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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yoon Kim Aug 24. 2024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아버지의 뒷모습의 무게는 잴 수가 없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아버지 존함을 말하며 관계를 물어 아들이라고 하니 아버지가 길에서 쓰러져 응급차로 모시고 왔는데 위중하다고 했다. 마른 하늘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병원에 가보니 아버지는 감자떡을 드시다가 기도가 막히셔서 응급 처치를 받지 못하고 길에서 발견한 누군가의 신고로 병원으로 오신 것이었고, 의식이 없으셨다. 그리고 그렇게 식물인간 상태로 1년을 넘게 고생하시다가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과묵한 경상도 사나이셨다. 겉으로 표현은 못해도 속정은 깊으셔서 그 무덥던 여름철에도 미국에서 왔던 조카를 케어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하셨었다.      




나는 아버지와 각별한 시간들을 가졌었다. 아버지 식사를 챙겨 드렸고 라면도 끊여 드렸다. 말수는 적으셨어도 아버지는 단 한번도 매를 들지 않으실 정도로 끔찍하게 아들을 생각하셨다.     


아버지 임종을 준비하며 부산에서 응급차를 타고 집으로 모신 후에 수발을 들었던 것도 나였다. 이제 나도 성인이 된 아들의 아버지가 되고 보니 아버지의 뒷모습의 무게가 느껴진다.      


아들이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고 나와 아내와 작별 식사를 하면서 아들은 손편지와 선물을 준비하고 우리보고 사이 좋게 잘 지내라고 당부를 했다. 그리고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헤어질지가 벌써 2년이 넘었다.     


그래도 혼자 독립해 자기 앞가림 하면서 캐나다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며 잘 살아 주어서 늘 고마운 마음이다. 내 아들로서 본의 아니게 고생도 많이 시켜서 늘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 뿐이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는 뒷모습의 무게를 안고 산다. 나도 아들이 태어나자 아르바이트를 이것저것 하며 부양의 부담을 짊어졌었다.     


지금도 좋은 일이 생겨도,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그렇게 젊으신 나이에 훌쩍 떠나 버리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고 그립다.      


세월이 흐릴수록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가 더욱더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자식이 어찌 부모님의 사랑을 다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마음을 어찌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 아무리 애써도 자식은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 갚을 수 없고, 세상 힘든 이 땅에서 부모님의 존재만큼 위로가 되는 대상이 없고 힘이 되는 존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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