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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Jul 08. 2021

애정의 김밥, 원망의 김밥

어렸을 적 엄마가 해주 신 음식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연 김밥이었다. 사실 그것은 식당에 파는 화려한 김밥에 비하면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재료라고 해봐야 시금치, 당근, 단무지, 계란 그리고 투박한 사각 햄이 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금과 참기름, 그리고 깨소금이 적절히 섞여 짭짤하면서 윤기가 흐르는 밥과 속재료의 궁합은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었다. 저녁 메뉴로 김밥이 나오는 날이면 세 줄은 거뜬히 해치웠으며 먹다가 남긴 김밥은 다음날 밥알이 단단한 채로 입 속에 넣어도 행복했다. 엄마의 김밥은 나에겐 소울 푸드였다. 


엄마는 내가 김밥을 좋아한다는 걸 알아서였는지, 아니면 김밥이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 학교 행사 때가 되면 항상 김밥을 싸 주셨다. 뭐 먹고 싶은 지 묻지 도 않고. 그 바람에 나는 행사 땐 무조건 김밥을 싸가야 하는 줄 알기도 했었는데 다른 친구들의 도시락에서 유부초밥과 볶음밥이 등장한 것을 보고서야 도시락은 집마다 다를 수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학교 나들이때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준비하시는 엄마를 보며 표현하지는 않으셔도 저런 게 자식에 대한 사랑이고 희생이겠구나 했다.


애정의 증표가 원망으로 돌아선 건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때는 수능 날,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또 김밥을 싸셨다. 도시락을 들고 도착한 수능 시험장은 고요했다. 일렬로 줄 세워진 책상에서 나는 시험지와 사투를 벌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은 착잡, 마음은 허탈해졌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텅 빈 배와 마음을 채우려 김밥을 입에 꾸역꾸역 넣었다.


첫째 딸 힘내라고 평소보다 더 많이 담아 주신 그 도시락을 깨끗이 비우고 비장한 마음으로 시험지를 대면했으나 꾸벅꾸벅 졸았다. 극도의 포만감은 곧 나른함으로 이어졌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잠에서 깨고자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정신을 붙들어 매려고 안간힘을 쓰다 3교시와 4교시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온 후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고 누웠는데 엄마와 동생이 네가 좋아하는 짜장면과 탕수육 시켰다면서 깨웠다. 시험 망친 것도 서러운데 동생이 내 답지를 몰래 가져가 EBS 해답 풀이와 맞혀 봤다. 배신감에 저녁을 걸렀다. 


중요한 시험을 망쳐버린 나는 몇 달 동안 탓할 상대를 찾았다. 그러다 어느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김밥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음식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고, ‘엄마는 그 중요한 날 왜 하필이면 김밥을 싸 준거야? 아 짜증 나. 김밥 때문에 수능을 망쳤다.’며 책임을 전가했다. 애정이 원망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김밥은 본연의 의미를 퇴색한 지 10년도 더 지나서야 본래 그 의미를 되찾게 되었다. 바로 내가 손수 김밥을 만들게 되면서부터다. 남편 회사의 해외 발령으로 가족들과 카타르에서 지내면서 수시로 가족과 친구, 그리고 한국음식이 생각이 간절했다. 열 번 중 여덟 번은 참고 두 번은 한국식당에 가서 한식을 먹었는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결국 직접 한식을 해 먹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처음 김밥을 만들게 되었다.


김과 밥, 소고기, 당근, 오이 그리고 계란을 준비했다. 태국산 쌀이라 찰기가 없어 밥알이 다 흩어지고 당근은 서걱거렸다. 소고기에서는 누린내도 났지만 입에 넣고 우물거리니 행복했다. 그리고는 곧 엄마의 김밥 생각이 났다. 엄마는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 김밥을 싸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이 셋을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김밥을 싸셨을까? 


열 줄도 넘게 김밥을 싸면서도 꽁지만 드시던 엄마, 이제는 요리고 뭐고 다 귀찮다면서 김밥도 사다 드시는 엄마. 그러면서도 자식들 놀러 가면 손수 음식 장만하시는 엄마를 위해서 올해 생신엔 꼭 내손으로 미역국을 끓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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