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 하기
9월 13일 화요일 새벽 2시 40분경. 우연히 잠에서 깼다. 아마도 옆지기의 뒤척임에 깬 것 같다. 남편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더운 것을 워낙 못 참는 사람이라 더워서 나간 줄 알았다. 그런데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나가 봤더니 남편이 소파에 힘 없이 누워있었다. 속이 쓰리고 많이 아프다고 했다. 마땅히 내가 해 줄 일이 없어서 서랍 속에 있는 위 보호제를 먹으라고 권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앓는 소리가 났다.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병원을 가자고 했다. 웬만하면 괜찮다고 버틸 사람이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었다.
밖에 나가니 사방은 고요하고 찬 기운이 돌았다. 최대한 빨리 병원에 도착해야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운전을 했다. 24시간 운영하는 병원에 갔다. 병원 로비에 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접수증을 작성하고 조금 기다리니 우리 차례가 되었다. 의사는 남편의 배에 청진기를 대고, 손으로 눌러보더니 위궤양인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주사를 맞고, 하루치 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주사의 효과는 빨랐다. 통증이 많이 잦아든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동네 병원에 가서 약을 더 지어왔다. 위, 십이지장궤양도 급성적으로 올 수 있다고 했단다. 약 5일분을 더 받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남편과 둘째 녀석은 추석을 쇠러 시댁으로 떠났다. 아픈 사람을 보낸 것이 못내 걸렸다. 그렇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3인 아들을 두고 나까지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이틀 밤을 자고 삼일째 되는 날 왔다. 그런데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면도도 안 하고, 머리도 안 감고, 눈은 퀭하고, 시컴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살면서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 아픈 몸으로 레인지 후드를 손수 달고, 아버님 산소의 잔디가 다 죽어버려서 잔디를 다시 심고, 고향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고, 친정까지 들러서 왔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내가 참 지혜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내지 말든지, 아니면 내가 운전을 하고 함께 갔다 오는 게 맞았겠다 싶었다. 너무 안 돼 보여서 장을 보러 갔다. 위에는 양배추즙이 좋다는 말이 생각나서 양배추를 사고, 죽을 끓이기 위해 전복을 사 가지고 와서 열심히 즙을 내고 죽을 쒀서 권했다.
그날 밤에는 잠을 설치지 않고 잘 잤다고 했다. 아침이 되자 매년 정기검진을 하는 병원에 가서 약을 새로 타 와야겠다면서 남편 혼자서 병원에 갔다. 검사를 마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담석증이라고 했다. 담낭에 돌이 한 개 있다고. 작년까지만 해도 차트는 깨끗했었는데 그새 돌 하나가 생긴 것이었다. 이제는 조금 진정이 되어서 괜찮지만 재발할 확률이 높아서 언제 날을 잡아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겁이 덜컥 났다. 그런 줄도 모르고 시간을 낭비하고, 애먼 약만 먹인 게 억울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역시 병이 생기면 큰 병원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싸잡아서 의사들을 흉보는 건 아니다. 그리고 아프면 바보처럼 참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사나이 대장부라고 아픈데도 안 아픈 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나만 홀로 두고 훌쩍 떠나버리면 그때 난 어쩌란 말인가! 참지 말고 아플 땐 아프다고 말을 하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