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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쯔잉 Aug 30. 2021

라떼파파는 있지만 라떼마마는 없다

아빠가 라떼를 마시는 사이에 엄마는 분유를 먹인다

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나는 호기심으로 두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오늘 점심 뭐 먹었어? 일은 많았어? 회사 분위기는 어때?

얼핏 들으면 초등학생한테 급식은 맛있었는지. 선생님 말은 잘 들었는지, 친구와는 사이좋게 지내는지를 캐묻는 느낌이긴 하다. 하지만 첫 자녀가 회사라는 곳을 다니게 되면 부모의 모든 관심이 곤두서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주일 후 나는 더이상의 질문을 멈췄다. 딸이 첫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날에 들려준 이야기는 평생 재택근무자로 살아온 내게는 온통 놀라움 투성이었다.


"엄마, 팀장님이랑 실장님이 아빠 뭐하시냐고 물어보더라."

"왜?" 

"그냥 아빠 하시는 일이 궁금한가봐."

"그래서?"

"언제 아빠랑 술 한잔 하시고 싶대."


불과 사흘 전 나는 딸회사의 전략 기획실장님이 신입사원 부모님한테 보내는 감사 편지를 받고 감격에 젖어 있었다. 귀하의 따님이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례적인 내용인 줄 알면서도 행여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라 모기라도 물릴 세라 낮이고 밤이고 노심초사하며 애면글면 키운 딸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는 뿌듯함은 대학입시 합격의 기쁨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침내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 했다는 안도감에 '부모졸업장'이라도 받은 양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회식 자리에서 내내 언급되었다는 아빠의 존재감 앞에서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껏 남편은 자녀 양육에 있어서 멀찌감치 빠져 있었다. 한밤중에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갈 때도 중요한 진로를 결정할 때도 사춘기로 방황할 때도 대입 전략을 세울 때도 아빠의 자리는 부재였다. 

스웨덴같은 유럽 사회에서는 아빠의 육아 참여를 독려하는 정책으로 인해 라떼를 마시며 아이를 돌보는 남편들을 지칭하여 '라떼파파'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가장들은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가정이나 육아 따위는 일찍이 엄마에게 일임하고 본인은 거대 조직의 일원으로 가정을 겉도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거대 조직에 아빠와 남편을 빼앗기고 아빠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두 배는 더 정성을 쏟았던 딸의 첫 직장에서 나는 또다시 거대한 조직의 발톱을 목격했다. 

엄마와 여성은 사라지고 아빠와 남성 중심의 연대만이 살아남은 조직 문화 속으로 딸을 밀어넣은 기분이 어쩐지 으스스하다. 

라떼 파파는 있지만 라떼 마마는 없는 이유. 

아빠가 라떼를 마시는 사이에 엄마는 분유를 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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