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향 날씨, 카타르

by 드림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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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반, 컴컴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는다. 대리석 바닥에서 느껴지는 한기와 바깥공기의 서늘함이 한데 섞인다. 인기척에 남편이 깼다. 연휴를 마무리하고 회사로 출근하려니 내키지 않는 눈치지만 이내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틀어 샤워를 한다. 나는 경력 단절된 처지를 원망하지만 아침마다 정시에 출근하는 삶을 다시 시작할 용기도 나지 않는다.


사실 아침마다 혼잡한 지하철에 몸을 싣는 것보다 더 싫은 게 따로 있었다. 바로 일어나자마자 씻는 것이다. 특히 가을과 겨울에. 추위를 유독 많이 타는 나는 가을만 되어도 보온 내의를 꺼내 입는다. 겨울이 되어 외출을 하려면 코와 입을 모두 틀어나가고서야 겨우 밖을 나간다. 이렇게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출근 준비를 하려 찬 물을 마주하는 것은 꽤나 고역이었다. 데워지지 않은 물도 화장실을 가득 채운 냉기도 불편했다. 물론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닌데 뭘 그렇게 유난스럽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 집에 난방 따뜻하게 잘만 들어오고 뜨거운 물도 불편함 없이 나오니까. 그런데 초를 다투는 출근 준비로 바쁜 나는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도록 진득이 기다리지 못했다. 데워지지 않은 물에 머리를 가져다 대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추위는 잘 타는 나는 반대로 더위는 잘 타지 않았다. 찜질방에 가면 남들은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닦느라 바쁜데 나는 땀 한 방울 나지 않고 잘만 버텼다. 그런 나였기에 남편을 따라 카타르로 간다는 것은 다른 것은 다 제쳐두더라도 '날씨'의 측면에서 봤을 때 아주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따라 해외 가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셨던 시어머니마저 "어미는 추위 많이 타는데 거기 가면 추위는 안 타서 좋겠네."라는 말을 하실정도 였으니. 그렇게 나는 이상향 날씨를 맘껏 누릴 수 있는 그곳, 카타르에 갔다.


때는 11월, 남편은 한해 중 가장 날씨가 좋을 때 도착했다 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초 겨울의 날씨는 최저기온 19도 최고 기온 30도 사이를 왔다 갔다 했는데 긴팔의 긴바지만으로도 충분했다. 숨을 '후'하고 내쉬면 입김이 솔솔 나오던 추운 한국의 날씨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사람들은 중동을 40도가 넘는 펄펄 끓는 더위의 대명사로만 기억을 한다. 그러나 타는 듯한 더위도 여름이 지나면 한층 누그러진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평균 기온은 20도 내외까지 내려간다. 바깥 활동하기 아주 좋은 날씨다. 실제로 카타르를 포함한 겨울의 중동은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오는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나는 아이들과 적응하는데 바빠 입에는 불평불만을 달고 살았지만, 돌이켜보건대 따스한 햇볕과 적당한 바람은 나의 힘든 생활을 다소 누그려 뜨려 줬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적응기간이 끝나니 라마단이 왔다.


라마단은 무슬림들이 해가 떠있는 동안 금식을 하는 날 종교적인 의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날씨의 변화와도 결을 같이 했다. 라마단은 아랍어로 '더운 달'을 뜻했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한다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신기하게도 라마단은 목전에 와있었다. 그렇게 라마단을 보내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더위가 찾아왔다. 최고기온이 45도에 육박하는 본격적인 여름이 온 것이다. 대프리카의 무더위를 당해본 사람들은 카타르의 최고 기온에 대해서 이야기 들으면 질색을 하거나, "그런 곳에 어떻게 사냐."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카타르는 집에서나 마트에서 에어컨이 24시간 풀가동되는 곳이다. 때문에 여름이라도 실내생활을 하는 한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쾌적하다. (물론 잠시라도 바깥에 발을 디디면 높은 습도와 온도로 숨이 턱 막혀 버리지만.) 6,7,8월을 견디고 나면 새 학기 시작인 9월이 온다. 이때부터는 언제 그렇게 더웠냐는 듯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며, 한낮에는 30도 이상으로 여전히 덥지만 해가 지고 나서는 20도 이상으로 반팔 차림으로 외출하기 딱 알맞다.


카타르에 체류한 지 1년째 되었을 때다. 평균 기온은 여전히 15도~20도를 왔다 갔다 하는데 내 몸은 카타르 기온에 이미 적응을 했는지 추위를 부쩍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장롱 속에만 넣어두었던 먼지 가득한 두꺼운 니트 카디건을 꺼냈다. 마땅한 겨울옷이 없던 남편은 몰에 가서 패딩 조끼를 사 왔다. 나만 이렇게 추위를 느끼는 건가 싶어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집 밖에는 영상의 기온에도 경량 패딩점퍼를 입고 어그 부츠를 신은 외국인들이 집 앞을 걸어 다녔다. 카타르의 날씨에 익숙해지면 나타나는 현상인가 보다 했다.



한국에 귀국하고 보니 다른 건 몰라도 날씨만큼은 카타르가 그립다. 추운 겨울이 되고, 눈이 내리면 나도 모르게 카타르 사진을 꺼내 본다. 기억은 잊혀 가물가물 하지만 온몸으로 카타르를 기억해 낸다. 차가운 손발은 조금씩 따뜻해지고 추억은 아련해진다. 나의 이상향 날씨 카타르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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