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반찬을

by 드림별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간다고 하면 좋은 것만 눈에 보였다. 면세점 찬스를 이용해 화장품을 살 수 있어 좋았고, 회사 돈으로 항공사 마일리지를 꼬박 쌓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결혼 후 아이가 생기니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두 달에 한번 꼴로 출장을 갔다. 남편이 집에 없는 날에는 아이를 혼자 볼 자신이 없어 짐을 한가득 싣고 친정으로 갔다. 육아와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둘째를 임신하고는 출장이 한 달에 한 번으로 잦아졌다. 자칫하다가는 아이 아빠 없이 출산하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둘째는 남편이 출장을 다녀온 직후 태어났다.


둘째가 3개월째 되던 날, 남편은 카타르 현장으로 발령이 났다. 나는 갓난쟁이 둘째와 두 돌 지난 첫째를 데리고 함께 해외를 가거나, 남편 혼자 보내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시아버지께서는 아이 아빠 혼자 보내고 친정에 들어가 살라 하셨다. ‘돈 모아 내 집 장만하면 좀 좋겠니?’라는 말씀과 함께. 그러나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는 먼저 카타르로 건너가 집을 구하고 차를 사며 기반을 다졌다. 남편과 떨어져 있는 동안 친정집에서 얹혀살았다. 그와 떨어져 산지 4개월째 되던 날 아이들을 데리고 카타르로 갔다.


해외에 도착하기만 하면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줄 알았다. 먼저 그곳에 도착해서 살고 있는 동료 아내의 말 때문이었다. “한국에선 늦은 퇴근으로 남편 얼굴 보기가 힘든데, 이곳에선 일찍 퇴근해서 좋아요.” ‘우리 가족도 이제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그러나 실상은 너무도 달랐다. 정시 퇴근하는 것은 그 회사 동료에게만 적용되었다. 부서가 달랐던 남편은 항상 바빴다. 일이 없어도 집에 오면 빨라야 7시였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주말에도 출근했다. 카타르는 금요일과 토요일이 주말이고, 한주의 시작은 일요일이다. 그는 금요일에만 쉬었다. 남들 다 쉬는 토요일은 업무시간으로 간주되어 평일과 다름없이 출근하고 퇴근했다. ‘이거 설명했던 거랑 너무나도 다르잖아?’ 배신감이 올라왔지만 무르기엔 너무 멀리 왔다. 20FT 컨테이너 가득 실어온 내 짐은 어쩔 것이며, 애들은 또 어쩔 것인가?


남편을 향한 나의 감정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남편도 할 말이 있었다. 7시 반이라는 이른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아이를 씻겼다. 그러나 나는 집안일을 더 가져가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결국 파트타임 청소부를 고용하며 청소와 빨래를 일부 아웃소싱 했다. 전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힘들었다. 요리가 문제였다. 유아식과 이유식을 만드느라 허덕여 나를 위한 요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남편은 그런 내가 불쌍했는지 회식을 하면 한국식 치킨이나 짬뽕 등을 테이크아웃 해왔다. 그러다 하루는 그의 백팩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나왔다.


“이거 뭐야?” 하고 물어보니 “회사 식당에서 가져왔어.”라고 대답했다. 식당에 주방장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남은 반찬을 집으로 싸서 가져온 것이었다. 열어보니 김치제육볶음이 들어 있었다. 음식의 맛은 훌륭했다. 짜지도 달지도 않은 게 딱 적당했다. 거기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것은 이곳에서 구하기 힘든 돼지고기 아닌가?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오랜만에 나의 밝은 얼굴을 보니 남편도 기분이 좋았나 보다. 식당에서 맛있는 반찬이 나올 때면 내 생각을 하며 머릿속으로는 ‘007 작전’을 세웠다.


7년 차 과장은 동료들에게 음식 싸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점심식사를 일찍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식사가 끝날 무렵 비닐봉지를 주머니에 넣고 조용히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에 도착하자 방글라데시 주방장에게 ‘My friend’라고 괜히 친한 척을 하고는 남은 반찬을 건네받아 재빨리 비닐봉지에 담았다. 매일 다른 종류의 반찬이 배달되어 왔고, 백팩에는 반찬 냄새가 강렬히 베였다. 가방만 열어봐도 무슨 반찬이 배달되어왔는지 알 정도였으니까. 반찬은 우리 집 냉장고와 냉동실을 가득가득 채우더니 급기야는 동네 이웃들에게 반찬 나눔을 하기도 했다. 배달의 민족 직원처럼 매주 반찬을 가득 챙겨 오는 남편을 보며 ‘그만의 사랑의 방식’을 깨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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