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동났다. 솔직히 말하면 쌀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난 추석 때 어머님이 주신 쌀이 아직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남편이 퇴근할 시간에 맞춰 밥을 하려고 하는데 분명히 있어야 할 쌀 한 자루가 없었다. 앞뒤 베란다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밥을 지으려면 적어도 50분은 걸리는데 남편이 퇴근할 시간은 다가오고 당황스러웠다. ‘어디서 쌀을 구하지? 쌀 사러 갈 시간도 없는데...’ 낭패였다.
조금 있으면 퇴근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내가 나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니 퇴근하는 길에 농협에 들러 쌀을 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잠시 후 남편이 쌀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아, 퇴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엄청 많더구먼. 미리미리 좀 사놓지 그랬어!” “쌀이 한 자루 있는 줄 알았지 뭐야. 근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기한테 부탁했어. 시간도 없고 다른 것도 해야 해서 나갈 수가 없었어. 미안해.” 그 시간대에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 줄 몰랐다. 남편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이 몹시 미안했다.
쌀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내가 가족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밥을 지었는지 입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쌀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밥을 해댔으니까. ‘신종 코로나 19’ 때문에 나는 정말 부지런히 밥을 지어 먹였다. 매일 뭘 먹어야 할지 그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그동안 못 해 먹었던 요리들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TV에서 보았던 것들을 네이버에서 검색해 만들어 먹기도 하고, 나중에는 메뉴 돌려막기에도 한계가 있어서 아는 동생네와 서로 음식을 바꿔서 먹기도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으레 3월이면 개학을 해서 아이들은 학교에 갔어야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학교에도 못 가고 집안에만 콕 박혀 지내야 했다. 사상초유의 사태를 맞아 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은 특이한 졸업식을 하고(졸업식 없이 사진관에 가서 졸업사진을 찍었다는 아이도 있다), 입학식도 없이 온라인 수업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마침내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하다 못해 우리 집 아들 2는 군대라도 가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신검 날짜가 연기되어 신검도 받지 않은 마당에 어떻게 군대에 갈 수가 있단 말인가!
코로나 19는 우리의 삶을 한 번에 바꾸어 놓았다. 학생들을 학교에 갈 수 없게 만들었고, 직장인들에게는 재택근무가 보편화되기도 했다. 마스크 쓰는 것이 생활화되어 여성들은 마스크로 온통 얼굴을 가리게 되니 화장을 안 해도 되어서 편하다는 말이 돌았다. 심지어는 갈 데 없으니 안 씻는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확진자’라는 말에서 ‘확.찐.자’라는 말이, 많은 감염자를 발생하게 한 ‘신천지’에서 ‘살.천.지’라는 말이 파생되는 웃픈 현실도 발생했다. 집에 머물러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우울증에 걸리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외출 자제, 운동 부족, 집콕의 결과 나의 몸은 살 천지가 되었고 마침내 D라인 몸매가 되고 말았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심하게 위축시키고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인간이 멈추자 지구가 건강해졌다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깨끗해진 공기다. 위성에서 바라본 지구는 푸른빛을 띠는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최악의 대기오염 국가인 인도에서는 푸른 하늘이 나타났는데 인도 북부의 잘란다르 주민들은 200㎞ 밖의 히말라야 다 울라 다르 산맥을 맨눈으로 봤다고 한다. 한국도 겨울철 미세먼지 농도가 지난해보다 27%나 줄었다고 한다. 또한 인간의 활동이 줄어들자 자연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도 중서부 나비 뭄바이의 샛강에 무려 15만 마리가 넘는 홍학 떼들이 찾아들고, 인도 해변에 올리브 바다거북 80만 마리가 돌아와 둥지를 틀었다고도 한다. 관광객이 줄어든 '물의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는 선명한 에메랄드빛을 되찾았고, 인간 활동이 줄어들자 도시의 소음도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평범했던 우리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의료진들의 헌신과 봉사에 감사했고, 의료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전 세계가 마비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극도의 불안과 긴장감 속에서 지옥 맛을 봤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마도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한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찮은 바이러스 하나에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 한 치 앞도 모르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 같다.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우리의 숙제가 참으로 많다.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하며 조금 더 겸허하게 인생을 살아가라는 신의 경고는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