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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Nov 24. 2020

댓글 테러와 은근한 위로

  인터넷을 켰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특정 연예인의 이름이 보인다. ‘에이 설마, 아닐 거야.’ 마음을 졸이며 클릭했다. 맞닥뜨린 기사에 얼굴이 굳어지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죽음에 대한 갖가지 추측성 기사가 연달아 올라온다. 마우스를 꾹 누를 수밖에 없는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비보를 접한 날이면 나는 하루 종일 울적함에 압도당한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렇게 까지 모진 결심을 했어야만 했을까?’ 질문을 되뇌다 불현듯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네이버 블로그에 카타르 생활에 대한 주제로 글을 올린 지 3개월째 되었을 때다. 아침에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휴대폰 잠금 화면 해제 후 블로그에 접속했는데 얼굴이 순식간에 화끈 달아올랐다. 악성 댓글 때문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한테 댓글로 무차별하게 공격을 당했고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정신을 가까스로 차리니 무시하기, 신고하기, 대응하기 등등 몇몇 선택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무시하려니 속에서 열불이 났고, 신고하려니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척 댓글을 남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심한 댓글이 달렸다. 근래 최고의 모멸감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아무렇지 않게 모멸하는 사회, 그리고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연한 시대다. 김찬호 교수는 <모멸감>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무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과 환경을 통제하지도 못하면서 무력감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공격적인 발설로써 자기 효능감을 느끼려 한다." (140쪽)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그는 본인의 의욕 저하와 피로감을 나에게 배설한 것인가? 사이버 공간을 자신의 감정 배출구로 사용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물론 사회 탓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혼란기를 통과하면서 기존의 지배 질서는 무너졌지만, 귀족적 차별의식은 오히려 보편화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여전히 전통적인 신분 관념이 강하게 지배되는 사회다. 다만 그 틀이 전 근대적인 신분 질서가 아닐 뿐이다."(126쪽)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그리고 6.25 전쟁을 거치며 겉으로 보이는 구조적 차별은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학력, 빈부, 외모, 지위를 가지고 나와 너를 나누고, 이를 계급화한다. '나는 원래부터 이렇게 생겨먹지 않았어. 사회가 이렇게 만든 거야.'라고 외치는 어떤 이의 절규가 들릴 것만 같다.

 

 암울한 현실이지만 희망은 있다. '감정 노동'이라는 말이 생활 용어로 정착되었고, 지자체에서 감정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모멸감>이라는 책을 통해 개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감정의 응어리를 공론화시켰다. 이 책을 기폭제 삼아 사회적 그리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변화가 일어나면 어떨까? 나부터라도 작가의 말처럼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승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더 나아가 도전과 성취를 북돋아 주는 공동체를 다양하게 형성하고 싶다.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사회가 깃들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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