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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19. 2020

숏 필드 랜딩

"돈보다 열정"

나이지리아 출신 교관 툰지

툰지는 원래 나이지리아 출신의 유학생이었다. 그도 처음엔 학생 신분으로 자가용 면장부터 시작해서 계기와 사업용 면장, 멀티, 교관 자격증까지 같은 비행학교에서 취득했다. 툰지를 처음 만난 건 그가 막 교관이 됐을 때였다. 그가 나의 첫 교관이었고 나는 그의 첫 학생이었다. 툰지는 유독 내게 많은 관심과 열정을 쏟았다. 내가 실수할 땐 강하게 야단고 지쳐있을 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스테이지 통과 같은 작은 이벤트에도 자기 일처럼 뛸 듯이 기뻐하고 칭찬했다. 내가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에 비행을 시작한 것을 알고 곁에서 부지런히 애쓰며 챙겨줬다.


일요일엔 학교가 문을 닫고 모든 교관들이 쉬는데 한 번은 툰지가 일요일에 수업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고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당연히 좋다고 반겼다. 툰지는 수업 이후에 자기 아들과 비행 나갈 거라며 내 헤드셋을 빌려달라고 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툰지 옆에 웬 백인 아이가 서 있었다. 툰지는 그 자기 아들이라고 내게 소개했다.


'이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백인 아이가 자기 아들이라고?'


나는 놀라 잠시 머뭇거리다 엉겁결에 그에게 악수를 건넸다. 툰지는 교관과정을 는 동안 알게 된 한 백인 여성과 교제해서 결혼하게 됐는데 그녀에게 14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툰지내게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그의 태연함에 그의 아들과 인사하던 순간 당황한 모습을 보였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평소 문화적인 다양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자부했다. 순전히 말로만, 또 머리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툰지는 결혼과 동시에 영주권을 취득하고 미국에서 계속 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아내가 공항 근처에 있는 직장에서 일하는데 날고 있는 우리 비행기를 그녀가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며 내게 자랑했다.  


I can do this all day.
난 이걸 하루 종일 할 수 있어.


툰지가 비행하는 동안 자주 쓰던 말이다. 마블 영화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의 대사인데 그만큼 그는 가족과 비행을 사랑하고 비행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툰지는 학교에서 가장 부지런한 교관 중 한 명이었다.


새벽 일찍 학교에 나와 학생들과 비행하는 교관은 툰지 외에 스티븐이 유일했다. 어느 날 툰지와 새벽 5시에 학교에서 만나 비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저 멀리 활주로에서 행어로 들어오는 비행기 한 대가 보였다. 칵핏 안에 스티븐과 알래스카 출신의 금발 여학생이 타고 있던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보통 한번 교육에 평균 두 시간 정도 비행한다. 스티븐 새벽 3시 반에 출발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멀티 엔진 과정을 배우면서 크로스컨트리와 야간비행을 스티븐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비행하면서 많은 얘기를 서로 나눴는데 그는 항공사에 취직할 수 있는 충분한 비행시간을 쌓았음에도 단지 비행하는 것이 좋고 가족들과 하루도 떨어지는 것이 싫어 계속해서 박봉의 교관 생활만 한다고 했다. 추수감사절에 그의 집에 초대받아 갔었는데 그가 왜 에어라인 조종사가 되길 포기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가정을 이룬 모습이 부러웠다. 부지런한 스티븐과 툰지는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교관이었다. 그런 두 사람으로부터 비행을 배울 수 있었던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취업을 앞둔 한국의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이 파일럿에 도전한다. 비행 유학을 떠나거나 국내 교육원에서 비행을 시작한다. 적잖은 기회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큰 각오와 결심이 필요한데 막상 지원자의 대다수는 그들이 원하는 항공사 부기장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비행을 시작하기 전에 항공사에 취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그들 가운데 툰지와 스티븐처럼 순수하게 비행 자체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항공이란 분야의 지적인 호기심에 끌렸지만 동시에 항공사 파일럿의 높은 연봉을 꿈꾼 것도 사실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높은 연봉의 유혹에 빠져 파일럿의 꿈을  꾸는 건 아닌지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준, 너 잘하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 긴장하는 거야?"

"알았어. 다시 해 볼게."


툰지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짧게 내뱉었다. 실망한 기색이었다. 스테이지 3에서 불합격한 숏 필드 랜딩을 다섯 번째 시도하고 있었다. 활주로가 유독 짧은 브리스토우 공항에서 연습했는데 평소 비행하던 공항과 달리 활주로 끝단이 경사 진 탓에 학생이나 교관 모두 긴장을 한 순간도 놓을 수 없었다.

숏 필드 랜딩(short field landing)
:공항 활주로가 짧을 경우 활주로 전체를 활용하기 위해 활주로 끝단에 있는 숫자에 터치다운(착지)하는 착륙법


숏 필드 랜딩은 조금이라도 그 숫자에 못 미치거나 넘어서는 순간 불합격이 된다. 하지만 브리스토우 공항은 그 숫자에 못 미치면 비행기가 경사진 활주로 위에 안착하지 못하고 그대로 언덕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침착해. 알지? Nice and easy.
그래. Nice and easy.


N94268 칵핏 내부 Cessna 152


툰지가 늘 즐겨 쓰는 말이었다. 첫 비행할 때부터 나한테 강조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대하듯 비행기를 조심히 다루라며 긴장을 풀고 부드럽게 비행할 것을 주문했다. 트래픽 패턴 고도인 1800피트를 유지하며 공항을 한 바퀴 돈 뒤 파이널 구간에 진입했다.


"Bristow traffic, Cessna 94650 final runway 18, Bristow."

-브리스토우 공항, 세스나 94650, 활주로 18 파이널 구간에 진입함.


브리스토우 공항은 관제사가 없는 논 타워였다. 셀프 라디오 콜을 하면서 동시에 플랩을 30도로 내린 뒤 스로틀을 당겨 파워를 줄였다. 비행기는 서서히 하강했다.


"준, 전봇대 조심해."          


공항 활주로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파이널 구간에 전봇대가 길게 연결돼 있었다. 하강 속도가 빠르거나 각도가 크면 자칫 큰 충돌 사고가 날 수 있는 까다로운 곳이었다.


"좋아. 그렇게 천천히 내려가. 지금 이 상태만 유지해."


하늘에서 내려다 본 털사 

툰지의 조언대로 천천히 하강했다. 그러다 갑자기 맞바람이 강해지면서 비행기가 일정한 하강 곡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떨어지는 폭이 점점 커졌다.


"바람 분다. 파워 조금 더 줘."

"오케이."


파워를 조금 더 넣는 순간 하강하던 비행기는 수평비행을 하다가 활주로 숫자를 지나치면서 지면에 안착했다.


"갑자기 바람 불어서 어쩔 수 없었어. 나쁘지 않았어."


툰지는 날 격려했다. 이후 랜딩 연습을 열 번 더하고 그중 여덟 번의 성공을 한 뒤 공항으로 복귀했다. 툰지는 로스를 찾아가 평가 대기 리스트에 내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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