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우리 집은 한 번도 무엇을 심을 땅을 가져보지 못했는데, 엄마는 늘 커다란 화분에 흙을 채워서 심을 수 있는 식물을 심었다. 그 식물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꽤 많이 길렀지만 이름이 거의 기억나질 않는다. 좁은 방 안에 꽃화분 몇 개가 있었고 빌라 주민들이 함께 쓰는 뒷마당에 박스로 만든 화분을 놓아서 대파나 고추 모종을 심어서 요리에 사용했다.
화분에 흙을 채우고, 시장에서 모종을 사다가 심고 매일 들여다보면서 물을 주는 일이 귀찮지도 않냐며, 특히 먹지도 못하는 꽃은 왜 심느냐고 묻기도 했다. 엄마는 직장에서도 화분을 길렀다. 몇 년 전에는 목화를 심었는데 하얗게 솜이 나왔다며 꺾어서 내게 줬다.
내게 목화솜을 선물해 준 사람은 두 명이다. 한 명은 엄마, 다른 한 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내가 초등학교 수업을 나갔을 때 학교에서 길렀는데 신기하지 않냐며 담임선생님께서 가지 하나를 내게 내밀어서 의아해하며 받아왔던 기억이 난다. 두 학년을 합쳐도 15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였는데, 텃밭에서 여러 가지를 심는데 야외수업 중에 마침 목화솜이 몽글몽글 달린 걸 보고 주신 거였다.
"신기하죠? 학교에서 심었는데 자란 거예요."
신기했다. 솜이 보드랍고 식물에서 이런 솜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그 목화솜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아는 선생님은 텃밭에서 상추나 고추 같은 모종을 심었다며 무척 잘 자라니까 언제든 필요하면 따 가지고 가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텃밭에서 무엇을 따는 재미를 알지 못했다. 음식에 관심이 없는 탓이다. 적당히, 배를 채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귀찮은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거다. 음식을 위해 시간을 쏟는 게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일하다 말고 식사 시간을 갖는 게 싫다. 달달한 액체류를 마시면서 허기만 달래고 일을 이어서 한다. 잠깐 배부르면 그만인데 왜 요리에 온 정성을 쏟아야 할까. 다른 일 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마트에서 장 보는 시간도 아까워서 배달 앱으로 주문하고 마는 먹거리에 무심한 사람이다.
엄마는 땅이 있으면 무엇이든 심어서 가꾸고 싶다고 했다. 아마 화분만으로는 엄마의 욕구를 다 충족시키지 못했던 걸 거다. 화분에서는 심어놓은 모종만 자라지만, 땅은 무엇이든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은 엄마의 소원은 지금까지도 서울에 살면서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무작정 근교로 나가서 밭을 찾아다녔다. 엄마는 한 번 간 곳을 모르는 길치인데, 그래서 다음에 못 찾아간 건지 정말 밭이 아파트로 바뀌어버린 건지. 아무튼 밭 주변에 아파트가 점점 많이 보였다. 점점 버스 타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때 다녔던 지역은 엄마도 나도 모른다. 목적지는 냉이가 많아 보이는 밭. 그러니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종점이 다다랐을 때 건물이 별로 없어지고 흙이 많이 보이면 벨을 눌러 내렸다. 주말이면 나는 주인을 모르는 밭에서 놀았다.
흙을 좋아하고 봄나물을 좋아하는 엄마의 외출 가방에 필수로 가지고 다니는 도구가 있다. 접이식 칼이나 비닐봉지, 작게 접은 신문지, 목장갑 등이 들어있다. 어디서든 나물이 보이면 캘 수 있도록 챙겨가지고 다니는 거다. 나물을 캐서 흙을 털고 신문지에 둘둘 말아 비닐에 넣어서 가지고 온다.
근교에 바람 쐬러 나가면 차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 이름을 이야기하고 내려서 걸으면서는 냉이와 쑥을 본다.
쉬러 나왔으면 힘들게 쪼그려 앉아서 냉이 캐지 말고 커피 마시면서 앉아있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도 잠시 앉아있다가 흙을 수색한다. 그날은 한 줌 따온 냉잇국을 먹는 날이다.
생강나무와 산수유, 억새와 갈대를 구별할 줄 모르고 몇십 년 냉이를 먹어도 땅에서 냉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심한 사람, 그게 나다.
"저거 무슨 나무인 줄 알아?"
"아니. 나무는 다 똑같아 보여."
엄마는 늘 같은 질문을 하고 나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같은 반응을 보인다.
"바보. 나무껍질을 봐봐. 이렇게 다른 데 왜 몰라."
"관심이 없어서 그래."
엄마는 도시와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었다. 엄마의 고향은 산골짜기, 버스도 거의 다니지 않고 사방이 나무로 막혀있던 동네. 그 동네 하나밖에 없던 학교를 졸업한 동창들은 지금 거의 도시에 나와있다.
내 고향은 서울, 시멘트로 대충 길을 만들어 놓은 산동네. 주로 흙은 화분에서만 보고 자랐다.
우리 집 베란다에 기다란 화분이 두 개 있다. 아이가 언제 씨를 뿌려놨는지 알 수 없는 초록 쌈채소 같은 게 손바닥 만하게 잎을 뻗었고 다른 화분 하나는 비어있다. 그런데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씨앗농부학교가 열린다기에 신청했다. 개인 텃밭과 공동 텃밭 활동을 통해 건강한 먹거리, 생태적 실천을 함께 하자는 프로그램인데 이상하게도 하고 싶어졌다.
무엇을 기르고자 하는 마음조차 없으면서 마음이 움직였던 이유가 뭘까. 호미와 장화를 고르면서 뙤약볕아래서 밭에 쪼그리고 앉아 땀을 흘리는 내 모습은 낯설기만 한데, 내가 마음대로 가꿀 수 있는 작은 땅을 생각하면 설렌다. 내게 주어진 땅에 무엇이 뿌리를 내리게 될까. 아무런 계획이 없다. 해야겠다는 의지가 앞서서 이제부터 생각을 좀 해볼까, 싶다. 밭에 가보고 엄마에게 자랑해야겠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해진다.
당연히 의외라며 무슨 마음이냐고 묻겠지. 그리고 할 줄 아느냐고, 몇 가지 잔소리를 추가로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을 심어야 할지는 아직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평소에 키워보고 싶었던 식물이 없으니 생각하는데 오래 걸릴 것이다. 아무래도 텃밭보다 내 땅이 갖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버스 타고 목적지 없이 땅을 찾아 떠도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에 품었던 꿈이 남아 있었을는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