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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08. 2020

클리어 프롭

"시작"

“클리어 프롭!”


시동을 걸기 직전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외친다. 


비행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엔진 작동을 알리는 말이다. 멈춰있던 비행기가 진동하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관제사의 이륙 허가를 받고 천천히 스로틀을 밀어 파워를 올리면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조종사의 능숙한 조작과 자연의 바람이 만나 1톤에 달하는 육중한 기계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된다.  


밤마다 같은 꿈을 꿨다. 새처럼 하늘을 날며 내가 살던 동네 곳곳을 내려다보는 꿈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 능력 하나면 세상 전부를 다 가진 기분이었다. 잠에서 깨면 눈을 감고 그대로 누운 채 꿈의 잔상을 떠올리며 행복에 젖어들었다.



어릴 적 꿈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1년 동안 비행학교에서 공부하고 훈련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사업용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다. 내게 남은 건 단순한 손바닥만 한 자격증이 아니다. 길을 걷다가도 눈 감고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다 보면 그때 그곳으로 돌아가 비행하는 나를 만난다. 


끈적끈적한 오일과 쾌쾌했던 칵핏 안의 공기,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관제사와 조종사들의 음성,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청명한 하늘과 길다랗게 뻗은 새하얀 구름, 한적한 시골마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미소 짓는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돛을 펼쳐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세요.
당신의 항해에 무역풍을 가득 담으세요.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세요.


100여 년 전 마크 트웨인이 남긴 이 조언은 도전과 설렘의 순간으로 가득한 인생을 누비도록 나를 이끌었다. 학창 시절 독서와 사색을 좋아하였던 탓에 사춘기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솔직한 글로 표현하였고 80년 해직기자였던 아버지처럼 정직한 언론인이 되고 싶어 노력 끝에 방송 기자가 되었다. 


사회부 기자로서의 삶은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눈 뜨게 했고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넓혔다.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스무 살 청년으로부터 젊은 여인의 목숨을 앗아간데 대한 격렬한 분노와 자신의 청춘을 포기한 것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을 느꼈다. 부산역 노숙자와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 앉아 밤새 쓰디 쓴 술잔을 나눴을 때에는 그들에게도 분명 존재했던 찬란한 전성기와 지금의 초라한 현실의 괴리로 인한 고통에 공감하였고 남부러울 것 없는 사업가와 정치인들도 저마다 감추고 싶은 속내가 있음을 알았을 때 인간의 희로애락과 새옹지마를 이해하였다. 

솔로 크로스 컨트리 비행 Cessna 152


산업부 기자로 공항과 항공사를 출입하면서 항공업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취재를 통해 알게 된 많은 조종사들은 나의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그들이 들려준 파일럿이란 직업과 경험담은 하늘을 날며 세상을 여행하는 삶에 대한 나의 동경과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언론인로서 8년간 쌓아온 커리어를 이어갈지, 비행하는 새 삶에 도전할지 고민하였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0여 년 전 영문학 강의 시간에서 만난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실망과 후회로 삶을 낭비하지 말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겠다는 의지가 나에게는 더 강렬하였다. 나는 가보지 않은 미지의 그곳으로 직접 뛰어들기로 작정하고 1년 동안 먼 여행을 떠났다. 하늘을 날던 어린 소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비행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하늘을 날던 모습을 회상하며 시간 여행을 즐긴다. 인생에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다. 결정하기까지 오랜 고민이 따른다. 하지만 한번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말고 전력 질주해야 한다. 새로운 출발의 순간, 더 자신 있고 힘차게 비상할 수 있도록 크게 외쳐보자. 클리어 프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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