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의 주류 언어는?
남편이 카타르로 발령을 받아 가족 모두가 카타르에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걱정되는 것중 하나가 바로 '언어'였어요. 카타르는 아랍권 국가인데 저는 아랍어를 하나도 몰랐기 때문이에요. 업무차 저보다 먼저 카타르로 가서 체류 중이던 남편은 "아랍어 하나도 몰라도 살 수 있어. 영어가 공용어거든."이라고 했습니다. 남편 말만 철썩 믿고 카타르로 간 저는 실제로 생활해 보니 카타르의 공용어는 아랍어와 영어이고, 아랍어를 몰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체류 초반에 일상생활을 하며 마주하는 사람들(마트 직원, 아이 유치원 선생님, 집 유지 보수 직원 등) 중에서 분명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의 영어가 제 귀에 잘 들리지 않는 경우 있었어요. 심지어 한 번은 '지금 아랍어로 이야기하는 거 아니지? 내가 아는 그 영어를 쓰고 있는 게 맞는 거지?'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대체 왜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요?
한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서 교육현장의 영어 또한 많은 부분 미국식 영어에 기반하고 있어요. 그런데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국가가 미국만은 아니잖아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등의 나라도 엄연히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는지 언젠가부터 영국식 영어로 된 교재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요. 2006년부터 토익의 LC 파트에 영국, 캐나다, 호주식 발음이 추가되었습니다.
저 또한 뉴토익 (2006년 5월부터 도입되었으며 영국, 캐나다, 호주식 발음이 추가된 것)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미국식 영어 교재로 공부했고, 어학연수와 봉사활동도 미국과 캐나다로 다녀왔어요. 그렇기에 영국 발음이 익숙지 않습니다. 영국식 드라마를 보면 발음에 친숙해질까 싶어 한동안 영국 드라마에 빠져 살았었는데 단기간에 익숙해지기는 어렵더라고요.
카타르의 주류 영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구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카타리 (Qatari, 카타르 국적을 가진 사람)는 전체 인구의 10.5%밖에 안되며, 그 외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이집트, 필리핀, 파키스탄, 스리랑카, 수단 순으로 인구 구성 비율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카타리는 전체 인구의 10% 정도밖에 차지 않기 때문에 그들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합니다. 결국 인구 구성 비율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동남아시아인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들이 경제 활동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들이 쓰는 영어가 바로 카타르의 주류 영어입니다.
저는 방글라데시나 네팔, 필리핀 사람들이 쓰는 영어는 괜찮았는데 인도 사람들이 쓰는 영어는 초반에 잘 알아듣지 못해 고생을 무척 했었어요. 왜냐하면 인도인 특유의 억양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한 번은 집에 정수기를 설치하려고 네슬레 콜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인도 직원이 전화를 받았더라고요. 같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같은걸 몇 번이나 물어봤던 일이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저는 그녀의 억양이 특이하고 귀에 잘 안 들린다고 불만을 가졌지만, 그녀는 제 말을 아주 잘 알아들었고, 영어로 더 조리 있게 또박또박 말하는 사람 또한 제가 아닌 인도인 콜센터 직원이었습니다. 한국에 살 때까지만 해도 주류 영어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의 영어'라는 인식이 강했었는데요. 카타르에서 체류하며 주류 영어라는 것이 무의미하며 오직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