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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Jul 14. 2021

할머니, 나의 할머니

췌장암 말기의 할머니 그리고 엄마 사이에서

“할머니가 암 이래.” 단톡방에서 엄마가 이야기를 꺼냈다. 생명이 있는 것들 중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나의 할머니만큼은 영원할 거라 생각했다. 올해로 101세이신 할머니는 120세, 130세까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할머니가 돌연 암이라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최근 일이 년간 소화가 안된다고 하셔서 박카스를 달고 살았다, 그러다 더는 못 견디셨는지 아빠와 함께 대학병원을 갔는데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내가 큰고모한테도 이야기했냐고 물으니 “응. 근데 고모는 놀라지 않는 눈치야. 네 아빠만 동동거리지 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엄마의 목소리 걱정하는 기색이 있기는 했으나 차분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잘 배웅해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할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언제나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받는다. 할머니가 나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져 주신 던 것, 나와 동생들을 마주할 때 항상 반갑게 안아주시던 것,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군것질하라면서 만원 이만 원을 호주머니에 항상 찔러주신 것 등을 떠올리면 그렇다. 그러나 내가 할머니에 대해 좋은 감정을 떠올릴 때면 어느새 죄책감이 고개를 삐죽 내민다. 할머니를 마냥 좋아하면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신혼 초에 자신에게 모질게 대한 것에 상처를 받고 평생을 걸쳐 할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할머니는 엄마가 맘에 안 드셨는지 상견례 자리에서 ‘한약방 집 딸내미’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힘들게 출산하였지만 아들 못 낳았다고 '고생했다.' 말 한마디 없다고도 했다. 엄마는 모진 말을 뱉은 할머니 앞에서도 종갓집 며느리로서의 제 할 도리를 다했으며, 일 년 열두 번의 제사도 무리 없이 해냈다. 그러나 할머니가 안 계신 우리 집에서는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엄마가 살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매우 혼란 스러졌다.


할머니를 삼십 년간 내 마음속 어디에도 진득하니 위치시키지 못하다가 내가 결혼을 하고 고부관계에 엮이게 되면서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면서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할머니, 속마음을 당사자에게 말하지 못하고 꾹꾹 참다 다른 데서 터뜨려 버린 엄마, 그 사이에서 방황한 내가 존재했다. 이 같은 고민은 나의 평생 숙제거리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의 고부관계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쪽’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했다. 


‘감정 표현을 들어야 할 사람’과 ‘듣지 않아도 될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는 그동안 가까운 사람에게 나의 속마음을 잘 표현했을까? 들어야 할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않고 듣지 않아도 될 사람에게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닐는지.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서 솔직한 모습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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