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그리고 광주

오월의 붉은 장미

by 애바다

"똑! 똑! 똑!"


"저 좀, 숨겨 주세요 ! 쫒기는 대학생입니다! 살려 주세요!"

S시 아파트 현관문을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노크하면서 나지막하면서도 또렷한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워낙 다급하고 애타는 목소리라서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말았다.땀냄새가 확풍기는,가쁜숨을 몰아쉬는, 어느 키가 크고 눈에 광채가 나는 남루한 청년이 현관문을 밀고 들이 닦쳤다.이어서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출입구 계단을 따라 튀어 올라왔다.베란다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보니 추적자는 모두 세명이었다.나는 아내에게 어린 아이둘을 데리고


"큰방으로 들어가서 꼼짝말고 문을 걸어 잠그고있어!"라고 했다.그리고

"베란다 장독대 뒤 책장뒤에 몸을 숨기시오!" 청년에게 말했다.

"분명 이쪽 라인으로 도망쳤으니 독안에 든 쥐새끼나 다름없어!" 인솔자인 듯한 민간인 사복 복장을 한사내의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일층부터 초인종을 누르면서 확인하며 올라오고 있었다.드디어 오층 우리집 현관문 초인종이 울렸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심호흡을 하자,불현듯 어디선가 격려의 소리가 들려왔고, 용기가 솟았다.대담한 연극을 하기로 했다.문을 확 열었다.

"중범죄자가 탈출해서 수색중입니다.협조 부탁합니다" 하면서 고리달린 신분증이 스캔하듯 휙 한번 코앞으로 지나 갔다. 신발을 신은채 거실에 발을 올리는 순간,나는 웃으며

"수고가많습니다. 우리집에는 오늘 외부사람이 들어온적 전혀 없습니다." 배에 힘을주고 눈에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니,책임자로 보이는자가 나의 표정을 보더니 손가락을 위쪽을 가르켰다.부하에게 빨리 윗층으로 이동하여 수색하라는 신호였다.

그와중에 싸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구급차가 앞동에 멎었다.

"끼익" 

그 소음이 추격자들의 집중력을 흩어지게 일조를 한 것이었다.마침 노인 응급환자가 발생한 것이었다. 구급대원들이 재빠르게 환자를 구급차 뒷칸에 옮겨 싣더니,이내 아파트 정문을 통과해서 빠져 나갔다.

십층까지 뒤지고 허탕을 친 형사들이 아파트 일층출구로 다시 내려와 주위를 살피고,뭔가를 의논하는가 싶더니,책임자로 보이는 사내가

"이새끼 !토꼈구먼!"하더니 아쉬운 듯 자꾸만 눈길을 아파트 위아래로 몇 번이나 훑더니 고개로 철수를 지시했다.마침내 그들이 한명 두명마지막 세명째, 시야에서 모두 차례로 사라졌다.

"연막 작전일지도 모른다.긴장의 끈을 늦추면 안돼!" 누군가가 내게 소곤거리는듯 속삭였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이윽고 어둠이 몰려 왔다.베란다 책장뒤에서 나온 그 대학생은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자기를 간단히 소개하고 서는 찬물을 한 그릇 벌컥벌컥들이키더니,현관 계단을 조심조심내려가서는 바람처럼 사라졌다.얻어 맞은 듯한 멍자국이 눈밑에 푸른두줄이 있는 그는,K대철학과3학년에다니는 복학생M이는 말과 함께.


민주화 요구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고,최류탄이 난무하던 1985년 어느 여름날 오후에 일어난 일이 였다. 그후 1987년 1월15일 치안본부 남영동에서,스물세살 서울대생 박종철은 경찰의 잔혹한 전기,물고문으로사망했다.전국은 폭풍 노도와 같이 뒤집어졌다.마침내 같은해 집권당은 629선언을 하여 국민의 저항에 백기를 들었다.국민의 요구에 따라 직선제 민주선거를하였으나,불행하게도 야당의 분열로 정권교체에실패했다.드디어 1990년5월,독재에 온 몸으로 저항하던 명지대 강경대 학생등이 고층 건물에서 연달아 투신하는 일이 전국에서 잇따라 일어 났다. 시인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우라"라고 절규했다.


2016년 녹음이 짙어지던 5월의 봄날,머리를 식힐겸,휴가를 내어 지리산 노고단 근처 민박집을 예약하고 우리 내외와 이제 막 결혼한 아이들2쌍의 부부와 출발했다.서울 장지동에서 출발하여 남원을 거쳐 실상사를 지났다.깨끗한 개울옆의 식당에서 나물만 있는 산사식 식사를 하고 조그마한 다리를 몇 개 건너고, 또 꼬불꼬불한 가파른 고개를 몇 개넘어 천미터 고지대의 민박집에 도착하였다. 


오십세 전후로 보이는 깡마른 체구의 훤출한 키의 사나이가 개량 한복을 입고,소매를 걷어 붙인체 나타났다.턱밑의 수염과 부리부리한 눈매가 안중근의사를 연상케 했다.어디선가 본 얼굴인데,얼른 기억이 나지않았다.아내도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고 했다.       

갑자기 아내가 소리쳤다.


"아! 멍자국이 눈밑에 푸른 두 줄기있는,그 운동권 대학생!" 

바로 그였다.세명의 추적자에게 쫓기던 그 학생이 민박집 주인이 되어 있었다.그도 우리를 기억했다.

"나를 살려준 은인들을 여기서 만나 뵙다니요!정말 반갑습니다!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우리는 밤새도록 사회 정의와 통일과 그때 그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그가 운동권학생이된 경위는 참으로 소설같은 이야기였다.


그가 광일고등학교 일학년 입학한 해인 1979년 10월26일 대통령 시해사건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일어났다.그는 팔십년 오월초의 어느 일요일,사귀던 어떤 예쁜 옆집 여고학생과 무등산입구에서 정상을 향하여 등산하고 있었다.계엄이 내려졌던 때라 시위 군중을 계엄군들이 압박하자,시위대 무리중 일부가 무등산방향으로 흩어졌다.보다못한 등산객들이 시위대를 보호하려고 계엄군앞을 가로 막자,계엄군의 선두에서실탄으로 위협사격을 가하며,길을 비켜줄것을 요구했다.이에 격분한 시민들이 돌을 집어 던지자,갑자기연발 실탄 총성이

"따! 따! 따!"

동시에 시민들이 여기저기에서 쓰러졌다.그중에 M씨의 여자 친구학생가 날아온 유탄에 가슴에 총알을 한 발 맞고 쓰러졌다.하얀 브라우스가 금세 붉은 피로 적셔졌다.오월의 붉은 장미처럼 그렇게 붉게 타올랐다.누군가가 어디서 리어카를 구해와서 그녀를 싣고서,전대 병원으로급히 달려 갔으나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꽃 한 송이가 피어보지도 못하고,그렇게 떨어졌다.


M씨는 그날로 스스로 자기발로 찾아가서 시민군의 일원이 되었다.처음에는 시민군 세력과 의지가 워낙강하여 계엄군측은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권력욕은 피에 굶주린 사바나의 하이에나 같은 것. 주도 면밀한 계획에 따라 광주를 포위하여 에워싸고 전기를 끊고,단수를 하고 하나하나,시시각각 점점 쪼여오기 시작하였다.

시민군의 거점인 도청이 위협을 받자,시민군 수뇌부들은 결정을 내렸다. 모든 것이 열세인지라, 그들의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만천하에,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고 이미 표명하였으니, 이것으로일시 중단하고 해산하여,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잘못한자를 처벌하자는 결론을 내리는 중이었다.그래서 일반시민 참가자의 피해를최소화하고, 자신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목숨을 담보로 사태를 수습하고 도청을 사수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수뇌부는 “여성, 노약자,청소년은 국가와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최후의 행동지침을 내렸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희생된 동지들을 잊지말고, 민주화의 역사적 증인이 되는 것으로만도 그들의 역할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M씨는 그들과 함께 끝까지 도청에서 싸우겠다고고집을 꺽지 않았다.그러나, 시민군 수뇌부핵심 간부였던, 같은 학교 김창호 국사 선생이 어떤 부상자를 곡성에 있는 그의 집으로데려다줄 것을 M에게 명령했다.그는 최후의 방어선이 무너진 날 도청 계단에서 발견되었다.

땅거미가 깔리는 저녁 무렵 M씨가 버스로 그 부상자와 함께 곡성으로 이동중이었다. 길가에서 매복을 하고있던 계엄군들이 자동소총 총탄세례를 퍼부었다.버스운전사는 즉사했고,버스는 전봇대를 들어 박고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다.정신을 차려보니 버스는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그안에는 산자와 죽은자가 피로 범벅이 되어 혼재해 있었다.그가 데리고 오던 부상자는 이미 숨을 거둔후 였다.가까스로 몸을 빼낸 그는 기어서 농로를 지나 산을 넘고,냇가를 건너,마침내 여수 그의 집에 도착하였다.버스 추락시 생긴 상처가 눈밑에 멍이 푸른 두줄기로 남았다. 


어린 학생이였던 그로서는 그대사건의 트라우마를 혼자서 치유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했다.삶의 의용을 잃고 방황하던 그는 몇 번의 재수 끝에 어렵게 K대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권 학생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운동권 학생의 리더가 되자 자연히 그는 쫓기는 몸,전국에 수배된 몸이 되었다.그의 어머니는 제발 졸업만 어서 하여달라고 통사정을 하고 틈만 나면 서울 그의 자취방으로,학교로 그를 감시하며 쫓아 다녔다.학보사 논설위원장이었던 그는 계엄하의 정부를 비판하는 대담한 대자보를, 사설을 연이어 연재했다.삐라도 만들어 뿌리고, 호외도 발행했다. 마침내 학보사는 문을 닫고, 학보는 폐간되었다.


그리고 체포되어 불법 이적 단체 설립, 선동, 불온서적 소지 혐의로 계엄하 단심 선고로 삼년간 옥살이를 했다.출옥후 수배중이던 한총련회장과 비밀회동차 S시에 왔다가,추적자의 첩보안테나에딱 걸렸다. 숨바꼭질과 추격전끝에 우리집으로 숨게 된 것이었다.1993년 마침내 민간정부가 들어서자,운동권 학생들과 민주투사들이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그리고 본인들이 원하면,즉각 복직과 복학이 허용되었다.

M씨는 그의 어머니의 간곡한 소원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어쩔수 없이 복학을 하였다.마침내 입학한지 십팔년에 그의 어머니의 소원대로, 대학을 졸업하게되었다.그의 어머니는 어릴적부터 총명하고 영민한 그에게큰 기대를 걸었다.집안의 자랑거리였었다.

그러나 졸업을 하자, 사회가 그를 외면했다.아니 겉돌았다. 사회란 톱니와 그의 톱니가 어딘가에 항상 어긋나 있었다. 대기업 시험이나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였으나,최종 신원조회에서 떨어졌다.알고보니,그의 과거민주화 투쟁 이력과 3년 감옥이 주홍글씨처럼 그를 따라 다녔다.형식적 법적 말로만 사면 되었으나 기업도,사회도그를 위험한 요주의 인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그의 민주화를 위해 바친 희생과 노력과 잃어 버린 시간을 사회가 도대체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일제치하에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와 그 자손들이 인정 받지 못 한 것처럼.


비교적 민주화 기여 인물에 관대하다는 언론사에 기자로 취직하였으나,신문사주의 방침과 반대되는 기사를 쓴다는 이유로 기자인 그를 광고부로 영업직으로 발령을냈다.항의를 하니 이번에는 문구류나 조달하는, 책상도 없는 총무부 말단 실무자로 발령을 냈다.그리고 마침내 사풍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직되었다.


젊은시절의 사회 암흑기가 그의 젊음과 꿈과 희망을 완전히 망가뜨렸다.이름만 민주화 정권인 시대의 잔인함이 그를 더욱 힘들게 하였고, 그의 삶의 의욕을 꺽고 마침내 폐인으로 만들었다. 이제 모든 것을 훨훨 털고 지리산에서 도인같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젊은시절,옳고 선으로 가득찬,참된 가치가 살아 있는 세상,이상적인 유토피아를 만들 꿈을 꿨다.

  "나는 사회의 잘못된 체제에 의해 완전히, 철저히 망가 뜨려 졌습니다.나는 비참하게 처절하게 패배했습니다." 그러고는 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허공에 날렸다.


지리산중의 발밑에 머무르는 새벽 안개와 멀리서 들려오는 새벽 닭 울음소리가 평화롭고 창아하게 들림은그와 같은 젊음을 희생하며 키워 온 M같은 사람 덕택에 누리는 호사가 아닌가.무임 승차한 수많은 현재의 군중들은 오늘도 자기살기에,개인, 가족, 집단 챙기기에 바쁘다.


지리산에는 그의 마지막 사랑이었던 그 여고생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아직도 미혼으로 사는이유다. 

”좀더 좋은 나은 세상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온몸으로 싸웠으나,이제 세상은 자기를 더이상은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겪는사람이 우리 주변에 대한민국에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최류탄을 온 몸으로 받으며 싸워온 그때의 피끓는 데모대, 군중, 시민은 다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술이 거나해진 M이 목청을 올려 육자배기 한가락을 빼올렸다.

”저 건너 갈미봉에 비가 몰려 들어온다 우장을 두르고 지심 매러 갈거나
진국명산 만장봉이 바람이 분다고 쓰러지며
송죽 같은 굳은 절개 매맞는다고 훼절할까
녹초청강산에 굴레 벗은 마이 되어 때때로 머리 들어 북향하여 우는 뜻은
석양이 재 넘어가니 임자 그려 우노라
저 달은 떠 대장되고 견우직녀성은 후군이로구나
태백산 네 어서 급히 행군취타를 재촉하여라.“

”저는 어떠한 보상도 원하지 않습니다. 말없는 다수가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고,참된 사회를 만듭니다. 그리고 남북한이 통일된 하나가 되어 동포끼리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가 되는 것을 보는것이 마지막 소원입니다.“


M씨의 민박집에는 달빛에 물든 나무숲과 산세소리와 부엉이소리,그리고 맑은 공기가 가득 채워졌다. 격동의 붉은 오월은 질풍노도와 같이 흘러 갔다. 둥근 보름달이 늙은 휘어진 소나무 가지 사이로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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