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仙巖寺)는 좋아하는 오랜 친구 같은 절이다.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10.26 사태 직후였다. 최전방 GOP 산꼭대기에서 일등병대한민국 열혈남아로 근무 중이었다. 전방에는 추위가 일찍 찾아온다. 입김이 바로 얼어붙는 아침에 관보가 전달되었다.
“모친 사망”
하늘이 무너졌다. (저의 지난 주제 ‘회색의 서울역’ 2021.10.20 참조, 브런치 첫 글)
부대 복귀 후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무료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철쭉이 피는 어느 따스한 봄날이었다. 땅 한평, 하늘 삼천 평, 철원 고지 중턱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복잡한 상념에 젖어 있는 나에게 순천 선임 고참 K가 화랑 담배 한 개비를 건네주며 말했다. 그때는 하루 두 갑 피는 골초였다.
“야! 우리 심심한데 펜팔이나 할까?”
“좋죠”
서로에게 친척 여동생을 소개해 주기로 했다. K는 한국 대표 장남 같은, 할 말만 하는 과묵한 사나이다. 나에게 위로를 해 주고 싶었나 보다. 군대 농담으로 “고참은 하늘이다 “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이를 초월했었다.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랜 친구가 되었다. 제대 후, 둘 다 복학생이었던 어느 여름 방학 날 서울에서 내려온 K가 그의 순천 넓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K의 부모님과 그의 동생들이 반겨 주었다. K와는 달리 그들은 유머가 있고 밝았다. 다음날 K는 훗날 백년지기 그녀와 함께 선암사를 보여 주었다. 그 후 선암사의 매력에 빠져, 그녀와 나의 장거리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 우연히 선암사의 선암매(저의 지난 주제 ‘선암사의 선암매’ 2021.10.24 참조) 스님과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졌다. 오늘은 순천 선암사를 둘러본다. 대구 달성 고향길 도보 여행, 비슬산 등산에 이어 선암사 여행이다. 순천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선암사 전경
선암사는 조계산(888m)의 동쪽 전남 순천시 승주읍에 있다. 한국불교 태고종 태고총림이다. 선암사라는 이름은 사찰 서쪽 조계산에 신선이 바둑을 두던 평평한 바위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 사(山寺),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접근로는 순천역 혹은 순천 종합버스터미널을 경유하는 순천 버스 1번에 탑승하여 종점에서 내린다. 자가용의 경우 호남고속도로 승주 나들목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주차장은 넓고 무료다. 건너편에 식당 20곳 정도가 있다. 주차장 근처 계곡은 개방되어 여름철에는 발을 담글 수 있다. 며칠 머물며 사찰과 차밭을 체험할 수 있는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도 있다.
조계산의 서쪽에는 국사 16명을 배출한 승보사찰인 송광사가 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통하는 선암사-장군봉(배바위)-굴목재-송광사 등산로가 있다. 산행거리는 약 12km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난이도는 산 중턱 길을 둘러 가는 정도로 그리 험하지 않다.
산행 도중에 장군봉 배바위가 있다. 배바위 전설이 선암사 중흥과 연관되어 있다. 조선 숙종 때 호암 대사의 기도처였고, 득도의 결과로 승선교와 원통전을 세웠다. 훗날 원통전에서 눌암 스님의 간절한 100일 기도는 순조를 탄생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순조의 현판 3개(大福殿,人, 天)가 있다.
선암사 주변 접근 경로는 다음과 같다.
순천 고속버스터미널(순천역)->아랫장->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의 길 표지판(팔마비)->웃장->승주읍 장터 느티나무-> 선암사(근처 : 배바위/낙안읍성/송광사)
순천역 기준으로 선암사 가는 길 반대쪽, 바닷가에 광활한 순천만 습지와 순천만 갈대 군락지가 있다.
선암사의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가지설이 있다. 하나는 529년(백제 성왕 7년/신라 진흥왕 3년)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산을 개척하여 비로암을 건축하였다. 이후 사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 해천사(海川寺)라고 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875년(통일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비보사찰로 창건하여 선암사(仙巖寺)라 하였다는 설이다. (선암사 초입 설명판 참조)
고려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고려 문종 넷째 아들)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이후 여러 번의 전쟁과 화재로 피폐해졌으나 그때마다 재건되었다. 특히 화재 피해가 많았다. 이 때문에 화재 예방을 위해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 절 이름을 해천사(海泉寺)로 바꾸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전각 곳곳에 水자나 海자가 새겨져 있다.
선암사(仙巖寺) 선암매(仙巖梅)가 유명하다. 이곳에서 선암사 어떤 스님이 나의 백년지기와의 인연을 더욱 돈독히 맺어 주셨다. (저의 주제 ‘선암사의 선암매 2021.10.24 참조) 200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무우전(無憂殿) 돌담가의 600년 넘는 고매화(古梅花)는 특별히 선암매(仙巖梅)라고 부른다.
스님들이 상월 대사 승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승탑 군(僧塔群)
매표소에서부터 약 1.5km 산책로에서 각종 새소리를 듣고, 계곡물과 울창한 수목을 보며 걷는다. 흙길 위에서 청량한 신선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사찰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2곳의 승탑 군이 있는데, 2번째 승탑 군에서 유독 한 비석이 각도를 달리하여 비뚤어지게 서 있다. 제자들이 배웠던 장소 강원(講院)을 향해 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19세기 큰스님 상월 대사 승탑인데, 제자들이 그 스님을 너무나 존경했다고 한다.
장승
장승
숲길을 걷다 보면 길옆 좌우측에 목장승 두 개가 서 있다. 이 장승들은 1987년에 밤나무로 만든 것으로 두 장승 모두 남자상이라고 한다.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며 자비를 베풀고, 불법을 수호하고 성불하게 돕는 착한 신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코부분이 내려앉아, 등신불을 연상시킨다. 오랜 풍상 세월을 견디며 겨우겨우 버티고 서있다. 현재 근처에 돌로 만든 새로운 장승과 함께 서있다.
승선교
승선교(昇仙橋)
승선교(길이 14m, 높이 7m, 너비 3.5m)는 계곡에 걸쳐진 무지개다리다. 자연암반 위에 곡선형 반원 홍예(虹預)를 세워 물에 비치면 완전한 원형이 된다. 그 원형을 통하여 사찰 쪽에 강선루(降仙樓)가 보인다. 길에서 물 흐르는 바위 근처로 내려가서, 위로 쳐다보면 천정에 용두(龍頭)가 박혀있다. 절을 지키는 용이라고 한다. 그용이 엽전 3개를 물고 있다.
다리를 완성하고 나서 축조 비용을 정산하여 보니, 그 나머지가 딱 엽전 3개였다고 전하여진다. 혼신을 다하여 축조하였다는 의미로 들린다. 임진왜란 이후 불에 타서 무너진 선암사를 중건할 때 원통전과 동시에 축조했다고 한다.
배바위 (설치된 밧줄을 타고 올라 간다)
전설은 이렇다. 숙종 24년(1698) 호암 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간절히 보기 바라며 배바위에서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어 낙심하였다. 하여 배바위 벼랑에서 몸을 던졌다. 이때 갑자기 한 여인이 나타나 보자기로 대사를 받아서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승선교와 원통전을 세웠다고 한다.
원통전(圓通殿)
원통전은 대웅전 뒤편에 있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불전으로 관음전(觀音殿)이라고도 한다. 원통전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상은 선암사에서 신도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후사가 없던 정조를 위하여 선암사 눌암 대사가 100일 기도를 했다. 그 후 순조가 태어났다고 한다. 훗날 순조가 하사했다는 '대복전(大福殿)' 현판이 내진에 걸려있다. 人(인), 天(천) 글자도 내렸는데 별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강선루
강선루(降仙樓)
승선교에서 강선루가 보인다. 선녀가 내려왔다는 누각이다. 누각 바로 밑에 선원교(仙源橋)가 있다. 상부의 선암매 옆 계곡물이 흘러 내려와 선원교를 통과한다. 조계산 큰 물줄기와 만나서 승선교 아래로 흘러내려간다. 선녀 신선과 관련된 전설이 많은 것은 선암사가 비보사찰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비보사찰의 사전적 정의는"명산이나 이름난 곳에 절을 세우면 국운을 돕는다는 불교 신앙과 도참설에 따라 세운 절"에서 나타난다.
삼인당
삼인당(三印塘)
전통 찻집 앞에 삼인당이라는 타원형 연못이 있다. 커다란 계란형 연못 중앙에 섬이 하나 있는 모습이다. 신라 경문왕 2년(862년) 도선국사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삼인(三印)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삼법인을 뜻하는데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근처에 하마비가 있다. 부처님의 자비를 되새기면서, 말에서 내려 걸어서 가라는 표시다.
일주문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출입문처럼 좌우에 야트막한 담장 사이에 있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간다. 曹溪山 仙巖寺이라는 현판이 있다.
고목
일주문 올라가기 직전 우측에 햇수를 알 수 없는 고목이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서 있다. 가지는 오래전에 사라지고 기둥의 상단 부분도 삭아 없어졌다. 속이 비워진 고목이지만 항상 경건한 마음이 든다. 인간의 마지막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범종루
범종루(梵鐘樓)
범종루는 일주문을 지나 높직한 계단 위에 서 있다. 1935년에 건립하였다. 원래는 영성루(迎聖樓)였으나 불기운이 가장 강한 남쪽 방위에 자리하고 있어 범종루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선암사는 화재를 멀리 하고 싶어 한다. 2단으로 아래층은 가운데를 비워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위층은 누마루를 깔아 범종과 목어, 법고, 운판 등 불구 4 물(佛具四物)을 설치하였다.
범종각
예불 때 치는 범종은 우측에 별도 다른 건물 안에 있다. 오후 6시경에 예불의식이 진행된다.
예불의식(타북 장면)
북소리와 타종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선암사를 자주 찾는 또 다른 이유다.
만세루(萬世樓)
만세루 위치는 오름 순으로 일주문-범종루-만세루이다. 만세루는 강당으로 총림에서 많은 학승들에게 강학을 하는 곳이다.
삼층 석탑과 대웅전
삼층석탑(三層石塔)
동. 서 삼층석탑은 만세루와 대웅전 사이 마당, 즉 중정(中庭)에는 같은 모양의 석탑 2기가 동, 서로 나란히 서 있다. 삼층석탑은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형태다.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선암사의 주불전으로 고려시대 의천에 의해 중창된 후 조선시대 정유재란으로 불탔다. 1660년(현종 1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1766년(영조 42년)에 다시 불탔다. 1824년(순조 24년)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현판은 순조의 장인 김조순의 글씨라고 한다. 그의 세도를 짐작할 수 있다.
설선당
심검당(尋劍堂)과 설선당(說禪堂)
심검당과 설선당은 대웅전을 바라보아 오른쪽(동쪽)에는 심검당이, 왼쪽(서쪽)에는 설선당이 대칭으로 마주 보고 있다. 중층(重層) 건물로 1층은 승려들의 수행공간, 생활공간 그리고 일부는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2층은 수장고이다. 외부에서는 1층으로 보인다. 1823년 3월 화재로 선암사가 전소되었다. 1825년에 심검당과 설선당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여러 번 화재를 겪은 선암사는 경내에 석등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선암사 스님이 나와 백년지기를 함께 데리고 들어가 말씀을 나눈 장소가 설선당으로 짐작된다.
선암매
선암사(仙巖寺) 선암매(仙巖梅)
선암매는 원통전과 선원 영역 사이에 커다란 살아있는 고목(古木)이다. '천연기념물 제488호 선암사 선암매'이다. 이 나무는 백매화로 각황전 옆 돌담길을 따라 늘어선 50여 그루의 홍매화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옛날 내 인생의 깊이를 더해주신 이름 모를 스님이 항상 생각나는 장소다. 그때는 너무 진지하시고, 두렵고 어려워 감히 법명을 묻지 못했다.
선암매 길을 위로 쭉 따라 계속 올라가면, 계곡에 발 담그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한적하고 아늑한 공간이 있다. 계절에 따라 풍경이 변하는 선암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허리 숙인 선암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장모님도 많이 노쇠하셨다. 장모님의 허리를 닮은 선암매도 있다. 차이점이라면, 장모님은 지팡이 없이도 웃장 아랫장을 잘구경하신다.
무우전
무우전(無憂殿)
선암매 초입에 있다. 근심(憂)이 없다(無)는 곳이다. 태고종 종정이 계신다고 '한국불교 태고종 宗正院(종정원)' 현판이 걸려 있다.
대각국사 의천
대각국사 의천(1055~1101) 초상화
고려 문종의 4자. 1805년 작. 보물 제1044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28cm, 가로 104cm. 약간 비스듬히 의자 위에 앉아 있으며 오른손은 의자 손잡이 위에 올려놓고, 왼손으로는 긴 주장을 잡고 있다. 얼굴은 몸체에 비해 큰 편이며, 큼지막하고 시원스러운 눈·코·귀와 함께 이마와 입가의 주름살까지 표현하여 고승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몸에는 녹색의 장삼을 입고 그 위에 붉은색의 가사를 걸치고 있다. (출처 : 다음 백과)
석정
석정(石井)
선암사는 정원 속의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석정은 아름다운 후원에 있다. 돌우물이라고 하는데 야생차밭 물을 끌어들여 나무에 골을 파서 연결하여 처음은 크고 높은 네모난 석정에, 조금씩 작아지고 낮아지는 둥근 모양의 석정을 거쳐 흐른다.연꽃이 있는 작은 사각형 연못으로 스며들고 마침내 해우소 아래로 흘러간다. 연결고리 인연처럼, 자연의 순리대로. 선암사 차(茶)는 석정 물로 끓여야 비로소 제 맛이 난다고 한다.
등굽은 노송
등 굽은 소나무 노송과 조그마한 사각형 연못 그리고 그 아래에 해우소가 있다.
해우소
선암사 해우소(仙巖寺 解憂所)
나무로 만든 큰 화장실이다. 중생들에게 번뇌 근심 걱정거리를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라는 의미다. 화장실의 옛말 뒷간의 고어가 우에서 좌로 씌어있다. 해우소 창살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다.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해우소 )시
해우소는 정호승 시인의 시로 유명하다. 해우소에 앉아 있으면, 순천역의 기차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저녁 무렵 스님의 목어, 종 치는 소리가 들린다. 등 굽은 소나무가 해우소를 내려다보고 있다.
선암사(仙巖寺)
정호승 시인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