싣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 왔다.
다음 목적지는 홍덕 님이 가르쳐 준 함초가 있는 갈대밭. 경비행기가 있는 갈대밭에서 젊은이들 몇 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화보를 찍는 모양이었다. 더위를 무릅쓰고 일하는 청년들이 대단해 보였다. 이젠 우리가 그 뙤약볕으로 나갈 차례였다. 작열하는 폭양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나가보기로 했다. 함초를 본 적이 없는 우리는 한동안 멍했다. 갈대밭에 있는 붉은 풀들이 함초인 줄 알고 그것을 뜯기로 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확인해 보기로 했다. 홍덕 님께 사진을 보내서 물어보았다. 함초는 초록색이라는 답장이 왔다. 다시 검색해 보고 함초가 많이 있는 곳을 탐색했다. 함초는 생각보다 쑥쑥 잘 뽑혔다. 그러나 무더위에 장사 없다고 몸에 좋은 함초가 지천으로 있다 해도 그곳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는 없었다. 얼굴은 벌겋게 익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차 안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니 살 것 같았다.
시원한 물을 한 모금씩 마시고 제부도를 향해 달렸다. 물이 빠져나간 도로를 자동차로 달려 해수욕장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잠깐밖에 머물지 못했다. 너무 더워서 햇볕에 오랫동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배트맨, 헐크 등 각양각색의 복장을 차려입고 수신호로 호객행위를 하는 식당가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나야만 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시화방조제. 휴게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파라솔이 있는 벤치로 나갔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러기들과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망중한을 즐겼다. 오랜만에 탁 트인 바다를 보니 참 좋았다. 오랫동안 그곳에 앉아 있다가 전망대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아주 좋았다. 10.3m의 조차를 극복한 난공사였다는데 가히 감탄할 만했다. 시원한 전시관을 둘러보는 것도 아주 좋았다. 불볕더위로 용광로 같은 밖에 비하면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전시관 안은 천국이었다.
휴게소를 지나 차를 타러 가는데 안데스 지방에서 그들의 고유 음악을 들고 그곳까지 와서 연주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었을까. 심금을 울리는 이색적인 음악과 그들의 모습에 사진사 기질이 발동했다. 카메라는 아니었지만 휴대폰으로 근접 촬영을 시도했다. 연주단의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흥을 돋우며 제스처를 취해 주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찰칵찰칵 찍어댔다. 그런데 빛의 방향이 맞질 않아 조금 어둡게 찍혔다. 그렇지만 보정작업으로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언젠가 외국 공연단이 한국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해 한 푼도 못 받고 본국으로 되돌아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서 CD를 두 장 샀다. 그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면서.
우리의 여행이 여기서 끝나는가 싶었는데 만나야 할 사람이 한 분 더 있었다. 나의 페친이셨는데 남편의 학교 선배님이기도 하셔서 남편의 페친도 되시는 분이었다. 박사님의 회사를 둘러보는 영광을 누렸다. 촌각을 다투며 열심히 일하시는 느낌이 들었다. 바쁘신데 괜히 시간을 빼앗은 것 같은 생각이 들자 너무 죄송했다. 그런데 맛있는 저녁까지 사주셨다. 다음에 대전에 내려오시면 그땐 우리가 맛난 것을 대접해드려야 할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둘이서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내가 머리를 흔들며 잠을 자는 바람에 옆지기 혼자서 고독을 씹으며 운전을 했다. 홍덕 님께 도움이 될까 해서 주문받아 갔던 포도를 배달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남편과의 당일치기 여행은 홍덕 님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해, 근교를 여행하며 함초도 채취하고, 제부도와 시화방조제도 구경하고, 박사님을 만나 유익한 얘기도 많이 나눈 뜻깊은 여행이었다. 이젠 우리의 관계도 SNS를 통해 넓어져 간다. 내가 사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바운더리가 넓어지고 있다. 정보를 나누고, 삶도 나누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면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렇지만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떤 친구를 만나고 사귀느냐 하는 것은 오롯이 각자의 몫이다.
그나저나 우리 홍덕 님이 올 가을에는 좋은 사람 만나 알콩달콩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