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는 水평선, 사막에는 砂평선이 있듯이 지리산에는 山평선이 있다. 산이 넘실대며 파도를 치는 산평선을 볼 수 있다. 그 山평선이 겹겹이 어린아이 포대기처럼 나를 안온하게 감싼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잘 살아라.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오늘(2022.09.11., 일요일, 추석 다음날)은 지리산을 올라갔다. 말로만 듣던 꿈에 그리던 지리산을 난생처음으로 오르게 되었다. 드디어 꿈을 이룬 것이다. 인생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를 성취했다. 몇 번이고 잠을 깼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났다.
이렇게 빨리 일어난 이유는 나에게 차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초 처남의 차를 함께 타고 등산하기로 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지리산을 몇 번 등산했다는 처남과 동행하기로 하였다. 따라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고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등산 전날 동네 죽마고우 친구의 팔순 노모가 갑자기 추석날 돌아가셨다고 했다. 상가에 가서 일을 돌봐줘야 한다고 했다.
장모님은 며칠 전 그분이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등에 물파스 좀 발라 달라고. 이웃이지만 직접 방문하시기에는 좀 위험하다. 동갑이고 더구나 이미 허리가 ㄱ자로 되셔서 거동이 불편하시다. 그 분집이 언덕 밑에 있다. 애통해하셨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도 최근 동네 친구 몇 분이 연달아 돌아가셨다.
우선 낭패는 지리산에 대하여 너무 몰랐다. 더욱 문제는 접근 진입로도 알지 못했다. 대충 물어보니 당일치기로 구례에서 성삼재 노고단 반야봉으로 오르면 된다고 했다. 휴대폰 메모 기능에 지명을 저장했다. 급한 김에 인터넷에 매달렸다.
일단 웃장 근처 순천 북부정류장에서 구례 가는 새벽 6시 50분 버스를 탔다. 구례 종점까지 승객은 달랑 나 혼자였다. 그 큰 버스를 나 혼자 전세 낸 격이었다. 미안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성삼재 가는 버스 편 시간을 물어보니 적자 버스노선이어서 운행이 중단되었다고 했다. 하필이면. 전달 8월 1일부터 버스 노선이 폐지되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꼬불꼬불한 편도 1차선 산길을 달렸다.
무릎 위의 배낭이 이리저리 춤을 췄다. 모퉁이 돌아갈 때는 기사님은 어김없이 반대편 차선을 넘는다. 회전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숙달된 도를 터득한 운전 솜씨였다. 길을 확장하여야 할 것 같다. 그 길은 1960년대 국토 근로봉사대에서 거의 중장비 없이 곡괭이 함마로 힘든 노동으로 길을 만들었다고 했다. 군사작전도로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해방 후 혼란기에 많은 작전이 벌어졌다고 했다. 우리의 아픈 역사다. 8시 30분경에 1,090m 고지 성삼재에 도착했다.
성삼재 (노고단 올라 가는 길 입구)
당초의 계획은 일명 반야봉 코스인 성삼재-노고단-반야봉-노고단-성삼재로 단순 복귀 코스였다. 사람 욕심이 어디 그런가.
화엄사 종합 안내
하산길에 계곡 아래 화엄사를 둘러보고 싶은 심경변화가 생겼다. 특히 스님들의 하루 일과 종료를 알리는 타종행사를 보고 싶었다. 인생의 종료를 알리는 것 같은 장엄 엄숙한 의식을 볼 수 있다. 역시 산사 탐방의 백미는 저녁시간 타종행사다. 화엄사 계곡 비탈길을 혼신의 힘을 다하여 뛰다 싶이 내려왔다. 오후 6시 이전에 도착했는데 애석하게도 타종행사를 못 봤다. 이미 종료가 되었는지 아니면 오늘 타종행사가 없는지 물어보지는 못했다. 거의 초주검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지리산은 거대한 산으로 최소한 2박 3일 이상 일정으로 둘러보아야 하는 산이다. 한나절 둘러보고 소감을 말하기에는 좀 멋쩍은 느낌이 든다. 지리산 10경 중 겨우 2경(노고단, 반야봉)만 둘러본 셈이다. 더구나 지리산 제1봉인 천왕봉(1,915m)은 오늘 둘러본 코스의 거의 반대쪽에 있었다.
굳이 소감을 말하자면 최근에 둘러본 큰 바위가 넘실거리는 야성미 넘치는 근육질의 비슬산 북한산이 남성적이라면, 지리산은 산평선(山平線)처럼 어머니 같은 섬세한 아름다운 여성미가 넘친다. 군데군데 어려운 코스도 있었지만 끝없이 이어지고 넓고 광활하면서도 대체적으로 흙길을 거니는 여성적인 이미지가 남아있다. 어머니 같은 부드러운 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끔 곳곳에 톡 톡 쏘는 가파른 길도 있다. 그러나 못 가본 반대쪽 천왕봉(1,915m) 코스는 험난하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산밖에 없다. 앞이 안 보이는 숲길 터널이 끝이 없이 이어진다. 산속에 고립무원이다. 길을 잃을 경우 먹을 것도 별로 안 보인다. 기껏 도토리 정도다. 생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노고단 고개 (천왕봉 가는 길, 반야봉 가는 길과 동일)
노고단 고개로 오후 3시 반경에 되돌아왔을 때는 출입구 빗장이 걸려 있었다. 빗장을 올리고 나왔다. 입구 안내문을 보니, 하절기에는 등산객의 안전을 고려해서 03시부터 12시까지만 천왕봉 방향으로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 즉, 등산객 안전을 위해 12시 이후는 진입금지다. 위반시 과태료도 있다.
반달곰을 만나면
군데군데 반달곰 주의 표시가 있어, 날이 어두워지고 주위에 등산객이 안 보이면, 으스스 불안이 몰려온다. 반달곰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몇 번이나 했다. 최선의 방법은 36계 줄행랑이다. 안내 휘장막에 따르면 등을 보이지 않고 그 자리를 잽싸게 피하라고 한다. 아무튼 화엄사 내려오는 어둑어둑한 길에 별별 생각이 다 났다. 근처 바위가 갑자기 곰으로 보이기도 했다. 발목을 접지를 뻔했다.
지리산의 맛만 본 것이다. 언젠가는 천왕봉을 오르고 싶다. 오늘 산행거리는 성삼재-화엄사 구간 약 20km, 소요시간은 약 9시간, 약 4만 5천여 걸음이었다.
시간 소요는 다음과 같다. (초행길 등산객이 있으면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05:30 기상 06:50 순천-구례 07:20 구례 버스터미널 도착 08:30 성삼재 도착 (1,090m, 성삼재-노고단 고개, 2.6km) 09:25 노고단 대피소 09:38 노고단 고개 10:03 노고단 정상(1,507m, 노고단 고개-정상까지 거리 약 500m, 사전 예약해야 함) 10:17 다시 노고단 고개로 내려 옴(1,440m, ‘천왕봉 가는 길’ 안내문을 통과, 천왕봉까지 25.5km 표시, 노고단 고개-반야봉 5.5 km 표시) 11:00 돼지령 11:11 피아골 삼거리 (피아골 내려가는 길) 11:20 임걸령 샘
지리산 산악회는 지난 1972년 가장 대표적인 자연경관 10곳을 들어 "지리산 10경"으로 발표하였다고 한다. 삼대 적선한 사람이 10월 하순 청명한 맑은 가을날 등산하면 성취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단, 세석의 철쭉(細石躑躅) 제6경은 봄날 가야 한다.
반야봉 천왕봉 위치
* 1경 - 천왕 일출(天王日出) 이른 새벽 동틀 무렵 해발 1,915m의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 올라보면 끝없이 펼쳐진 회색 구름바다 저 멀리 동녘 하늘에 희뿌연 서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이것도 잠깐 동녘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면서 휘황찬란한 오색구름 속에서 진홍빛 거대한 태양이 눈부신 햇살을 부챗살 같이 뻗치며 불쑥 솟는다. 이 천왕봉 해돋이는 지리산 10경 중 제1경으로 이 일출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삼대에 걸쳐 적선을 해야 된다는 속설도 있다.
* 2경 - 피아골 단풍(직전 단풍, 稷田丹楓) 10월 하순경에 절정을 이루는 피아골 단풍은 현란한 "색(色)의 축제"다. 산도 붉게 타고, 물도 붉게 물들고, 그 가운데 선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삼홍(三紅)의 명소. 피아골의 단풍은 가을 지리산의 백미다. 조선시대 유학자 조식 선생은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할 정도로 단풍이 좋다. 조식 선생은 "온 산이 붉고 물이 붉어서 사람 마음도 붉다"는 시를 읊었다고 한다.
노고단에서 본 구례 섬진강 전경
* 3경 - 노고운해(老姑雲海) 지리산 서쪽 해발 1,507m의 높이로 솟아있는 노고단은 이 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중에서도 영봉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화엄사 계곡을 따라 오르는 10km의 노고단 산행코스는 중간부터 가파른 길이 이어져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하지만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경관은 4시간 남짓의 힘든 산행을 한층 뿌듯하게 해 줄 만큼 장엄하다. 특히 노고단 아래 펼쳐지는 '구름바다'의 절경은 가히 지리산을 지리산 답게 만드는 제1 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으며, 5월에 산철쭉이 고원 전체를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한여름철과 가을에 걸쳐 천상의 화원을 이룬다. 화엄사 계곡의 끝머리 바위 턱에 앉아 파도처럼 밀려갔다 밀려오며 계곡을 덮고, 능선을 휘감아 돌다 저 들녘까지 이르러 온통 하얀 솜이불을 깔아놓은 듯 펼쳐지는 운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잠시 인간의 세계를 벗어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신비롭기 그지없다.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코스의 출발점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임걸령 - 반야봉 - 토끼봉 - 벽소령 - 세석평전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능선길은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밟아보고 싶어 하는 영원한 동경의 코스다. 봄에서 초여름까지 노고단의 비경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원추리 꽃이다.
반야봉 주변
* 4경 - 반야 낙조(般若落照) 해발 1,732m의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은 멀리서 바라보면, 여자의 엉덩이 같이 보인다는 봉우리로 전남과 전북의 경계지역이기도 하다. 노고단에서 바라보면 바치 여인의 젖가슴처럼 봉긋 솟아있는 봉우리다. 노고단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3시간 30분가량의 산행코스인 반야봉은 사방이 절벽 지대로 고산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반야봉에 오르는 기쁨은 낙조(落照)의 장관에서 찾는다. 여름날 해거름에 반야봉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서쪽 하늘의 황홀한 낙조는 아마도 자연이 인간을 위해 베푸는 시시각각의 축제 중에서도 가장 경건하고 가장 의미심장한 축제가 아닐까? 때로는 구름바다를 검붉게 물들이며, 때로는 마지막 정염을 불사르는 선홍의 알몸으로 서서히 스러지는 태양과 마주하는 순간, 사람들은 아득히 먼 시원(始源)의 날에 시작된 한 편의 장엄한 드라마가 끝난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반야봉 구상나무와 바위
* 5경 - 벽소 명월(碧宵明月) 벽소령은 빼어난 경관과 지리산 등줄기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입지조건에서 밀림과 고사목 위에 떠오르는 달은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시인 고은 씨는 "어둑어둑한 숲 뒤의 봉우리 위에 만월이 떠오르면 그 극한의 달빛이 천지에 부스러지는 찬란한 고요는 벽소령 아니면 볼 수가 없다."라고 찬탄하였다.
* 6경 - 세석철쭉(細石) 봄이면 난만(爛漫) 히 피어나는 철쭉으로 온통 꽃사태를 이루는 해발 1,600m의 세석평전은 30리가 넘는 드넓은 평원으로 남녘 최대의 고원이다. 이름 그대로 잔돌이 많고 시원한 샘물도 콸콸 쏟아지는 세석평전에는 수 십만 그루의 철쭉이 5월 초부터 6월 말까지 꽃망울을 터뜨리며 한바탕 흐드러진 잔치가 벌어진다. 핏빛처럼 선연하거나, 처녀의 속살처럼 투명한 분홍빛의 철쭉이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지는 절정기에는 산악인들의 물결로 세석평전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시인 김석은 세석 계곡 훈풍이 꽃 사이로 지날 때마다 꽃들의 환상적이고 화사한 흔들림, 그것은 남녘 나라 눈매 고운 처녀들의 완숙한 꿈의 잔치라고 이곳의 철쭉을 노래하기도 했다. 지리산 철쭉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처절하도록 서럽게, 그러나 꺾이지 않는 의지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진달래와 더불어 봄의 지리산을 단장하는 명물로,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7경 - 불일현 폭(佛日顯瀑) 청학봉(淸鶴峰과) 백학봉(白鶴峰) 사이의 험준한 골짜기 속의 깊은 낭떠러지 폭포로 오색 무지개가 걸리고 백옥 같은 물방울이 서린다. 60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장쾌한 폭포 소리가 온몸을 파고드는 냉기는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 8경 - 연하 선경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무가 홀연히 흘러가곤 하여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천왕봉을 향해 힘차게 뻗은 지리산의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사이에는 온갖 이름 모를 기화요초가 철 따라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향기롭게 한다. 이끼 낀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과 이름 모를 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지리산과 어우러져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고산준령 연하봉의 선경은 산중인을 무아의 경지로 몰고 간다.
* 9경 - 칠선계곡(七仙溪谷) 지리산 "최후의 윈시림" 지대로 자연자원의 보고이다. 계곡 전체가 청정한 선경으로 일일이 그 이름조차 명명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 10경 - 섬진 청류(蟾津淸流) 산이 높으면 물도 맑다. 지리산을 그림자로 한 채 남서로 감돌아 남해에 이르는 섬진강은 그 물이 맑고 푸르러 한 폭의 파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고 양쪽에 펼쳐진 백사장도 하얀 명주천을 깐 듯 아름답다. 급류를 타고 오르내리며 은어떼를 낚는 어부의 모습도 아름답기만 하다. 지리산 산자락을 그림자로 한 채 남해로 흘러드는 섬진강의 푸르고 맑은 강물과 하연 백사장과 더불어 이 강에 뜬 돛단배는 지리산 역사와 사연들을 들려주는 듯하다. (참조 : 대한민국 구석구석, 상기 여인 관련 표현은 인용문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공지영 작가의 ‘지리산 행복학교’에 등장하는 이원규 시인의 시가 있다. 참고로 안치환의 멋진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노래가 있다. (노래 : 아래 유튜브 주소 참조)
반야봉 주위 산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詩人)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지리산(智異山)은 경남 하동 함양 산청,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있는 산이다. 483.022㎢ 면적(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을 지닌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둘레는 320km다. 지리산의 뜻은 다름을 아는 것, 차이를 아는 것, 그리고 그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지리산은 쫓겨온 자들의 땅이기도 했다. 항일의병, 동학혁명군, 항일 빨치산, 한국전쟁의 빨치산도 이곳에 몸을 숨겼다. 오늘 탐방한 주요 장소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성삼재 주차장
1) 성삼재 (1,090m)
성삼재(姓三재)는 전남 구례 백두대간의 고개이다. 대체로 지리산의 절인 천은사와 성삼재 휴게소까지의 구간을 성삼재라고 한다. 성삼재를 기점으로 하여 동쪽으로 노고단 등 지리산의 주요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장군이 지켰다고 하여 성삼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참조 : 위키백과)
노고단 대피소
2) 노고단 대피소
지리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대피소로 전남 구례 산동 좌사리에 있다. 1987년 건축한 제1대피소(381.0m²/140명 수용) 외에 1994년 제2대피소(315.0m²/50명 수용)를 추가로 건축하였다.(참조 : 위키백과)
노고단 정상 (사진 좌측 상단에 점들은 날개미 떼로 추정)
3) 노고단 (老姑壇, 1,507m)
천왕봉(1915m)·반야봉(1732m)과 더불어 지리산 3대 주봉이다. 지리산을 지키는 산신 노고 할머니의 제사 터가 있다 하여 노고단이라고 불린다. 늙은 할미라는 뜻의 ‘노고老姑’가 ‘마고麻姑 할미’를 지칭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신라시대부터 제사 지내던 제단이 있다. 고산지대로서 전망이 매우 좋고 시원해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의 심신 수련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정상에 서자 사방이 트였고 커다란 노고단 정상석과 돌탑이 우뚝 서 있었다. 돌탑 주변에 날개미가 많이 날아다녔다.
노고단에도 아픈 역사가 있다. 1920년대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여름을 보냈다. 70년 전 지리산 자락에서 스키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1948년 여순사건이 발생해 이곳이 격전지가 되었고, 1950년 6·25 전쟁을 거치면서 빨치산과 국군 토벌대 간 격전으로 또다시 노고단은 초토화됐다. 1980년대에는 등산 인구와 야영객이 늘며 노고단은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황폐지로 전락하며 몸살을 앓았다.
환경부는 1989년 노고단에서 반야봉에 이르는 지역 20.2㎢를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울타리를 세워 사람이 다니는 길을 한정 짓고 듬성듬성 빈 곳에 풀을 가져다 심었다. 1991년 국립공원공단은 노고단에 대해 탐방객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노고단 복원
그리고 생태복원사업에 돌입했다. 공단은 노고단 주변에 다시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먼저 토질을 강화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비가 많이 오면 토양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과 자갈, 모래를 깔고 개량한 흙을 그 위에 또 한 번 덮어주었다. 그다음엔 씨앗을 뿌리고 야생풀을 이식한 뒤 볏짚이나 황마 그물을 씌웠다.
생태계 복원 성공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어찌나 통 통 통 잘 내려 가는지 올라 오는 등산객마다 이 아가씨에게 말을 걸어 본다)
결국 공단은 생태계 복원에 성공했다.
노고단 돌탑
그리고 2001년 8월부로 노고단 탐방 예약제를 도입해 탐방 인원을 하루 1,870명 적정 인원으로 제한해 운영 중이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예약한다. 등산 조망시간은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마지막 입장은 오후 4시다. 예약 시 카카오 알림톡을 통해 입장 QR코드(정보 무늬)가 전송된다. 노고단탐방지원센터 앞에서 예약 여부 QR코드 확인 후 노고단 정상으로 올라간다. 오늘도 계단 보수 작업을 위하여 계단 일부 구간을 테이프로 출입금지 표시를 하고 자재를 산책로 주변에 올려놓았다.
반야봉 정상
4) 반야봉(般若峰, 1,732m)
반야봉은 지리산 제2봉으로 낙조가 아름답다고 하여 반야 낙조(般若落照)라고 불린다. 지리산에 있는 대부분의 봉우리가 주릉에 있는 것과 달리 주릉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 쪽으로 오는 경우는 노루목에서 북쪽으로 오르면 된다.
반야봉(1732m)은 지리산의 얼굴과도 같다.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이 깊으며 수목이 울창하여 구상나무 등 고산식물과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룬다.
무넹기 갈림길
5) 무넹기
지리산 등산길에 무넹기라는 낯선 지명이 궁금하기도 하고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그곳이 화엄사로 내려가는 길목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넹기는 물길의 둑을 말하는 무넘기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한다. 노고단 아래 저수지의 물이 부족해 노고단 부근 계곡물 일부를 화엄사 계곡으로 돌렸다고 해서 '물을 넘긴다'는 뜻인 무넹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제강점기 때 전남 구례 마산면에 큰 저수지를 건설했다. 그런데 이 저수지에 물이 차질 않았다. 원인은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저수지를 채우기에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주민들은 노고단에서 전북으로 내려가는 물줄기 중 일부를 화엄사 방향 저수지로 유도 수로 224m를 개설하여 틀었다. 그렇게 저수량을 확보하면서 물 공급이 원활해졌다고 한다.
6) 천왕봉(1,915m) 코스
오늘은 못 올라갔지만, 언젠가는 천왕봉을 오르고 싶다. 꿈의 코스다. 백무동 코스는 경남 함양 마천에 위치한 마을인 백무동 시외버스터미널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다. 편도 거리는 7.5km이고 등산 소요시간은 편도 6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백무동~소지봉~장터목~천왕봉 코스가 무난하다고 한다.
천왕봉 당일치기를 하려고 하는 등산객에게는 백무동 코스가 좋다고 한다. 서울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 23:50차와 23:59차가 있는데, 이 차를 타서 새벽 3~4시에 백무동에 도착한 후 등산을 시작하여 천왕봉을 등산하고 내려와서 오후 버스를 타고 복귀한다고 한다. 좋은 컨디션으로 새벽 4시에 등산을 시작할 수 있다. 대신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만큼 피곤하기도 하고 또 주변이 어둡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은 물론이고 어둠을 밝힐 헤드랜턴이나 라이트는 필수라고 한다.
7) 화엄사
화엄사 경내에 동자스님의 3가지 앉은 모습(불견, 불문, 불언)의 조각상이 있다. 법구경에서 나온 말씀이라고 한다.
불견 (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불문(不聞)
산 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불언
불언(不言)
나쁜 말을 하지 마라.
험한 말은 필경에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익혀야 한다.
무넹기(해발 1300m) 표지목 앞이다. 계속 내려가면 1.8km쯤에 오늘 등산 출발점 성삼재가 있다. 오늘은 좌측 계곡을 따라 내려가 5.7km 지점의 화엄사가 최종 목표다. 무넹기 표지목에서 내려서니 곧바로 급경사 돌길이 시작되었다. 내 앞에 내 뒤에 아무도 없었다. 난코스를 겁 없이 덤빈 격이었다. 불규칙하게 만들어진 돌길은 내 등산화로써는 처음 겪어 보는 시련이었을 것이다. 등산화 바닥면에 닿는 모든 돌들이 낯설었을 것이다. 발목을 몇 번 접지를 뻔했다. 요행이 등산스틱이 막아 주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3km 정도 내려왔을 때 반복되는 어떤 주기를 알아챘다. 화엄사 계곡의 작은 지류 골짜기에 작은 바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비슬산 북한산에서 보았던 애추 지형(talus)이다. 너덜 돌서렁이라고도 부른다.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암석들이 오랜 세월 겹겹이 쌓여 돌밭을 이루고 있다. 무거운 큰 암석은 산아래로, 작은 암석은 상부에 남는다고 한다. 즉, 지류의 능선길은 흙길, 지류 계곡길은 애추 지형(talus) 위를 걸어 내려온 것이다.
연기암
한참을 내려가니 연기암 안내판이 나타났다. 그 화엄사계곡 등산로에 출입문이 있다. 그 문에서 우측으로 1km 가면 연기암이 있다. 출입문을 통과하자마자 그때 비로소 한 등산객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그는 등산스틱도 배낭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나를 지나갔다. 화엄사 방향으로 쏜살같이 내려가더니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졌다. 축지법으로 걸어가다가 홀연히 사라진 도사를 만난 그런 기분이었다. 연기암 표지판에서 2km를 더 내려가 마침내 화엄사에 닿았다.
지리산 화엄사 입구
화엄사는 544년(백제 성왕 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 절의 이름을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고 875년(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국사가 또다시 증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30년(인조 8년)에 벽암 선사가 절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 만인 인조 14년(1636년)에 완성하였다.
화엄사 동종
사찰 내에는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 등 많은 문화재와 20여 동의 부속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화엄사 백일홍
특히 건물의 배치에 있어서는 일주문을 지나 약 30˚꺾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 문수, 보현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 문은 금강문과는 서쪽 방향으로 빗겨 놓은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이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에 이르고 보제루는 다른 절에서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는 다르게 누의 옆을 돌아가게 되어 있다.
각황전
절내에서는 동. 서 두 개의 탑이 사선 방향으로 보이며 동측 탑의 윗부분보다 한단 높은 더위에 대웅전이 있고 서쪽 탑의 윗부분에는 각황전이 위치하고 있다.
화엄사 5층 석탑(동 탑)
경내 건물 중 각황전은 국보로 지정된 매우 유명한 건물이며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그 웅장한 외양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각황전 앞 뜰에 서있는 석등은 높이 6.3m, 직경 2.8m로 국내 최대 규모이며, 통일 신라시대 불교 중흥기의 찬란한 조각예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국보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각황전 왼편 효대라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4 사자3층 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운 탑으로 특이한 의장과 세련된 조각 솜씨를 자랑하는 걸작으로 국보이다. 각황전 내부 후편에 위치하고 있는 영산회 괘불탱은 국보로 1997년도에 지정되었다.
보제루
대웅전
화엄사 경내 보물 가운데서도 대웅전 양편에 서있는 5층 탑은 뛰어난 조형성과 섬세한 장식이 눈길을 끄는 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 또한 이곳의 대웅전은(보물) 조선시대의 우수한 예술성이 잘 나타나 있으며, 국립공원인 지리산의 훌륭한 경관을 배경으로 곳곳에 명소와 절경이 산재해 있다. (화엄사 내용 참조 : 대한민국 구석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