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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Nov 16. 2021

만약 다시 카타르

"그래서 카타르에 다시 갈 확률이 얼마나 되는데? "

"50 대 50"


입찰서를 준비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오전 근무를 마치자마자 퇴근 한 남편에게 들은 답이다. 상황은 이렇다. 3년 전 남편에게 카타르 프로젝트 입찰 업무가 주어졌다. 그는 있는 힘껏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갑작스레 프로젝트 마감이 연기되었다. 이후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입찰 기간이 또 한차례 연기되었다. 지난하게 이어지던 프로젝트 입찰 어제부로 마무리되었다. 드디어 입찰서를 제출한 것이다. 남편이 카타르 프로젝트를 입찰 업무를 하는 중간중간 내가 그에게 물어봤던 질문은 한결같았다.


"그러면 우리 또 카타르 나갈 수 있는 거야?"


3년 전 그의 대답은 "아니. 거의 없지. 나갈 가능성은 희박해. 안 나간다고 생각해"였다. 2년 전 그는 반쯤 짜증이 섞여 있는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나갈 가능성 거의 없다니까. 굳이 수치로 답하자면 2%?"


그는 잊을만하면 듣게 되는 나의 질문 '우리 혹시 카타르...?'에 갑갑해했다. 본인이 정말로 답을 할 수 없는 형질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일이라는 게 대부분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지 않냐, 자신이 스스로 결정을 해서 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소수다, 이 건은 프로젝트를 수주할지 말지 아무도 모른다. 경쟁사가 수주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리고 만약 수주한다 해도  해외 현장 발령은 팀장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아무리 물어봐야 명확한 답을 받을 수 없다, 는 게 그의 말의 요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일관되었다.


나는 그의 요지 부동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 이를 테면 15년 된 소나타를 수리해서 타느냐 새 차로 갈아타느냐, 건조기를 사느냐 마느냐 하는 것에 '혹시라도 카타르 갈지도 모르니까' 하는 식으로 조건을 달며 상황을 결정하려고 했고 남편은 그것을 불가해했다.


사실 내가 남편의 말의 포인트를 캐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카타르 카타르' 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그 질문을 꺼냈을 때는 카타르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해외 생활, 갓난아기 보며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억울함과 다시 한번 그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보란 듯이 재미있게 즐기다 오리라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작년에 그 질문을 꺼냈을 때엔 다른 이유에서였다. 당시 나는 도피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카타르'가 도피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국에 귀국 후 2년 간 많은 것을 새로 시작했다.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 유튜브, 스마트 스토어, 스터디, 강의 등등.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블로그를 통해 시작한 스터디는 2년 6개월째 이어져 오고 있으며,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서전을 써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볼 때면 가슴이 무거워졌다. 중간에 쉬면서 생각을 해볼 법도 한데 나의 몹쓸 책임감과 자존심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이 말을 가슴속을 로 되내었다. "저 카타르를 가게 되어 더 이상 이 일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제는 상황상 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로젝트는 남편네 회사와 경쟁사, 총 2개의 회사가 경쟁 중이었는데 3일 전 경쟁사가 돌연 입찰 포기를 선언했다. 남편네 회사는 졸지에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하게 되었고, 계약 성사 가능성이 매우 큰 상태에서 입찰서를 제출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자기가 카타르에 가거나 자신을 대신한 다른 사람이 카타르에 갈 것이며, 그것은 수주 결과가 나오는 올해 말쯤 팀장이 정할 것이라고 했다. 회사의 생리를 아주 잘 이해하는 남편은 자신이 나가게 되면 가서 현장에서 열심히 일할 것이고, 한국에 남게 되면 그 나름대로 또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글을 쓰며 가족의 운명이 회사에 달린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려는 중이며, 예상할 수 없는 미래가 삶의 속성인 것이라는 것을 수긍하려고 하는 중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도로와 뜻을 알 수 없는 아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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