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주영 Nov 21. 2020

재택근무가 꼬박 반년이 되어간다.

2020년 9월 27일 오후 11:08

사무실에서 컴퓨터와만 눈싸움하면 되던 일상이 변했다. 괜한 잡념에 싱숭생숭 바람이 들고.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아 퇴근시간 후에도 1시간은 더해 일을 질질 끌게 된다. 매일 일과 마음이 씨름을 벌인다. 어떻게든 일을 마무리하면 기진맥진해서는 침대 위에 누워 천장만 보다가, 손가락 누르는 일에 매사 반응해주는 폰만이 기특해 폰만을 어루만지고 1시간이다.

그러던 목요일 밤쯤이었나. 평소처럼 눈에 잡히지도 않는 코드와 채팅 내용을 되짚어가며 수정을 마무리하고 드러누웠다가 배에서 소리가 났다. 기운을 내야 한다고 몸을 벌떡 일으켜 요리라도 하려 보면 싱크대에 그릇과 냄비가 쌓여 뭐라도 해먹을 형편이 아니고. 힘을 내서, 기운을 내서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를 닦았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가지런히 양파며 소스며 면이며 꺼내 늘여놓고 냄비 물을 끓어 면을 7분 삶고, 양파 썰고, 물 따라버리고 소스 부어 간을 보고 후추 넣고 양파 넣고 졸여 그릇에 따로 담았다.

그리고, 그리고 파스타를 책상 위에 얹자마자 그릇이 가볍게 바닥으로 쏟아졌다. 남청색의 카펫 위에 토마토소스의 빨간 물이 또렷하게 뱄다.

모락모락 김 나는 파스타 면들이 날 쳐다봤다. 뜨거워 손 델까 고무장갑을 껴서 쓰레기봉투에 옮겨 넣고, 바닥을 키친타월로 닦고. 대충 수습하고 나가서 라멘집에서 만두며 라멘을 사 먹었다. 돌아와서, 소스 냄새가 나는 방 안에서 가습기에 아로마향을 넣고 잤다.

그리고 금요일. 카펫에서 소스 냄새며 자국이 빠질 생각을 않길래 카펫 위의 가구 하나하나를 들어 올려 카펫을 빼냈다. 그걸 돌돌 뭉쳐 욕조 물에 담가 1시간 동안 음악을 들으며 몇 번이고 누르고 제치고 누르고 뒤집으며 발로 빨래했다. 축축 젖은 카펫을 품에 안고 코인빨래방에 들고 가서 50분간 카펫이 돌게 했다.

집에 돌아오며 생각했다. 나는 이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불평하지 않았다. 호들갑 떨지도 않고 칭얼대지도, 헛헛하게 혼잣말도 씨부렁대지 않고 그냥 했다.

앞으로의 생애도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

이런 날이 잦으면 난 외로울까? 후회할까? 이렇게 나에게 일어난 나의 사소한 불운들, 꺼리도 안 되는 불상사들을 스스로 처리하기 위해 난 여기까지 왔을까.

나는 요즘 잘 지내?라는 다정한 말을 들으면 잘 지낸다고 한다. 파스타를 엎지른 카펫을 홀로 닦아내는 정도의 외로움은, “특별히 잘 지내지 못하는 일”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요즘 댓글을 많이 읽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