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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Jun 18. 2021

공감받지 못한 슬픔

저녁 무렵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언니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XXX이 죽었데.” “뭐???” 내 귀를 의심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네이버로 들어가 그의 이름 석 자를 친다. 프로필에 출생-사망, 1982년 9월 27일- 2021년 5월 13일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의 영원한 우상이자 10대를 함께 보낸 동반자였다. 물론 그들 가수만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나의 이메일 주소에 새길만큼 각별했고, 그는 내가 친필 사인을 받은 유일한 가수이었으며, 몇 년 전까지 콘서트에 참석하며 팬 심을 이어오던 그였다. 내가 위로받고 싶을 때 기댔던 음악이 그의 음악이었는데 그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니......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포털사이트의 기사를 모조리 읽어 내려갔다. 글 어디에서도 그가 삶을 저버린 이유를 찾아낼 수 없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갔다. 난생처음 본 그의 인스타 사진이 낯설었다. 인스타 팔로우라도 할걸. 팬이라고 음악 잘 듣고 있다고 댓글이라도 남길걸. 후회가 막심하다. 그의 유튜브도 처음으로 들어갔다. 넘치는 끼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 구석이 아려왔다. 영상을 채 다 보지 못하고 껐다. 


허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어 화장실에서 들어가 볼일을 보는 척하며 팬 카페를 들어갔다. 애도 편지가 물결을 이루었다. 키보드를 꾹꾹 눌러 그에게 못다 한 말을 남기고 화장실을 나왔다. “자기 괜찮아?”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응.”이라고 말하고 남편의 표정을 살피는데 나를 공감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맥주라도 한잔 해.”라고 이야기하는 그. 나는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갈까 고민하다 이렇게 말했다. “자기 아주버님이 OO 좋아하시는 거 알지? 만약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OO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버님의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이상향이자 올해로 24년 차 여가수이다. 시댁에 가면 아주버님이 썼던 작은 방이 있는데 그곳엔 그녀의 포스터로 덕지덕지 도배가 되어 있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인 작년 말에도 그는 아이 셋을 아내에게 맡겨두고 경주에서 잠실까지 KTX를 타고 올라와서 그녀의 콘서트에 참석했다가 우리 집에 들러 잠을 잤다. 아주버님은 공연이 끝난 후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장시간 기다렸고, 그녀를 만나자 품속에서 손 편지를 건네주었다고 했다. 30년간 변치 않는 팬심을 보여준 아주버님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불러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의 찰떡같은 비유에 남편은 아까 보다는 숙연해진 표정이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 어리석은 짓은 그만 하자.’라고 생각하고 나의 대학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지만 별 위안을 얻지 못했다. 나는 슬픈 마음을 보듬을 시간도 없이 저녁을 차렸다. 엄마니까.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설거지를 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이들을 재우다 함께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혼자 차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그의 이름 석 자를 다시 검색해 보았고, 그의 인스타를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문득 그가 생전에 친하게 지냈던 동료가수가 생각났다. 인스타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니 아니나 다를까 그에 대한 애달픈 글이 올라와있었다. 관계의 거리와 슬픔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주일간 나는 평소와 같은 일상을 영위하면서도 수시로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황폐해진 마음이 위안받은 곳은 오직 팬 카페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의 장례식은 비공개로 진행 예정이었지만 소속사에서 팬들을 위한 작은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고 했다. 몇몇 팬들은 그곳에서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었다. 나는 소속사의 공지를 너무 늦게 본 탓에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설사 알았더라도 남편에게 솔직히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모두 잠든 밤, 그가 처음으로 작사 작곡했던 노래를 조용히 불러 본다. 이제 더는 들을 수 없는 그의 목소리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웠던 겨울이 또 다시는 돌아오지 않도록

내게로 돌아와 언젠가 눈부신 날에는

외로움이 묻어나는 이 길에 서서

니 목소리 들릴까 봐 기다리잖아

이렇게 하얗게 외로운 이 거리에 서서


<2002.10.31. 흰 눈이 쌓인 이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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