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은 임무는 K국의 플랜트 A공사의 수주하고, 완공시까지 총괄적으로 지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K국 에이젼트인 왕자와 추가 대형 프로젝트 수주 활동, 현재 수행중인 몇 개의 공사들의 진행 상황을 각 현장소장들을 통하여 감독하고, 필요시 긴급 지원하며, 필요 인력을 제 3국으로 부터 추가투입, 긴급자재 비행기 공수등의 지휘 책임이었다.
특히 당사 사장은 회사의 어려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나의 어께에 막중한 책임이 있음을 누누히 강조하였다. 회사는 계속된 적자에 마침내, 워커 아웃을 신청하여, 회생절차 밟고 있었다. 하여, 00은행에서 채권단 대표를 파견하여, 점령군 같이, 사소한 경영권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는 상황이었다. 굴욕적이지만 그러한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00은행에서는 자금을 동결하고, 파산선고를 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이 있었다.
마침내 A공사 입찰 공지가 떳다는 K국 현지의 에이전트 왕자의 보고가 있었다. 어림잡아 당사의 년간 총 공사금액의 80%를 차지 할 정도로 비중이 큰 공사였다. 반드시 수주해야한다. 수주하지 않으면, 그많은 인원을 감원하거나, 급여를 더 줄여야 한다. 급여외의 보너스를 받아 본적이 2년이나 되었고, 급여를 자진 삭감, 반납하여, 경제적으로 모두 힘들어 했고, 가장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모두들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어쩌다가 한번씩 나오는 보너스에 감격해 했다.
A공사 현장 설명회가 있었다. 당사를 포함한 세계적으로 이름이 있는 대형회사들 9곳이 초청되었다. 본사에서도 수주담당임원이 직접 나와서, 견적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챙겼다. 과거의 비숫한 공사의 수주가격을 컴퓨터로 정보 수집 조회하고, 예상 가격을 추정하느라, 각 관련 부서에서는 며칠이고 날밤을 세웠다. 예상 수치를 입력하여, 시뮬레이션을 몇번이고 재점검하였다. 드디어, 정해진 입찰마감일, 9개사가 속속 도착하여, 번호표 추첨 종이 상자에 든 번호표를 손을 넣고 꺼내 펴 보고, 번호 순서대로 입찰서를 제출하였다. 발표는 1주일후에 오전 10시에 있었다.
아쉽게도 당사는 3위를 차지하였다. 탈락이었다. 하나, 천우신조인지, 발주처에서, 그동안의 당사의 K국에 대한 공헌도를 참작하여, 가격협상 대상업체중 하나로 선정하여 주었다. 그동안 당사는 K국과 Q국과의 전쟁중에도 D공사 현장의 공기를 맞추기 위하여, 계속 공사를 하였다. Q국의 미사일 공격으로 D공사 현장의 우리 직원 및 근로자의 10여명이 희생되었다. 부서 진 공정의 시설은 다시 긴급 발주하여, 기어이 공사 계약 기간내에 완공해 내고야 말았다. 사실 엄청난 적자 공사였다.
D공사 자재 운반중에 반군들이 덮쳐서, 그많은 물량을 송두리채 탈취를 당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밤이면, 기관 단총으로 무장한 반군들이 침입하여, 정부 파견 경비인 군인들와 총격전을 벌였고, 포탄이 막사 근처에 떨어져 비상이 걸렸다. 물론 경비는 항상 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하였다. 가까운 은행에 현지인 급여를 주기 위하여, 매월 20일 은행에 출금할 때에는, 호송차 가 앞뒤서 에스코트하고 중무장한 경비4명이 앞뒤 2명씩 4륜 구동차를 타고 호위를 하였다. 물론 외출시에는 방탄복을 항상 착용하였다.
그리고, K국의 정보부에서는 외국인의 동태를 항상 감시를 하였다. 전임 지사장이 정보당국에 끌려가 행방 불명되었다가, 며칠만에 돌아오기도 하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동안의 행선지를 대면서, 누구와 만나 무었을 했는지, 낱낱히 밝혀야 했다고 전임 지사장이 당시의 상황이 고통스러웠는지, 얼굴을 징그리며, 구체적으로 알려 주었다.
드디어 험난한 과정을 거쳐 D공사가 완공되었다. 최선을 다하는 당사의 성의 있는 노력에, 발주처에서 감동을 받아, 3위 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적자 보전 측면과, 그동안의 희생에 대한 댓가로 당사에 한푼도 깍지 않고 A공사를 맡겼던 것이다.
A현장 사건은 이러하였다. 공사 수행중, 내가 A현장을 방문하여, 발주처 사장과 및 고위임원들과 회동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었다. 당문 당일 밤에 반군 30여명이 중무장하여, 현장을 덮쳤다. 경비와 총격전이 벌어졌지만, 오히려 A현장의 경비들이 제압을 당하였다. 사전에 내부 현지인과 내통이 되어, 관련 정보 일체가 반군에게 이미 넘어가 있었다. 가설 콘테이너 건물을 기관 단총으로, 벌집을 만들어 놓았다. 아무데나 겨누고 총을 갈기는 것이었다. 이렇게 위협을 준후, 문을 발로 차거나 열고서, 내부 숨어 있던 직원들을 모두끌어 내고, 반군들은 자국인과 외국인을 분리하여, 굴비처럼 묶어서 방패막이로 이용하였다. 물론 나도 끌려 나갔다. 별도로 다른 지하실에 별도로 격리 되었다.
정부에서도 K국에 인질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요지를 , 우리 정부의 최고 책임자 서명 날인하여 대사관을 통하여 전달하고, 직접 K국 국왕을 방문 협의하였다.
허나, 반군들이 인질들을 별도의 대형버스에 태워 이동하자, 중무장 헬리콥터로 반군을 추격하다가, 끝내는 직원들이 인질로 잡혀서 강제로 이동중이었다. 그 버스에 정부군은 미사일을 날렸다. 반군과는 추호의 타협이나 협상은 없다는 선언이었다. 물론 그버스에 탔던, 인질인 당사 직원및 근로자40명과 반군 30명은 전원은 폭사하였다. 한명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물론 나는 별도로 끌려 나왔으나, 그날밤 바로 내가 지사장이자 부사장이란 점을 활용하기 위하여 나의 눈을 가리고, 밤중에 자기들 전투 기지로 차에 태워 끌고 갔다. 내가 데리고 다니던 현지인 직원 B명과 함께 이동하였다.
그리고 반군기지의 어느 방으로 안내되어, 3명이 건너편에 앉아, 취조를 시작하였다. 물론 나는 영어로 이야기하면, 현지인 직원 B가 현지어로 통역을 하였다. 국적은 ? 직위는? 나이는? 도착 년도는? 임무는? 학력은? 우리 반군에 대한 인상은? 등등 2시간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가족은? 마침내 종교는 ? 나는 담담히 C라고 이야기했다.
반군은 현지인 B를 통하여,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물어 왔다. 그대가 만약에, C교에서 자기들교로
개종을 하면, 나를 풀어 주겠다는 제안을 해 왔다. B는 우선 살자고 거짓말로라도 그들은 그것을 원하는 눈
치다. 그러면, 살려 주겠다는 것이었다. 현지인 B의 의도가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여기서 내가 살
나가더라도 평생 그것이 나의 멍에가 될 것 같았다.
순간, 그동안의 많은 순교자들의 고난의 역사가 떠 올랐다. 배론성지가, 절두산이 떠올랐다. 다음날 사형
을 집행하는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집에 고기와 돈을 싸들고 찾아간 아들의 이야기가 머리에 스쳤다. 찾아간
아들은 망나니에게 이렇게 간곡히 무릎을 꿇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 고기 드시고, 제발 우리아버지, 한칼에
목을 베어 주십시오. 고통이 순간에 끝나게 해 주십시요” 순교자-사형수가 하도 많아, 망나니의 손목에 힘
이 빠지거나, 잘못 내려쳐, 고통스럽게 처참하게 죽어가는 이가 부지기 수로 많았던 것이다.
나는 담담히 현지인 B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네가 제안하는 개종은 하지 않겠다. 설사 내가 잘못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