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수단으로서의 삶과 목적으로서의 삶이다. 수단으로서의 삶은 목적으로서의 삶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으로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고, 목적으로서의 삶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니며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필자의 경우 두 아들을 돌보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의 삶이다. 어떤 수단이 아니라 아기들과 있는 시간 그 자체를 살기 위해 살아간다. 어떤 대가도 필요없고 그 시간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충만하다. 글을 쓰는 것도 그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최근에 하나 생각이 바뀐 것이 있는데 논문을 쓰는 것이 수단으로서의 삶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학에 근무하면서 논문을 계속 쓰다보니, 논문은 논문 그 자체로서 인류의 학문에 기여한다는 목적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승진을 위한 도구나 다른 수단으로서는 그 의미가 비할 바 없이 작다는 것이다. 논문도 역시 그 자체로 목적이다.
수단으로서의 삶은 지금은 포션이 줄어들었지만, 예를 들어 돈을 벌기위해 혹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수단으로서 삶을 소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어서 총 삶의 20%도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계속 줄여서 5% 미만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한 때는 하루의 시간 대부분이 이 수단으로서의 삶이 차지했던 적도 있다.
그럼 이 논의에 이어서 이야기해보자면, 어떤 인생이 잘 사는 인생일까? 필자는 목적으로서의 삶으로 가득찬 삶이 잘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수단으로서의 삶이 가득차 있다면 아무리 돈이 많고, 수단이 많아도, 개인에게도 불행이고 의미가 없는 삶이다. (아마 본인도 속으로 느낄 것이다.)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논문을 쓰는 것도, 산책을 하는 것도, 아이들과 노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적정한 양의) 진료를 하는 것도, 이런 시간들은 그 자체로 목적이고, 수단으로서의 삶이 사라진다면 이런 활동들만 계속해서 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게 필자가 생각하는 잘 사는 인생, 충만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