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동쪽 천왕봉을 오르기로 했다. 지리산 산평선(山平線)을 다시 한번 느껴 보기 위해서이다. 연결된 산들이 물결치는 산평선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지리산 서쪽 구례 성삼재~반야봉은 추석 다음날(2022.09.11.) 이미 다녀왔다. 그 후로 지리산 동쪽에 숨겨 놓은 보물이 있는 것처럼 무척이나 궁금했다.
백무동 지리산행 버스(34번 탈곳)
금요일 밤 23:59분 동서울터미널 발, 토요일(2022.10.22.) 새벽 03:30분 백무동 착 버스를 탔다. 이런 무지막지한 무박 도전은 난생처음이었다. 일정상 방법은 없었다. 다음 주에는 꼬맹이 손 3호 돌잔치가 있다.
일기예보는 기온은 5도~19도,토요일 날씨는 흐림, 일요일은 맑음이라고 했다.목요일 새벽, 마지막 좌석 한자리를 인터넷 예약 성공했다. 강변역 옆 동서울터미널 34번 승강장에서 탑승하였다. 함양과 백무동 지명 혼동으로 함양~백무동 구간 1,300원 더 지불했다. 버스 주행 중 비몽사몽 간간히 토끼잠을 잤다. 나를 제외하고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지리산 천왕봉에 벌써 첫눈(2022.10.10.)이 왔다는 사진과 뉴스를 접했었다. 무엇보다 단풍이 걱정되었다. 이번 산행의 주제는 산평선과 단풍 그리고 달과 별이었다. 간절한 소망이 결국 나를 야간 밤 버스를 타게 하고, 지리산 천왕봉으로 이끌었다. 천왕봉 등산 성공하면 그 후 1박은 달과 별과 고사목으로 유명한 지리산중간쯤의벽소령에서 벽소 명월(碧宵明月)을 감상하는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벽소령 대피소에 숙소를 예약했다.
동쪽 지리산은 예측 불허의 일기 변화와 바위가 득실거리는 근육질의 남성적인 코스였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내친김에 노루목 임걸령 삼거리에서 피아골-직전 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로 목표를 정했다. 피아골은 지리산 제2경으로 단풍이 제일이라고 한다. 만일 성공한다면 지리산 전 구간을 종주하고 둘러보는 그런 도전 코스였다.
안타깝게도 중도에 다리 근육 통증과 체력의 저하로 실패했다. 당연히 벽소령 대피소 예약도 취소했다. 백무동-천왕봉-세석 대피소-한신계곡-백무동 코스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머지 못 가본 잔여 코스는 아쉽게도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다.
백무동 단풍
매스컴에서는 10월 셋째 주가 단풍 절정기라고 하였으나, 지리산 고지대에는 벌써 첫눈이 와서 이미 단풍은 끝물이었다. 세석 대피소에서 한참을 내려와 한신 계곡의 가내 폭포 근처에 다다라서야 겨우 가을 단풍을 맛볼 수 있었다.
세월에 장사가 있겠는가 하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내 인생에 또 다른 실패가 하나 추가되었을 뿐이다. 목표를 못 이루었을 때 기억에 더 오래 길이길이 남는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 가? 이 세상에 실패하지 않는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 인생에 실패가 어디 한두 번 있었던가? 매일매일 넘어지고 부서지고 깨지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다행히 어디 다치지 않고 절룩거리는 두 다리를 끌고 내려왔다. 무사히 하산한 것에 대하여 무한히 지리산 천왕 할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행을 마무리했다.
천왕봉 정상 부근 구름
천왕봉 정상 부근의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구름 속을 걷다가 때로는 구름 위를 걷는가 싶었다. 바로 머리 위 눈앞의 구름이 뭉쳐 비를 눈앞에서 만들어 내었다. 발 앞에 비로 뚝뚝 떨어지는 진기한 체험을 하였다. 발아래 계곡에 구름이 수직으로 세워져 좌에서 우로 단체 군무로 진군하듯이 이동하였다. 우측의 단풍 광경을 삽시간에 지워 나가고 있었다. 구름이 산등성이를 휘두르고 흘러 순식간에 계곡을 채웠다.
정상석이 있는 곳의 바람소리는 겨울 북풍 소리다. 갑자기 어느 등산객의 모자가 강풍에 벗겨져서 계곡 아래로 날아갔다. 머리 위에는 수리 한 마리가 구름 속을 빙빙 회전하며 돌아다녔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신비한 선경이 연출되었다. 정상 샷 촬영을 위해 추위에 떨며 20여분 줄을 서야 했다. 그야말로 장사진이었다. 법계사 방향에서 올라온 등산 동호회원 이십여 명이 합류하여 좁은 정상석 기념사진 촬영 장소는 그야말로 인기 절정 잔칫집 분위기였다. 정상은 급격한 기온 하강으로 모두들 움추러 들었다.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1. 지리산 10경
지리산에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10 경이 있다. 전번 서쪽 등산할 때에는 제3경과 제4경을 어렴풋이 보았다. 이번에는 제1경과 제6경 그리고 제8경을 볼 수 있는 코스에 있었지만 일기와 계절적 실기로 만끽하지는 못했다. 제1경 천왕 일출(天王日出)은 정말 3대 적선을 해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제6경 세석(細石) 철쭉은 봄에 와야 한다. 제8경 연하 선경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무가 멋있었다.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지리산 10 경하면, 노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시인의 시, 가수 안치환)이 떠올라 자주 듣게 된다.
세석 평원에 수 십만 그루의 철쭉이 5월 초부터 6월 말까지 꽃망울을 터뜨리며 한바탕 흐드러진 잔치
* 7경 - 불일현 폭(佛日顯瀑)
청학봉(淸鶴峰과) 백학봉(白鶴峰) 사이의 험준한 골짜기 속의 깊은 낭떠러지 폭포
* 8경 - 연하 선경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무가 홀연히 흘러가곤 하여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천왕봉을 향해 힘차게 뻗은 지리산의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사이에는 온갖 이름 모를 기화요초가 철 따라 핀다. 이끼 낀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과 이름 모를 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지리산과 어우러져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고산준령 연하봉의 선경은 산중인을 무아의 경지로 몰고 간다. (참조 : 대한민국 구석구석)
* 9경 – 칠선계곡(七仙溪谷)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 계곡 전체가 청정한 선경. 상당한 기간 산림보호를 위하여 입산통제 중이다.
3) 보행수는 약 35,000보. 체력 저하 및 하체 장딴지 옆구리 쪽의 통증으로 지연되어 약 14시간(03:40경 백무동 등산로 출발~17:40분경 백무동 버스정류장에 도착) 소요. 특히 세석 대피소에서 백무동 방향 한신계곡 하산길에서 다리 근육 통증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3. 천왕봉 오르기와 세석평전, 한신계곡의 길
체력이 있는 열혈 등산객은 천왕봉 당일치기를 할 수 있다. 서울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 23:50차와 23:59차가 있다. 이 차를 타고 새벽 3~4시경에 백무동 도착한 후 등산을 시작한다. 천왕봉을 등산하고 내려와서 오후 버스를 타고 복귀하면 된다. 단, 좋은 컨디션과 사전에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 어둡기 때문에 어둠을 밝힐 헤드랜턴이나 라이트는 필수다.
지리산 천왕봉 등산 출발 (백무동)
1) 백무동->소지봉->하동바위->참샘
헤드랜턴을 장착하고 어두컴컴한 산길을 발 앞 돌계단만 보고 오르고 또 올랐다. 가파른 길이라 조금 앞선 등산객과의 거리도 불빛으로 가늠하면 상당히 멀어 보이고 조급해진다. 자기 페이스대로 평심을 유지하고 묵묵히 오르면 된다. 야간 산행은 발밑의 돌과 표지판에 집중해야 한다.
백무동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오르막길을 5분 정도 올라가면 백무동 탐방지원센터와 백무동 야영장이 나온다. 등산로의 입구에 두 개의 표지판이 있는데, 하나는 천왕봉과 가장 가까운 대피소가 있는 장터목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세석 대피소로 가는 길이다. 보통 백무동 코스라고 하면 장터목으로 바로 가는 코스를 말한다. 세석평전으로 올라가는 길은코스가 너무 길어 당일치기로는 무리다.
백무동탐방지원센터 ~ 소지봉 (3km, 약 2시간) 작은 개울 옆으로 나있는 돌계단길을 오르고 또 오르면 이 개울의 발원지인 참샘이 나온다. 캄캄한 밤에 앞서 올라가며 대화를 나누는 60대 아버지와 20대 따님이 있었다. 대화가 참 재미있었다. 따님이 얼굴 화장을 하지 않고 외출했단다. 마침 비가 왔다. 한 고등학교 남학생이 친구들에게 비가 와도 화장이 지워지지 않는 방수 화장(water proof)을 했다고 화장에 대하여 아는 체하더라는 이야기였다. 따님의 청량한 웃음과 맑은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참샘~소지봉 구간부터는 점점 경사가 급해지는데 중간에 잡고 올라가도록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소지봉(1,312m) 이후 일부 구간은 평평한 흙으로 이루어져 있고 의자도 있어서 쉬어갈 수 있다.
소지봉 ~ 장터목 (2.8km, 약 2시간) 소지봉 ~ 장터목 구간 탐방로는 돌계단 구간이 줄어들고 흙길과 목재계단 구간이 늘어나 조금 편하다. 흙이 있는 능선길이다. 장터목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이 더 트여 경치가 좋아진다. 서서히 밝아지는 여명 속에서 머리를 들어보면 하늘이 열리는 듯 보인다.
마침내 해발 1,670m의 장터목이다. 장터목 대피소에는 취사장, 야외 긴 의자, 매점, 화장실, 샘터 등이 있다. 천왕봉 올라가는 출발점이다. 경남 산청군 지역을 비롯해서 경남 남부 지역과 남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하나, 구름에 가려 보지 못했다.
장터목 대피소 풍경
2) 장터목->제석봉->천왕봉->제석봉->장터목
장터목 ~ 천왕봉 코스는 돌길과 나무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간은 백무동 코스에서 가장 등산 난도가 높은 구간이다. 백무동 코스에서 뿐만 아니라 지리산 전체에서도 이 1.7km의 구간은 험하고 경치가 가장 좋다고 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옛날 고지대 장터목에 장터가 들어서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팔거나 물물 교환을 하였다고 한다.
장터목 ~ 천왕봉 (1.7km, 2시간)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제석봉(1,808m)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나온다. 돌계단이 끝나면 구상나무와 고사목 군락이 있다. 이 풍경은 이국적이고 아름답다. 안타깝게도 1960년대 남벌꾼들이 이곳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고사목과 통천문
바위가 끼워져서 암굴의 형태를 띠고 있는 하늘과 통하는 문이라는 뜻을 지닌 '통천문(通天門)'이다. 올라가는 구간에는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의 해발 고도는 1,814m이다.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 바로 밑 큰 바위에 '天柱(천주)'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남명 조식 선생의 글귀라고 한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 표지석 (앞과 뒷면)
마침내 해발 1,915m의 천왕봉 정상에 도착했다. 천왕봉 정상석 뒤면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혀 있다.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연하봉으로 출발했다.
천왕봉 계곡과 능선
지리산 선인 유람길
지리산 천왕봉 제석봉 근처에 안내판이 있다. ‘지리산 선인 유람길’이란 장터목~제석봉~통천문~천왕봉의 등산로를 의미한다. 최치원 선생(857년~미상), 김종직 선생(1431년~1492년) 조식 선생(1501년~1572년)의 천왕봉 등산에 대하여 기록이 있다.
지리산 선인 유람길
안내판에 따르면, 최치원 선생은 당나라 유학자로서 신라에 돌아와 개혁적인 정치를 주장하였으나, 신분적 한계에 부딪혀 실현하지 못하고 지리산으로 들어와 은둔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김종직 선생은 함양 고을 수령으로 있던 1472년 (성종 3년), 지리산을 산청군 도강 마을에서부터 쑥밭재, 천왕봉을 거쳐 세석고원, 백무동까지 4일간 유람하였다고 적혀 있다는 이야기다.
남명 조식 선생은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서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그의 저서 지리산 유람록(유두류록, 1558년)에서 지리산을 12번이나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연하봉
3) 연하봉
60대 어머니를 모신 20대 청년의 모자 등산객을 만났다. 노고단 가는 길을 내게 물었다. 연하봉을 배경으로 어머니 사진을 열심히 찍어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연하봉은 지리산 제8 경이다.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운무가 아름답다.
연하봉 삼선봉 부근
4) 삼산봉
봉우리가 많아 정확히 어느 봉우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반대편에서 오는 60대 친구들끼리의 대화가 재미있었다. “한 25년 전에 배낭을 둘씩이나 메고 이곳을 지났다”는 회고담이 들려왔다.
또 다른 구간에서는 친구 간의 대화중 “ 옛날에는 이곳을 뛰어다녔다”는 무용담도 들렸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지리산을 오르는 ‘추억의 옛 등산로 탐방‘인 셈이다. 단체, 동호회, 친목, 친구, 연인끼리의 등산객이 많이 보였다.
촛대봉
세석 평전
5) 촛대봉
결국 다리 통증으로 지리산 종주 계획을 포기했다. 벽소령 대피소 숙소 예약을 취소했다. 백무동 한신계곡 내려가는 표지판이 안 보여 두 사람에게 한신계곡 내려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촛대봉 부근에서 벽소령과 백무동 한신계곡 내려가는 표시 안내판을 발견하지 못했다.
세석대피소 내려가는 길옆에 넓은 세석평원이 있고, 습지대가 있다. 습지대 보완 공사가진행 중이었다.지리산 제6경 세석철쭉(細石)이 촛대봉 일대와 세석 평원에서펼쳐진다. 수 십만 그루의 철쭉이 5월 초부터 6월 말까지 꽃망울을 터뜨린다고 한다.
세석 대피소와 세석 습지
6) 세석대피소
등산로 아래 조용한 산장 같은 평화로운 분위기의 아담한 대피소가 있다. 아래 방향으로 내려가면 거림, 실상사가 나온다. 오후 하산길에 백무동에서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올라오는 등산객이 보였다. 아마도 세석 대피소에서 야경을 즐기려는 시간적 여유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한신계곡의 다리들
7) 한신계곡(한신폭포~오층 폭포~가내소 폭포~첫나들이 폭포)
한신계곡에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열개 정도의 크고 작은 다리가 놓여 있다. 계곡과 단풍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세석대피소에서 출발하여 한신폭포 방향으로 20분 정도 경과하여 내려오는 길에서 키가 큰 50대 중년의 멋진남자분을 만났다. 아주 큰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 부탁하여 왔다. 인연이 있는 나무라고 했다. 어떤 인연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였다. 그것이 무엇 중요하겠는가 싶었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니 계속 궁금했다. 어떤 인연일까?
가내소 폭포
가내소 폭포 전설
안내간판에 따르면, 신라시대 한 스님이 이곳에서 도를 닦다가 어느덧 도가 통할 무렵 자기 도력을 시험하고자 실 타기 도전을 하였다. 계곡 사이에 실을 매달아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막 실 건너기를 끝내려는 순간, 지리산 여신의 유혹으로 도중에 헛발을 딛고 그만 계곡물에 빠지고 말았다.
비록 여신의 방해가 있었다고 하나, 도전에 실패해 도력의 한계를 깨닫고 크게 낙심한 스님은 그 길로 수행을 포기하였다. “나는 가네”하면서 떠나고 말았다. 이후 “가네”하며 갔다고 “가내소”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너덜겅
가내소 근처에 너덜겅이 계곡이 있다. 먼 옛날 지구에 빙하기가 닥치고, 아주 추웠던 때에 절벽이나 커다란 바위가 풍화되면서 떨어져 나간 돌들이 산비탈에 쌓여 만들어졌다. 너덜겅에는 빈틈이 많아 박쥐, 족제비, 뱀, 등이 보금자리로 이용한다.
백무동 유래
8) 백무동야영장 /백무동탐방지원센터/버스정류장
백무동 유래 (3가지 한자 지명)의 간판이 있다. 천령지(天嶺志)에서는 안개가 춤추는 신선이 사는 마을, 白霧洞이란 이름이다. 현재의 白武洞은 1914년 행정개편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지리산 천왕봉이 있는 성모사를 상단, 제석단을 중단, 백모당을 하당이라 하여 지리산 산신인 천왕 할머니를 모셨다. 지리산 천왕 할머니에게 복을 빌려 무수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하여 백모동(白母洞)이라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지리산 천왕은 할머니다.
상경 편 버스의 좌석 밑 발근처에서 무엇인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손목에 차는 전자시계 겸 휴대폰 기능을 가진 시계로 보여, 운전기사분에게 주인 찾아 주라고 부탁하고 넘겨주었다. 잘 전달되었으면 한다. 당사자에게 지리산 등산이 마음 아픈 추억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지리산 표지판
다음의 나의 나머지 잔여 구간 지리산 산행이언제 실현될지, 계속될지, 중단될지 알 수는 없다. 한 치 앞의 일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다. 나의 지리산 종주를 위하여 나 자신을 응원하여 본다. 나의 지리산 종주 완주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