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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Jun 17. 2021

싸구려와 취향 사이

“엄마 이거 웬 멜론이야?” 멜론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던 첫째에게 멜론을 사다 줬다. “우와 신난다. 얼른 먹자.”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의심의 눈초리로 멜론을 쳐다본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듯 꼼꼼히 살피더니 곧 무언가에 시선이 멈춘다. ‘30% 할인’이라고 쓰인 스티커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의심의 눈빛이 걷힌다. 


마켓 컬리, 오아시스 등 새벽 배송이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이 시기에 나는 굳이 마트에 간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사기 위해서다. 입구에 들어서면 종종걸음으로 유제품 매대 아래쪽에 위치한 땡처리 코너로 간다. 요구르트를 집어 들어 원재료명과 유통기한을 째려보고는 바구니에 담는다. 다음은 세일 매대다. 마트 입구에 줄지어 있는 세일 상품들을 재 빨리 스캔한다. 세일 상품과 묶음 상품 중 어느 것이 더 좋을지 고민한다. 대단한 결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머리를 쥐어뜯다 3봉짜리 봉지과자를 바구니에 담는다. 세일 상품에 정신이 팔린 지 삼십 분이 지나서야 내가 애초에 뭘 사기 위해 마트에 왔는지 떠올려 보기 시작한다. ‘아 맞다. 상추를 사러 왔었지.’ 상추 한 봉을 집어 바구니에 가져가는데 이미 할인 스티커가 붙은 제품과 2+1 상품이 수북하다. 


‘어차피 살 거 싸게 사면 좋은 거 아냐? ‘ 라며 세일 상품,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사재 끼던 나는 내 고유의 취향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남편은 까르보나라, 아이들은 새우 볶음밥과 토마토 스파게티를 시키는데 나만 메뉴를 정하지 못했다. 배고프니 빨리 주문하라는 남편의 재촉에 메뉴판에 적힌 음식의 가격을 확인하고는 가장 저렴한 것을 골랐다. 


먹고 싶은 음식, 마시고 싶은 음료를 가격이 부담되어 선뜻 고르지 못하는 나를 볼 때면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누가 대 놓고 돈 아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싸구려만 찾는 내 취향이 씁쓸하다. 결정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자니 나는 대부분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 결단력이 빠르고 상대방을 향한 말투는 거침이 없다, 그렇다. 나는 돈에 있어서만 눈치를 보고,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못 산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 한숨을 푹 내쉬면 머릿속 한편에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는 삼 남매를 키우시며 반평생 넘게 허리띠를 졸라매셨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자주 입고 계셨으며, 마트에선 번들 과자만 사 오셨다. 오백 원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 먼 거리를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으며, 옷은 인터넷에서 가끔 사셨는데 대체로 오만 원이 넘지 않았다. 엄마는 이를 두고 아빠에게 “당신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 수 있었던 것은 다 내 덕분이야.”라고 셀프칭찬을 하셨지만 근검절약을 하면서 엄마 고유의 색은(그녀가 좋아하는 음식, 그녀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 등)은 점점 희미해졌다. 


나 또한 엄마처럼 싸구려 취향을 강한 생활력의 표본이라고 치켜올리면서 남은 인생을 살자니 왠지 억울하다. 커피숍에서 젤 저렴한 커피를 받아 들면서도 캐러멜 마끼아또에 눈길이 머무는 걸로 봐서 싸구려는 나의 취향은 아니니까. 본능과 절제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나, 이젠 한 번쯤은 솔직해져 보고 싶다. “나도 비싼 거 먹을 줄 알아.”라는 농담과 함께라면 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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