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과 자존감

by 장윤경

우리 집에 뚱뚱한 녀석이 한 명 있다. 녀석은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움직이는 걸 아주 싫어해서 구조적으로 살이 찔 수밖에 없다. 얼마나 게으른지 밖에 나갈 일이 없을 때는 며칠이고 꼼짝을 않고 집에만 있다. 침대와 휴대폰만 있으면 된다. 때 되면 나와서 밥 먹고, 화장실 가고, 필요할 때 거실에 나와 한 번씩 어슬렁거리다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는 게 고작이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나의 기도제목은 이랬다. ‘하나님, 우리 아버님처럼 다리가 길고 늘씬한 아이를 보내주세요.’ 시아버님은 키가 후리후리하시고 멋진 분이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딱 아버님처럼 훤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남편이 그리 키가 크지 않은 편이어서 키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태어난 우리 집 장남은 다리는 길고, 몸은 약간 마르고, 코는 오뚝하고, 귀는 쫑긋한 채 우리에게로 왔다. 아이를 본 시고모님의 둘째 아들의 말이 생각난다. “이야, 얘는 오뚝한 코와 귀가 압권이네!” 한마디로 잘생긴 아들이었다. 늘씬한 다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기도 응답을 제대로 받았다고 아주 좋아했다. 그렇지만 녀석의 입이 짧은 것이 문제였다. 먹을 것을 보면 일단 비주얼을 보고 냄새를 맡았다. 편식이 심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먹었다. 낯가림이 심해서 많이 울었다. 녀석을 키우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 녀석에게 질린(?) 탓이었을까? 둘째를 가졌을 때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번에는 밥도 잘 먹는 성격 좋은 아이로 보내주세요.’ 하나님은 아주 정확한 분이었다. 기도한 대로 응답해 주셨다. 녀석의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제 형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양이 적은가 싶어 우유병을 큰 걸로 바꿔 제 형보다 훨씬 더 많이 주었다. 그것도 올킬. 먹성 하나는 끝내줬다. 잘 먹으니 예뻤다. 뭐든지 맛있다고 잘 먹으니 특별히 신경 쓸 것이 없어서 좋았다. 그런데 안 좋은 점이 딱 하나 있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니 날이 갈수록 녀석의 몸이 풍만해져 간다는 점이었다.


사춘기 이후 녀석의 몸무게를 물어본 적이 없다. 몸무게는 녀석의 아픈 아킬레스건이었다. 고딩 때부터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몸은 점점 비대해졌다. 최근에서야 녀석의 몸무게가 95kg이라는 것을 알았다. 뚱뚱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90kg가 넘으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다. 그런 녀석에게 변화가 왔다. 아빠의 뱃살이 쏙 빠지는 것을 보고 다이어트를 결심한 것이다. 아빠의 뱃살이 간증이 된 셈이다. “아빠, 이번에 하지 않으면 저 진짜 못 할 것 같아요. 저도 이 기회에 다이어트할게요. 아빠가 드시는 거 저도 주세요.” 이렇게 해서 남편과 나, 작은아들이 함께 식이요법을 하게 되었다.


맨 먼저 식이요법을 한 사람은 남편이다. 과체중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남편은 자기 인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딱 10kg만 빼고 싶다고 했다. 사실 우리 집에서 가장 소식하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밥은 그야말로 두세 숟가락 먹는 정도였으니까. 밥을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때론 얄밉기까지 했다. 사실 맛있는 것을 앞에 두고 절제하기가 참 힘든데 함께 먹다가도 숟가락을 딱 놓는 남편이었다. 그런데도 몸무게는 빠질 생각을 안 하니 나름 괴로워했던 것 같다.


일명 ‘저탄 고지식(케톤식)’을 하기 시작했다. 9일 정도 먼저 시작한 남편의 몸무게가 일주일 만에 4kg이 빠졌다. 그에게 혁명이 일어났다. 그것을 지켜본 작은 녀석이 바로 자기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남편과 아들은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쑥쑥 빠졌다. 두 사람의 몸무게는 지금 9~10kg씩 빠진 상태다. 그에 비해 나의 몸무게는 아주 미미하게, 서서히 빠지고 있다. 코로나 덕분에 붙은 살, 딱 3kg만 빠지고 정체기다. 그나마 더 이상 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사실 설탕 3kg짜리를 생각하면 감지덕지다. 그 무게가 만만치 않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급하게 빼고 싶지도 않다. 날씬해져서 새로 시집갈 일도 없기 때문이다.


맨 처음 남편이 식이요법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화를 냈다. 지금까지 먹어오던 게 있는데 어떻게 안 먹을 수가 있겠느냐, 어떻게 한 번에 끊겠냐며 하고 싶으면 당신이나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나는 탄수화물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 가끔 먹는 부드럽고 달콤한 빵은 내가 정말 끊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일주일 정도 식이요법을 진행하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는 빵이 왔다 갔다 했다. 정말 먹고 싶었다. 나는 탄수화물 중독자였다.


우리는 온갖 맛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몸은 그것들로 인해 각종 질병에 노출되고 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지방간 등등. 백세시대를 향해 가고 지금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82.7세(2018년 기준)라고 한다. 또한 65세 이상의 고령자 중 60.5%가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고 한다. 구구팔팔하게(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싶지만 그게 그냥 얻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이 문제다. 건강하게 백 세까지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과체중(나는 정상 체중)과 뱃살 때문에 시작된 우리 가족의 다이어트는 몸무게가 정상으로 된 후에도 계속할 생각이다. 단지 체중을 줄이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다.


먹는 즐거움을 뒤로하고, 몸무게 빠지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는 아들이 어느 날 말했다. “엄마, 몸무게가 빠지니까 자존감이 확 올라갔어요. 진작에 뺄 걸 그랬어요.” “흐흐흐, 맞아, 엄마도 자존감 뿜뿜이야.” 뱃살 좀 뺐다고 자존감이 올라가는 사실을 그대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여기서 조금 더 빼면 딱 붙는 원피스 입고 장 여사가 설칠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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