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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Dec 01. 2020

교통비 정도 되는 돈과 일의 가치  

 '드르륵드르륵' 늦은 저녁 어린이집에서 문자가 왔다. 코로나 19의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상향되어 맞벌이 중심의 긴급 보육만 가능하다는 안내 문자였다. 휴대폰을 열어 일정을 확인하고는 긴급 보육 신청 문자를 보냈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단지 내 평생학습마을에서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영어 그림책 수업을 한 지 3주째다. 평생학습마을이란 시에서 진행하는 사업으로 지역 인재를 발굴 및 육성하여 '학습-일-복지문화'가 선순환되는 학습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에서 강사비를 지급하고, 단지 내 주민은 무료 혹은 재료비만 납부하고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세 달 전, 지인의 추천으로 평생학습마을 강사로 지원을 했다. 4권의 영어 그림책을 한 달에 걸쳐 함께 읽고 독후활동을 하는 것을 커리큘럼으로 짰는데 수강자가 모집되지 않아 폐강되었다. 코디네이터 선생님이 재료비가 부담이 된 것 같다는 말을 더했다. 두 달이 지나 다시 연락이 왔다. 재료비 없이 커리큘럼을 짜보는 것이 어떻겠냐면서. 폐강의 아픔을 맛본 나는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드디어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중, 고등학생을 주로 가르쳤던 내게 미취학 아이들 대상 수업은 순수하고 밝은 에너지를 듬뿍 받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코디 선생님은 나에게 회당 3만 원의 강의비를 입에 올릴 때면 무척 미안해했다. '교통비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이라고 칭하면서. 나도 안다. 그녀가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그러나 때때로 일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어 위로의 말과 함께 전해질 때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형님은 주말이면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한다. 일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었는데, 업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세 아이를 오후에 목욕시키고, 저녁에 먹일 반찬까지 모두 준비해 놓는다. 그녀가 가고 나면 아주버님이 아이 셋을 먹이고, 씻기고, 재운다. 어쩌다 주말에 시댁에 내려가는 날이면 오후 늦게 아주버님과 아이 셋만 시댁에 온다. 형님 없는 빈자리가 눈에 거슬리는 시부모님은 "XX 애미는 큰돈 번다고 야단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자리에 없는 그녀를 입에 올리면서. 

 그녀는 결혼 전까지 학습지 선생님으로 일을 했다. 주말도 없이 근무를 하다 아주버님을 만나 결혼을 했다. 첫째 낳고 일했던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다 둘째를 가지고 그만뒀다. 그리고 2년 뒤 셋째를 낳았다. 

 육아하는 와중에 일하러 가느랴 가장 힘든 사람은 형님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출근 전까지 아이를 씻기고 , 청소를 하고, 반찬을 준비하는 등 본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열심히 사는 그녀 앞에서 시부모님은 그녀의 일을 단돈 몇십만 원으로 치부하며 쓸데없는 일 한다고 가정 지었다. 가슴속 깊이 답답함이 밀려왔다. 남편이 가장에 대한 책임감으로 돈을 벌어오지만, 아내 또한 상황이 허락한다면 일을 하고 싶은 케이스가 있기도 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은 돈을 받을지라도. 여성은 가사와 육아 외의 일을 하며 존재를 확인받고 싶기도 하다. 

 형님에게 묻진 않았지만, 그녀 또한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아이 셋을 육아하면서도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한 시도로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고달픈 삶에 대한 탈출구로 일을 선택했을지도. 정답은 듣지 못했지만 상관없다. 그녀가 선택했고,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테니까.


 호프 자런은 <랩 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과학분야의 교수에게 무엇이 가장 걱정인지 물어보라. 길게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당신을 빤히 바라보면서 한마디로 답할 것이다. '돈이요.'"(179쪽) 그녀는 연구 기금을 지원하는 재단으로부터 최대한의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그녀가 하는 일이 재단 입장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대해 서술하는 것을 그녀의 연구만큼이나 공을 들였다. 돈이 가장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와 형님은 적은 돈을 받는 다고 일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었다. 호프 자런 또한, 식물을 연구하는 일이 나라의 예산에서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연구로 간주되어 연구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었다. 과학 교수에게나 소시민에게나 일을 그 자체로 바라봐 주고 노동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가 보다. 여기 다른 시기에 태어난 두 여성이 세상이 보다 유연해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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