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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주영 Nov 21. 2020

나의 우상 서른의 김삼순에게

내 이름은 김삼순(2005) 감상평

그녀가 스물 아홉, 서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것은 무례하고 제멋대로인 현진헌(삼식이)과의 밀고 당기는 로맨스 따위가 아니었다. 삶이 배신하고 사람이 배신했을 때 참지 않고 맞서는 그녀의 태도가 좋았고. 이름까지 마음에 안 들면서도 자신을 다독일 줄 아는 그녀의 낙관이 좋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야말로 내가 살면서 처음 본 '못난 스스로를 챙기는 주체'였다. 그전까지 내 삶의 다른 드라마에서는 완벽한 이들이 시련이나 슬픔을 장식처럼 달고 다니고. 인내와 수용을 약처럼 삼켜가며 버텨왔으니까.


이름이 마음에 안 들면 바꾸면 되고, 외모가 마음에 안 들면 헤어스타일을 바꾸면 되고, 실연하면 나 자신을 한라산으로 보내자. 가끔은 소주에 나물 비빔밥을 먹든, 울면서 아버지의 환영에 하소연을 하든, 자신을 돌보자.

나를 같잖게 대하는 사람이면 그게 지배인이든 세상 하느님이든 잃을 거 계산 말고 제대로, 똑바로 굴자.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에는 멋진 레스토랑 경영인도 있었고 미국인 의사도 있었고 재벌도 있었는데. 심지어 김삼순 중에도 자기 몫은 해내는 파티시에 김삼순과, 나름대로 울고 웃는 청춘 김삼순이 있었는데. 나는 후자가 너무 좋았다. 김삼순의 빵보다는 그녀와의 소주 한잔이 더욱 궁금했다.


그녀와 비슷한 나이를 살면서 이 사람은 정말 위대한 사람이었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지금도 울고 싶을 때 우는 방법을 모르고, 정말 힘든 자신을 한라산이든 제멋대로 차린 식탁이든에 데려다 놓는 방법도 모른다. 염치를 너무 많이 알고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서 누구한테 당당하게 쏘아붙이지도 못한다.


내가 김삼순의 나이를 넘어서면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어떤 나를 지향해야 할까. 드라마의 시간은 흐르지 않음이 야속하다.


여름이 다가와서인지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내 지금이 지금이라인지, 보고 싶다. 슬퍼서 기뻐서, 못 부르든 잘 부르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모습이.


삼식이랑 행복하기보단,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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