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의 글쓰기
Citigroup Shanghai Branch, 나의 첫 직장 - 1편
그랬다. 나의 첫 직장은 시티그룹. 중국 상해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사실 여기에는 드라마틱한 배경이 있다. 중어중문학을 전공으로 택했지만 영 정을 붙이지 못하고 급기야 전과를 결심한다. 지도 교수님을 찾아가 “교수님, 저… 전과하겠습니다”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자네 중국은 한 번 다녀와 봤나?”라는 다소 예상치 못한 답변(질문)을 받았다.
여행으로 홍콩은 두어 번 다녀왔으나 중국 본토는 발을 들여본 적이 없었다.
교수님은 이제 곧 여름 방학이니 한번 다녀와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얘기를 해보자고 하셨다.
2008년 여름, 중국은 한창 올림픽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북경어언대학의 썸머 코스는 당시 중국에 쏠린 관심에 걸맞게 세계 각국의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미국 로스쿨 학생부터 와튼 mba 입학을 앞둔 뉴요커, 호주에서 온 대학생 등 글로벌한 친구들과 매일 함께 어울리며 (중국어가 아닌) 영어가 하루가 다르게 느는 재밌는 경험을 했다.
우리는 함께 수업을 듣고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훠궈를 먹으러 다녔다. 밤마다 기숙사에 모여 칭다오 병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주말이면 북경 시내는 물론 침대 기차를 타고 밤새 상해까지 달려 여행을 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인생을 바꿀만한 사건은 그즈음 일어났다.
“너희들 이번 겨울엔 어디서 뭘 할 거니?”
“응 나는 일본에 있는 로펌에서 인턴을 해볼 생각이야”
“나는 홍콩에서 ~~~”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이들의 대화는 내게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마치 세계가 본인들의 무대인 양, 자신이 원하면 어디서든 그걸 해낼 자신감, 패기가 넘쳐흘렀다. 각자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획을 매우 구체적으로 갖고 있었다. 내 기준 엄청 성숙한, 어른스러운 생각을 갖고 있는 그들은 그래봐야 나와 비슷한 또래 거나 더 어린 친구도 있었다.
하.. 나는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온 걸까.. 뼈아픈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남들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알아주는 학교에 가는 것. 그리고 입시가 끝나자마자 모든 걸 내려놓고 신나게 놀기 바빴던 내가 정말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다른 한 편, 어? 이거 좀 멋있네!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뭔가 반짝이는 걸 발견한 나는 또 결심을 한다. 나도 외국에서 한 번 일을 해봐야겠다고. 내 인생의 무대도 꼭 한국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 후로 눈에 불을 켜고 ‘외국’에서 일할 기회를 찾았다. 레이다망은 늘 밝게 켜져 있었고 무서운 집념으로 몇 달간 찾아 헤맸을까?.. 뜻이 있는 곳에 정말 길이 있었다.
상해 시티그룹에서 인턴을 경험할 학생을 뽑는다는 교내 게시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간 중국어 실력이 드라마틱하게 향상된 것도 아닌데 너무 간절해서 걱정도 없었다. 무작정 지원하고 덜컥 합격을 하고 보니 이미 꿈에 그리던 직장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방학 상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직장 여성이라면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은 멋진 겨울 코트와 가죽 가방 그리고 무려 8cm 하이힐도 야무지게 챙겨 넣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