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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챠 Jun 19. 2024

씨앗을 뿌렸지만 잎은 몰라

잡초전쟁

텃밭에 다녀온 뒤, 내 밭 이름을 정글 텃밭이라고 지었다. 잡초가 빼곡히 자라서 내가 심은 모종이 무엇인지 가까이 들여다봐야 겨우 알 정도였다. 잡초는 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반기는 사람도 없는데 쭉쭉 뻗어나갈까.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서 햇볕에 말려야지, 뿌리가 흙에 붙어있다면 기어코 자라날 것이다. 우리는 뭉뚱그려서 잡초라고 부르지만 엄연히 이름이 있는 식물이기는 하다. 그런데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내가 심은 것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제거하는 것뿐이다. 

선생님이 잡초 설명을 할 때 '명아주'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명아주 줄기는 지팡이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고. 무쳐서 먹기도 한다지만, 식물을 구별하는 눈이 없는 내 눈에는 잡초가 반갑지 않다.



내 밭 위치는 수돗가와 가장 멀고, 가장자리에 있어서 잡초로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내 밭 옆자리 밭 지기는 진작 발길을 끊었는지 유독 잡초가 많이 자랐다. 나와 그 사람의 밭 사이에 길이 있었는데 잡초가 다 점령해 버렸다. 나는 지지대라도 있지, 그 사람 밭에는 지지대도 없어서 더 구분이 가질 않는다. 

손을 놓으면 더 이상 안 될 것 같아서 아침 요가를 끝내고 대충 밥을 챙겨 먹고 밭에 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할 지경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모두 다 뽑아야 한다. 날이 더워서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렀다. 고추 모종 앞부터 차례로 뽑았다. 뿌리까지 깔끔하게 뽑으면 좋았겠지만 우선 내 모종이 보이도록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지지대를 중심으로 나머지는 다 뽑자.

뿌리는 내가 설 자리가 확보되면 깨끗이 뽑기로 하고 두 손으로 잡초를 뜯어냈다. 주변에 아무도 오질 않아서 다행이었다. 

시작 자리부터 끝까지 뽑아냈더니 내가 지나갈 자리가 생겼다. 가장자리에 줄기가 얇고 잎이 자잘 자잘한 잡초가 보였다. 내가 뽑아낸 잡초와 전혀 다른 모양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뽑아냈다. 

그런데 뿌리가 주황색이다. 당근이었다.

당근 씨앗을 얻어서 한 줄 뿌려 놓았는데 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마트에서 본 당근은 주황색 뿌리에 두꺼운 초록색 줄기가 잘린 모습이 전부였다. 내가 당근 잎을 본 적이 있던가.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처음에 만들어 놓았던 고랑과 이랑은 모두 잡초가 뒤덮였으니 어디까지가 내가 가꾼 밭인 지 구분도 되질 않았다. 

아니다. 잘 생각해 보니 너무 더워서 당근 씨앗을 뿌렸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 거였다. 싹을 틔울 거라는 생각도 못했을뿐더러, 모종 14개도 감당 못하는 초보에게 잡초 제거는 어려운 과제였다. 지지대를 세울 때 씨앗을 뿌린 자리에 싹이 올라왔는데, 당근 싹인지 잡초인지 구분이 되질 않아서 그냥 두기로 했었다. 조금 더 크면 당근 싹과 잡초가 구분이 갈 거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는 구분하지 못했다.



당근이 얇지만 길게 자라고 있었다. 이 정도면 잘 자란 건지 기준점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색깔이 마음에 들었다.

미안해졌다. 물도 안 주고 잡초와 뒤섞여서 겨우 뿌리내리고 살아남았는데, 뽑아버리다니 너무 했다.

초록색 사이에 주황빛을 보니 참 예쁘다. 사진을 찍어 놓았다. 한 번에 4개를 뽑아버렸네.

이윽고 나는 땅을 팠다. 그리고 4개를 같이 묻어 주었다.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자라주면 좋겠는데. 눈을 돌려보니 당근이 여기저기서 잎을 길게 뻗어가고 있었다. 



사방이 잡초로 둘러 쌓인 내 정글 텃밭.

이만큼 정리하기를 한 시간 정도 쓴 것 같다. 지지대 아래 땅이 짙어진 건, 물을 주었기 때문이다. 

잎이 말라가고 있었다. 특히 오이와 토마토. 길게 뻗어 내 키만큼 자랐는데 축 늘어져 버렸다. 줄기와 지지대를 붙잡고 끈으로 묶어놓았다. 축 처진 줄기를 끌어당겨서 끈을 친친 감고, 곁가지는 몽땅 잘라냈다. 

마지막으로 물을 듬뿍 주고 사진을 찍었다.


다음번에 왔을 때 내 노력이 무색하게 자라있는 잡초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아마 뿌리가 남은 잡초가 많으니 당연하다는 듯 잘 자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끌어당겨 세운 줄기가 물을 머금고 스스로 지지대를 감았으면 한다. 줄기가 자꾸 힘없이 떨어져서 꽉 동여맸는데 물어볼 데가 없으니 내 방법이 다소 어설프고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손가락 굵기로 줄기를 잘 키워갔으니 어쩌면 힘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지지대에 기대어서라도 잘 자라줬으면 좋겠는데, 오늘 35도까지 올라갔다는 말에 불안하기만 하다. 비라도 흠뻑 내리면 나아지려나. 조그마한 땅 하나 관리 못하는 사람이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말을 할 순 없지만 조금 덜 더웠으면 좋겠고 시원하게 비가 쏟아졌으면 좋겠다. 땅 속 깊이 물이 스며들고 나면 내 마음의 짐이 덜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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