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채 만한 김치냉장고가 들어왔다. 낭군님께서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푸사 대형 냉장고를 선물하셨다. 내년에는 아들 둘이 대학을 다니게 되니 학비 부담도 있고 해서 올해 사는 게 맞겠다면서. 그래서 지금 우리 집엔 엄청 큰 냉장고가 두 대나 있다. 하나는 767L짜리 일반 냉장고, 또 한 대는 551L짜리 김치냉장고 되시겠다. 알뜰한 당신인 나는 지금까지 123.3L짜리 김치냉장고를 쓰고 있었다. 황토색 김치통이 8개 들어가는 뚜껑형 냉장고다. 오래된 김치냉장고 때문에 불이 났다는 뉴스가 돌면서 불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까지 잘 돌아가는 멀쩡한 냉장고를 버리기가 뭣해서 지금까지 썼다. 알뜰하게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꽤나 오랫동안 쓴 것 같다. 1995년에 모 회사에서 김치냉장고를 본격적으로 출시하기 시작했는데 우리 집은 아이들이 생기고 살림 규모가 커지면서 장만했으니 적어도 17년은 쓴 것 같다.
나는 자타 공인 알뜰 주부다. 우리 언니가 인정하고, 남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입을 옷이 별로 없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언니는 그것이 한이 되었는지 철철이 옷을 잘 사 입는 편이다. 그에 비해 나는 옷이 별로 없는 편이다. 나보다 더 옷이 없는 남편이 이 말을 들으면 반기를 들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나는 우리 언니보다 옷이 적은 건 사실이다. 어느 날 우리 언니가 무슨 말 끝에 내게 말했다. 아마 그때도 옷 얘기를 하면서 했던 말 같다. “그래, 우리 윤경이가 많이 알뜰하지. 그렇지만 옷도 좀 사 입고 그래라. 홍 서방 퇴직하면 옷도 못 사 입어.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지. 요즘엔 퇴직하기 전에 가전제품도 다 바꾼다고 하더라. 퇴직한 후에 고장 나면 목돈 들잖아.” 전화 통화를 끝내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퇴직하기 전에 가전제품을 다 바꾼다’는 말이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현명한 주부는 남편이 퇴직하기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김치냉장고를 바꾸는 일이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바야흐로 겨울나기 준비로 김장을 담가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김장하기 전에 김치냉장고를 바꿔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했다. 잘 돌아가는 냉장고를 버리기는 아깝고, 바꾸자니 큰돈이 들게 생겼다. 남편에게 살며시 냉장고 얘기를 꺼냈다. “2년 후에 이사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 그때까지 냉장고를 쓰면 좋겠는데 지금 냉장고가 사용하기엔 조금 작고, 화재 위험도 있다고 하고, 아무개네 냉장고 보니까 참 좋아 보이더라.”라고 했다. 그 말속엔 다분히 김치냉장고를 큰 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의미가 듬뿍 담겨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아주 심플하게 말했다. “생각해 보자.”라고. 나는 절반의 승인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대화를 나눈 후 남편은 김치냉장고를 예의 주시하는 눈치였다. 두세 가지 모델을 검색해 캡처한 것을 카톡으로 날려 보냈다. 어떤 것이 좋겠냐고. 당연히 나는 용량이 제일 큰 것이 좋겠다고 답장을 날렸다. 알았다, 그것으로 주문하겠다고 했다. 며칠 후, 왜 냉장고가 안 오느냐고 채근했더니 배송은 2주 후에나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2, 3일 내로 배송을 해 주겠다고 했다. 가만히 있으면 세월아 네월아 했을 터인데 다그친 보람이 있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이고, 우는 아이가 젖을 얻어먹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냉장고가 들어오던 날. 집에 있던 아들들도 신이 난 것 같았다. 냉장고를 본 작은 아들이 한마디 했다. “엄마, 기분 좋으시겠네요.”, “그래, 좋다. 너는 안 좋으냐?” 생각보다 큰 냉장고를 보니 전에 쓰던 냉장고와 비교가 되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미 마음은 새 냉장고에 애정을 듬뿍 보내고 있었다. 무사히 집까지 안전하게 배송해 주신 기사님들께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얼른 감과 사과를 깎아 지퍼백에 담아, 가면서 드시라고 드렸다. 평소보다 물량이 많아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나처럼 김치냉장고를 들이는 집이 아주 많은 모양이었다. 새 냉장고 사용법을 간단히 설명한 후 기사님들이 떠났다. 2시간 정도 가동한 후 냉기가 돌면 그때부터 사용하라고 했다.
새 냉장고에 김치통과 음식물들을 다시 집어넣으며 친정 엄마 생각을 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아버지와 함께 시골 분교에 들어가 사실 때 기억이 났다. 사택이 없어서 학교 바로 옆 명자 언니네에 살 때였다.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방학 때만 그곳에 갔었다. 엄마는 시원한 우물물에 김치를 담가 놓으셨다. 식사 시간이 되면 김치통을 묶은 밧줄을 끌어올려 김치를 꺼내셨다. 그때 먹었던 시원한 물김치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냉장고는 없었지만 좋은 재료와 우리 엄마의 뛰어난 요리 솜씨, 시원한 우물물이 환상적인 김치 맛의 비밀이었겠다 싶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을 하니 코끝이 찡해진다. 나도 좀 요리를 하는 편이긴 하지만 엄마의 요리 솜씨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내가 담근 김치는 어떤 때는 조금 잘 되었나 싶을 때도 있고, 이건 아닌데 싶을 때도 있다. 담글 때마다 김치 맛이 다르다. 나도 우리 엄마처럼 음식 솜씨가 좋으면 좋겠는데 아직 갈 길이 먼 것일까.
지난주 금요일엔 우리 집에서 목장 모임을 했다. VIP를 모시고 저녁식사를 했는데 김치 냉장고를 보신 권사님이 냉장고를 쓰다듬으며 그러셨다. “이 냉장고 욕심나네.” 우리 모두 한바탕 웃었다. 에너지 소비효율 1등급, 전기료 연 26,000원, 땅속 보관 기능, 덩치는 크지만 여러모로 효자 상품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내내 부러워하시던 권사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조만간 권사님 댁에도 집채만 한 김치 냉장고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이제 내게는 맛난 김치를 담가 매일 낭군님의 입을 즐겁게 해 드릴 일이 숙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