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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Jul 16. 2021

사자머리를 한 나를 다시 만났을 때

둘째의 어린이집에서 메일이 하나 왔다.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가족사진을 한 장 보내달라는 것. ‘음 사진이 어딨지?’ 하며 서랍장을 칸칸이 열어젖히다 그만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바로 중 2 때 찍은 사진 때문이다. 두 번째 칸 서랍장 내 종이 박스에는 나를 당황하게 한 사진 한 장과 풋풋했던 사진 여러 장 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고2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 피자헛에서 찍어준 생일 파티 사진, 중 2 증명사진 등을 찬찬히 살펴보며 촌스러웠지만 싱그럽기도 했던 학창 시절의 나날들을 떠올려 보다 아까 그 문제의 사진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이 사진의 배경은 학교 앞 운동장 계단이다. 왼편에는 나보다 더 앳된 얼굴의 담임 선생님 그리고 오른편에는 그리 친하지는 않았던 같은 반 친구 두 명이 있다. 사진 속의 나는 가르마를 5대 5로 탄 후 열개 가량의 실핀을 조직적으로 꼽아 올린 일명 ‘사자 머리’를 하고 있었고, 교복 재킷 안에는 엄마를 졸라 산 브랜드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여기 까지만 보면 이 사진은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교복 치마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시 상황을 회상해 보면, 나는 사진 기사의 ‘하나, 둘, 셋,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다리를 가리고 있던 거추장 스런 교복 치마를 무릎 위로 올렸다. 검정 스타킹을 신은 친구들의 어두운 다리 사이로 맨다리가 하얗게 빛났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주목받고 싶었던 욕구는 사진 속에서 나마 이루어졌다. 사진에는 없지만 그때 나에게는 5cm 정도 되는 굽도 있었고 (학원 갈 때 반바지에 구두를 신고 다녔다.) 가방에는 쌍꺼풀 테이프가 여러 개 있서 독서실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매일 쌍꺼풀 테이프를 눈꺼풀에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물론 애꿎게 눈꺼풀만 늘어졌지만. 사춘기에는 원래 외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지만 나는 그 정도가 심했다.


어릴 적 엄마는 아빠를 비난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는 단순 아빠와의 관계뿐만은 아니었고 고부갈등, 육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녀는 그의 성격, 외모, 술버릇 등을 입에 올렸는데 그러다 내가 말을 안들을 면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커가면서 지 아빠 꼭 빼닮아서 저런다.’라는 말을 은연중에 했다. 그 말을 듣고 자란 나는 점점 더 외모에 집착을 하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적절한 지지와 칭찬을 받지 못한 나는 타인의 시선을 그렇게도 중요시 여겼으며 그 중심에는 외모가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은 그때의 나를 불가사의하게 생각했고, 사자 머리 사진은 낯부끄러워 쳐다도 안 봤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기르며 커가는 모습을 보니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이십여 년도 더 된 사진 속 나는 이제 이상하다기 보다 오히려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제 목소리를 내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깨달은 게 있기 때문 일터다. 그때 나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내가 내 아이들을 포옹하듯이 나의 지난날의 모습도 지금의 내 모습도 있는 그대로, 꼭 껴안아주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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