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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Oct 06. 2021

8세 아이가 쿨내 나게 헤어지는 방법

요 며칠 창밖에 자주 눈에 띄며, 드르륵 거리는 소리로 나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사 차량이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는 (입주시기인) 9월이 되면 이사 차랑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오늘은 집 근처 한대 그리고 저 멀리 한대 이렇게 총두대의 차량이 보였다. '우리 집 앞이네? 잠깐 저 이사 차량은....'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자 혹시나 싶어 달력을 들췄다. 오늘은 9월 30일. 바로 옆집이 이사 가는 날이다. 나와 옆집은 3년째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전거 몇 대와 킥보드, 그리고 우유 배달 가방도 함께. 우리 사이는 다들 그렇듯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였는데 올해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바로 내 옆집의 둘째와 우리 집 첫째가 같은 반이 되면서부터다.


학기 초에는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도 서로를 못 알아봤다. 오죽하면 옆집 엄마가 "요새는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니 서로 잘 모르더라고요. 첫째 보니까 1년 넘도록 모르는 친구도 있던데요?'라고 했을까. 그러나 올해 1학년은 작년과 달리 매일 등교했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의 책상을 분기마다 한 번씩 재배열하여 두루두루 친해질 수 있게 했다. 바뀐 자리 덕분에 내 아이는 옆집 아이와 앞뒤로 앉게 되었고, 함께 하교를 하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면 책가방을 던져두고 포켓몬스터 카드를 들고나가 서로 교환했다. 남자아이들에게 포켓몬 카드란 대체 무엇인가? 이 참에 등교도 같이 시킬까 했는데 그건 좀처럼 쉽지 않았다. 부지런 떠는 우리 아이와 느긋함을 즐기는 옆집 아이의 성향 차이 때문이다. 옆집 아이는 우리 둘째 등원 길, 현관문에서 나를 만날 때면 "xx 학교 갔어요?" 하며 연신 우리 아이의 안부를 물었다. 초사이언이 되어 뛰어가도 지각일 그 시간에.


아이들은 그들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가까워졌지만 나와 옆집 엄마는 여전히 우리만의 선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그 집 아이는 무슨 학원 다녀요?' 하며 학원과 학교 이야기를 나눴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1층에 도착할 무렵이면 대화를 적당히 마무리 짓고 헤어졌다. 나는 그게 편했다. 그 집 아빠와의 에피소드도 한 가지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피식 난다. 이 주전, 나는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옆집 아빠와 반려견이 있었다. 내가 닫힘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그가 황급히 열림 버튼을 눌렀다. 나는 뭐지? 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조그만 목소리로 "xx야 너 똥 싸면 안 돼. 똥 싸지 마"라고 했다. 당황한 표정을 감추려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투명 빵 봉지, 생선 담았던 비닐봉지, 파프리카가 쌓여있던 비닐봉지가 담긴 분리수거 가방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걸로 그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머리에 미치자 "이거라도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네"라고 했다. 배변봉투 때문에 12층까지 다시 올라가기 영 귀찮았던 모양이다. 나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다 다르도록 가방을 뒤적거리다 봉투 하나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풀무원 콩나물 봉지였다. 그는 봉지를 받아 들었고 황급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겨드랑이에는 목줄을 끼고 두 손으로 콩나물 비닐봉지를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구겨 넣는 모습을 바라봤다. 내가 베푼 것은 호의였을까. 속으로 '그렇지만 빵 봉지는 가생이가 잘 뜯어지잖아.'라고 외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옆집의 이사 예정일 전날, 나는 첫째에게 편지를 하나 써서 옆집 아이에게 전해주는 것이 어떻겠냐 했다. 아이는 " 내일 이사 가는 날 아니야." 이러더니 혹시나 싶었던지 A4용지를 집어 들었다. 모두가 이불에 누운 그 시각, 아이는 열심히 편지를 썼다. 나는 내용이 몹시도 궁금하여 아이가 잠든 사이 몰래 빠져나왔다. 편지의 내용은 뜻밖이었다. 이사를 가게 되어 서운하다느니, 보고 싶을 거라느니 등의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이렇게 쓰여있었다.


"진수야, 이건 내 포켓몬 카드야. 누나랑 동생이랑 싸우지 말고 가지고 놀아. 랜덤 카드 2개, 기본 카드 1개" (그리고 진짜로 포켓몬 카드 3장이 들어 있었다.)


옆집 엄마를 만나고도 '이사 가신 다면서요. 아쉽네요.'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헤어진 나보다 이렇게 쿨내 나게 보내주는 게 더 나은 방법이지 싶었다.




덧. 옆집이 이사 간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주말 어느 오후,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 나갔다. '인테리어 공사 동의서'를 받으러 온 한 남자를 마주하고서야 우리 옆집이 이사 간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옆 집의 새 집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내 남편은 옆집 아빠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고, 그때 그가 이사 간다고 했다. 나는 이후 옆집 엄마를 만나면 '이사' 얘기를 꺼내리라 마음먹었지만 한차례 마주했을 땐 입을 떼지 못했고, 그렇게 우리 옆집은 분당으로 이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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