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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바다 May 22. 2024

대구 진천 2만 옹(二萬翁) 이야기

2만 년 전 그는 주민들을 위하여 밤낮 주야로 일하는 거인이었다

선사시대 유물 유적 위치도 (출처 : 대구 달서구 문화원 홈페이지)

선사시대 유적

   비슬산 가는 길목 대구 진천동(大邱 辰泉洞) 일대에 선사시대 유적이 있다. 약 2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선사시대의 족장을 형상화하여 전봇대에 매달려 고함을 지르고 있는 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산발머리에 더부수록한 수염을 가진 그는 모 방송인 모습과 흡사하여 웃음을 짓게 만든다. 고향 가는 길에는 일부러라도 대구 1호선 진천역에서 내려 그의 외침을 들어본다. 그는 곰가죽 팬티를 입고 있다. 흘러내릴까 봐 아슬아슬하다. 특히 돌망치로 '선사시대 유적 공원' 간판을 내리치는 장면은 빼놓을 수 없다. 찌그러진 표지판이 익살스럽고, 압권이다. 그의 외침을 상상하여 본다.


이만 옹(二萬翁)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도망가세요!" "홍수가 났으니 산으로 피하세요!"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 놓았으니 고기를 가져가세요!" "이뿐이 결혼식에 놀러 오세요!"  "맨날 술이나 먹고 주민들에게 주먹질이나 하는 옆 동네 돌바구 촌장, 당신 나빠요!"


   주민들을 위하여 밤낮으로 헌신하는 족장의 행동에는 진정성이 있다.  우리 시대의 지도자가 배워야 할 제일 중요한 덕목이다. 대구 출신의 디자이너 이제석 씨가 디자인한 것으로 초등학교 미술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다고 한다.

선사시대로 주변

이만 옹(二萬翁)

   그를 이만 옹(二萬翁)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대구 최초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어 5천 년의 대구 역사가 2만 년으로 거슬러 올라갔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진천역 2번 출구에서 남쪽으로 350m 떨어진 곳에 '선사시대 유적 공원'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쪽 약 250m 지점에 '고인돌 소공원'이 있다.

'선사시대 유적 공원'과 '고인돌 소공원'으로 올라가는 골목 (멀리, 사냥 중인 활을 든 원시인 벽화가 보인다)/ 벽화

   진천·월성·상인·대천동 일대는 부채꼴 모양의 퇴적지형(삼각주, 신생대 제4기)이다.  선사인의 집단 거주지역으로 일대 47곳에서 선돌·고인돌·석관묘 등이 발견됐다.  남부산지(앞산, 대덕산, 청룡산)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내리는 부식토등 영양분이 풍부해서 비옥한 농경지로 곡창지대였다. 당연히 먹을 것이 많아 동물들의 서식지로도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진천이라는 하천이 인접해 고기잡이와 사냥까지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이만옹(二萬翁) 일하는 모습 (밤)

   

쉬고 있는 이만옹(二萬翁)
이만옹(二萬翁) 일하는 모습(낮)

진천동 선사유적공원

   진천동 선돌(입석,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11호) 은 1997년 발견 당시 제단, 동심원, 석관묘 등이 한자리에 있었다. 선돌 1기(높이 2.1m, 폭 1.1m)에는 성혈(性穴·홈구멍 6개)과 동심원(同心圓) 무늬가 새겨져 있다. 선돌을 중심으로 지표면에서 70㎝ 높이에 직사각형 모양(서쪽 장변 약 25m, 동쪽 장변 약 20.5m, 북쪽단변 약 10m)의 석축단(石築壇)이 있다. 공동제의(共同祭儀) 행위를 한 제단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단 위에 선돌이 설치된 것은 이곳이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석축단 주변에 무늬 없는 토기(無文土器) 조각과 석기(石器) 등이 출토되었다.


   현재 진천동 선사유적공원에는 선돌 1기, 석관묘 5기, 모형석관묘 2개소, 모형입석 1개소 등이 있다. (달서구 문화원 홈페이지)          

구석기시대 유물

   선돌에 새겨진 동심원은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모양이나 기호로 거주인들의 정신세계나 미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태양이나 사람의 얼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6개의 성혈은 여성성이나 곡물을 나타내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다.


   매장형태로 신전장과 굴장이 있다. 신전장은 팔다리를 곧게 펴서 매장하는 것이다. 반면 굴장은 팔과 다리를 접어서 웅크린 자세로 매장하는 방법이다. 모태복귀 휴식의 자세로 보기도 한다. 다시 복귀되는 것이 두려워서 묶어서 매장했다는 설도 있다.   

선사유적공원 안내 간판 / 입석 성혈과 석관묘 (굴장)

    

선돌 (동심원 / 성혈)

 선돌 주위에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인 석관묘(石棺墓, 돌널무덤) 5기가 있는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신전장  / 석관묘

 진천동 고인돌 소공원

   고인돌(지석묘)은 죽은 사람을 매장하던 무덤이다. 입석(선돌)은 묘역이나 지역 수호신, 제단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었다. 청동기시대의 제의(祭儀) 유적으로 원시 신앙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3기의 고인돌이 있다.

진천동 고인돌 소공원

   고인돌(지석묘) 1호의 형식은 받침돌이 없는 개석식(蓋石式)으로 상석의 형태는 220㎝, 폭 140㎝, 높이 130~170㎝의 부정육면체이다. 재질은 현무암이고 상면에는 지름 5㎝ 내외의 성혈이 2개가 있다.     

고인돌

   고인돌(지석묘) 2호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상석의 크기는 길이 140㎝, 폭 85㎝이며, 고인돌(지석묘) 3호는 길이 180㎝, 폭 60㎝ 정도이다.

고인돌 / 고인돌 구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돌무덤으로 거대한 바위(덮게 석) 아래에 고임돌, 무덤방이 있다. 공동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의 기능을 가지거나, 의식을 행하는 재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아파트 단지 근처에 조성되어 있고 다소 작기 때문에 위치를 찾기 어려운데 선사유적공원을 기준으로 50m 간격으로 표지판을 따라가면 찾을 수 있다.  방문 당시에는 공사 중이어서 출입금지 안전띠 설치와 검은색 차광망으로 덮어 놓아서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근처에 대구진천초등학교가 있다.  옆길로 나와서 큰길로 나오면 왼편에 누워서 쉬고 있는 거대원시인(2만옹)이 있다.   

대구진천초등학교

<참고>

-. 대구 달서구 문화원 홈페이지


     *** 다음 탐방 시에는 인접한 한샘공원 선돌공원등 다른 선사시대 유적을 둘러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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