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닛 텃밭
2024년 6월 8일 이룸학교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과 화분에 식물을 심었다.
고추, 상추, 허브, 오이, 토마토 등 길러서 먹을 수 있는 모종을 준비했다. 첫 시간에 제비 뽑기로 각자 심을 모종을 정해놓고 한 아이 당 화분 한 개씩 담당하기로 했다.
모종을 심는 날에 비가 내렸고, 수업이 끝나니 비가 그쳤다.
6월 초 날씨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기온이 높았다. 고춧잎은 쪼그라들고 누레진 잎도 보였다.
저면관수용 화분을 샀으니 물을 채워보자고 의견을 냈다. 수도가 멀어서 한참 물을 옮겨 채워놓았다.
키가 큰 식물은 지지대를 세웠다.
쪼그리고 앉아서 지지대와 식물을 끈으로 묶어주는데, 아파트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두 분이 화분 쪽을 한참 바라보고 서 있었다. 창문을 닦을 걸레를 들고서 화분에 무엇을 심었는지 찬찬히 살피는 듯했다.
그러다 얼굴이 마주쳤다.
"고생이 많네요. 화분 관리하느라."
"네, 고향이 시골이세요?"
도시에서 고추 모종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고향에서 밭농사를 짓던 일을 떠올리곤 한다. 그땐 힘들었을 텐데 아파트 사이에서 본 작은 텃밭은 과거를 추억하게 한다.
"맞아요. 그런데 고추를 너무 촘촘히 심었네. 토마토도 더 무성 해질 텐데, 공간이 없어."
"그렇죠? 화분에 남은 모종을 다 심어버려서 그런가 봐요. 나중에 좀 크면 옮겨 심죠, 뭐."
모종을 심은지 2주 남짓되었는데 아직 걱정이 가시질 않는다. 좀 더 자라야 마음이 놓일 테지.
90cm, 120cm 지지대를 세운 만큼 잘 자랄 수 있을까?
90cm 지지대 50개, 120cm 20개를 사면서 너무 많은가 싶었는데, 꽂다 보니 다 써버렸다. 오이 모종 몇 개가 누워있었는데 지지대에 연결시켜놓으니 달라 보인다. 지지대에 기대어 맘껏 자랄 것만 같다.
마른 고춧잎을 본 선생님이 페트병에 영양제를 넣어, 뚜껑에 구멍을 뚫고 면봉을 꽂아 링거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밤늦게 시들시들한 식물에 링거를 꽂아주었며 카톡방에 소식을 전했다. 물도 듬뿍 주고 왔다고.
우리도 영양제를 챙겨 먹어야 할 것 같아요, 한 선생님이 말했다. 우리가 시들시들하다고 대답했다.
일하고 나면 카페인을 찾아 마시며 흐트러진 정신을 붙들곤 한다. 얼마가지 못해 물먹은 휴지처럼 풀어지곤 하지만.
식물처럼 올곧은 지지대가 내 옆에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 끈으로 꽉 묶어서 엇나가려 해도 빠져나갈 수 없게 단단히 잡아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지지대에 매달려 지칠 때 영양제도 보충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 돌아 돌아 어차피 그 길로 갈 것이면 이제 그만 방황하고 싶다. 다른 길로 가보고, 경험하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지만.
부디 내일은 모두 건강하게 만나요.
식물도, 우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