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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대구 입성기

콩이 콩콩 튀었다

by 애바다

"대구에 있는 형들한테 갔다 오느라"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나에게 아버지의 특명이 떨어졌다. 대구에서 고등학교 삼 학년,일 학년에 다니고 있는 두 형들 자취방에 쌀과 반찬거리를 갖다 주고 오라는 임무였다. 더구나 거액의 2학기 공납금도. 그것도 혼자서. 곧이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가지고 갈 것들을 며칠을 두고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대구 간다는 설렘도 잠시,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저 많은 짐을 내가 어떻게 혼자 다 들고 갈 수 있을까? 내가 가지고 가야 할 짐은 점점 많이 불어났다.

더구나 차도 지나다니지 않는 시골 동네라,오리를 걸어 나가서야 겨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것도 하루에 손에 꼽을 정도로 더문더문 오는 버스였다. 버스는 항상 매표소의 마분지에 손으로 쓴 버스 시간표보다 한참이나 늦게 도착하였다. 시간표는 그냥 그 정도 시간에 올 것이라는 예상표였다. 안내양에게 불평을 하면 오다가 타이어가 펑크 나서 교체하고 왔다고 했다. 어떤 때는 예정되었던 그 버스는 엔진 고장으로 수리 중이라고 했다. 그 차 대신에 지금의 차가 급히 교체되어 왔다고 했다. 


더더욱 나는 차만 타면 멀미를 하여 차 탑승에 극히 취약하였다. 가끔 추석이나 설날 친구들과 15리 길 30분 거리 창년읍에 영화 보러 가도 버스 멀미를 하였다. 읍단위를 벗어난 적이 별로 없었으므로 두 읍은 나에게는 대도시, 선망의 도시였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극장과 목욕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삼 학년 때 추석날 친구 다섯 명이 창년읍에 영화 보러 갔다가,매표소 입구에서 극장 주변에 사는 덩치 큰 아이들 세명의 협박에 따라 골목으로 끌려갔다. 우리보다 서너 학년 위로 보이는 그들은 벌써 코밑에 수염이 막 나는 듯보였다. 우리는 으슥한 골목으로 끌려가서는 담벼락에 일렬로 세웠졌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왈,


"나중에 주머니 뒤져서 돈 나오면 1원에 주먹 한 대씩이다"며 솥뚜껑 같은 주먹을 들어 보였다.


호주머니를 탈탈 털리고 나서 걸음아 나살려라는 듯이 도망쳐 빠져나왔다. 되돌아오는 버스 차비가 없어서 우리들은 그 먼 15리 길을 터벅터벅 걸어왔다. 박노식과 허장강이가 나오는 영화도 못 보고. 동네에 돌아와서 창피해서 누구한테 이야기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귀신이 곡할 노릇처럼,용케도 촌놈들 우리를 단번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사실 우리들은 창년읍가기 며칠 전부터 우리들 스스로 행동요령을 만들고, 대응방안을 마련하였지만,일격에 당한지라 소용도 효과도 없었다.


"깡패가 집적이면,근처 파출소에 뛰어들어가 뿌는기라".

"그런 때는 삼십육계가 최고 아이가"

"두 눈을 크게 뜨고,얕잡아 보이지 않아야 한대이" 


하지만 우리들이 입은 옷에는 단박에 촌티가 묻어났다. 우선 성장기의 아이들이라 부모님들이 일 연 후를 내다보고 현재의 몸보다는 한 치수가 더 큰,일 이년 후에나 맞을 옷을 입혔다. 옷이 헐렁했다. 소매나 바지단을 걷어 올려야 대충 맞았다. 창년읍은 거대한 도시였다. 당시 2층짜리 극장 건물은 내가 본 것 중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어서,영화 보는 것보다는 극장 건물 안으로 표를 끊고 들어가 2층의 좌석에 앉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이제 가는 곳은 읍보다 훨씬 큰 대도시중의 대도시가 아닌가? 난 출발도 하기도 전에 대구 깡패 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여러 소문을 이미 듣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승객들의 가방이나 호주머니를 면도칼로 째고 돈을 슬쩍한다는 것이었다. 바람잡이들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하여 그 승객의 주변을 에워싼다는 것이었다. 먹잇감이 눈치를 채면,노리는 승객이 어리거나 약한 여성인 경우에는 면도날을 옆구리에 다 '쿡'갔다 대고 놓고는 낮은 저음의 귀속말로,


"소리치지 마라,확 그어뿐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아침 첫 버스를 타기 위하여 새벽에 일어났다. 아버지는 나의 윗도리를 헤집고, 허리의 배 맨살에 두 형의 공납금을 싼 보자기를 둘렀다.


"단디이 해라"


이 말은 최선을 다하여 무사히 전달하라는 말씀이었다. 기필코 목적지까지 배달사고 없이 목표를 달성해야 했다. 중간에 소매치기한테 털리거나,실패하면 두 형은 학교를 더 이상 못 다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화에서 본, 조선의 대지주가 건넨, 만주의 독립군을 위한 군자금 전달 장면이 떠올랐다. 마적 떼,일본 순사,밀정을 간신히 피해서 목표지까지 갔는데,동지의 배신으로 돈을 강탈당하고,결백을 증명하기 위하여 스스로 목을 찔러 죽음을 맞이했던,주인공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지게에다 새끼줄로 꽁꽁 묶은 포대 두 개를 실었다. 쌀 한 포대,그리고 다른 포대에는 된장,간장,김치,된장,고추장,참기름,검정콩 등으로 가득 채워졌다. 비닐로 만든'한국 화학'요소비료 포대였다. 아버지는 오리길의 삼거리 기왓골 버스 정류장에다 포대 두 개를 내려놓고는 집으로 되돌아갔다. 


"단디이 해라"

내손에는 어머니가 적어준 종이에 신천극장,농고,그리고 하천과 형들 자취방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서부 정류장에서 백십일 번 버스를 타고,열한 정거장 가서 내려라"


나는 호주머니에 단단히 챙겨 넣었다. 어머니는 차멀미에는 솔잎 파리를 씹으면 효과가 좋다고 손수 따다가 한 움큼 배낭에 넣어 주었다. 매표소 주인은 한참 만에야 슬리퍼를 질질 끌며,집 안체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달고 나왔다. 내가 내민 지폐를 받고서는,누른 종이에 타자체로 인쇄된 버스표를 점선에 자를 대고서는 쭉 찢어서 동전 잔돈과 함께 주었다.


마침내 빨간 글씨의 행선지 사각표지를 조수석 머리 위에 단 완행버스가 먼지를 풀풀 날리며 내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이내 먼지와 경유차량 특유의 매캐한 매연 냄새가 버스,매표소 주변을 온통 휘감았다. 내가 낑낑거리며 포대 두 개를 버스 발판에 들어 올리자,안내양은 친절하게도 좌석이 빈 제일 뒷 좌석까지 옮겨 주었다.


그날따라 버스 승객이 많았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 대여섯 명도 보였다. 안내양은 꼭대기에 헝겊으로 만든 조그마한 손잡이가 달린 동그란 빨간 바가지 모자를 썼다. 조그맣고 야무지게 생긴 열여덞 살 안팎의 버스 안내양은 차문 옆 버스 몸통을 주먹으로'쾅쾅'철판을 두드리며,'오라이'하고 운전수에게 출발 신호를 보냈다.

길은 자갈을 깐 비포장 도로였다. 뒷좌석이라 바퀴가 간혹 큰 자갈을 올라타는 경우에는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머리가 버스 천정에 닿을 정도로 몸이 붕떴다. 두 개의 포대도 마치 연못 속의 붕어가 수면 위로 치솟는 것처럼 동시에 뛰어올랐다. 게다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매연은 숨을 콱콱 막히게 했다.

현풍읍에 접어드니 낙동강변으로 난 도로는 산을 깎아 만들어 마치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길이 난 것처럼 보였다. 저절로 몸이 산 쪽으로 기울어졌다. 사람들은 그곳을 산상 절벽이라고 불렀다. 길을 닦는데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다. 폭약 곡괭이 오함마 도끼 등으로 바위를 깎아서 겨우 차 한 대가 지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두대 중 하나가 양보하여,'뒷 빠꾸'를 하여 두 대가 겨우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대기점까지 양쪽 방향 차량은 전진 혹은 후진으로 이동해야 했다. 오랜 가뭄 끝에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가 몇 주째 계속되어 낙동강 물이 길 위까지 넘쳐 흙탕물로 넘실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양쪽 운전수들은 익숙한 길이라 길바닥이 보이지 않아도 더듬더듬 어림잡아 운전을 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하나 지금은 잘못하면'뒷 빠꾸'하다가 흙탕 물속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때 마침 맞은편에서 버스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모퉁이를 돌아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익숙한 길일지라도 불어난 강물로 워낙 위험한 상황이라 양보하다가는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대치 상황이 한 시간 이상 길어지자 예식장 가는 사람들이 들고일어났다. 예식 시간이 촉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겁에 질린 그가 마침내 백기를 들고 후진하기 시작하였다. 겨우 절벽 코스를 통과하였다. 


주변국도에는 사과나무들 이파리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솔잎을 씹으니,쌉쌀한 맛이 났다. 하나 멀미는 점점 심하여 결국 토하게 되었다. 안내양이 수건을 갖다 주었다. 그때 문득 발밑에 무슨 국물 같은 것이 보였다. 김치 국물이 종이 비료포대를 뚫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옆의 쌀포대도 김치 황토물로 적셔지고 있었다. 


문제는 검정콩이었다. 검정콩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버스 바퀴가 돌에 채일 때마다 검정콩들이 와르르 와르르 앞으로,뒤로,옆으로 굴러갔다. 버스 바퀴가 돌부리에 채일 때마다, 콩이 콩콩콩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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