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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챠 Jun 27. 2024

텃밭을 노리는 누군가가 있다.

아파트 공동 화분 



아파트 안에서 화분에 모종을 심으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사람'이었다. 누군가 특정해놓지 않았지만 사람, 불특정다수가 우리를 경계하게 만들었다. 

어느 동네 길가에 화분을 늘어놓고 키우는 모습을 보다 보면 '손대지 마세요'라는 경고문이 종종 붙어 있다. 카페에서 노트북이나 고가 기계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나라이지만 식물은 예외다. 국립공원이나 공원에 산나물, 열매 채취 금지 현수막은 찾아보기가 쉬운데 현수막 뒤에 쪼그리고 앉아 산나물을 캐거나 밤을 줍는 사람도 잘 보인다. 

얼마 전 SNS에 시골살이를 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동네 주민들에게 자신의 텃밭에 있는 농작물을 먹으라고 했다가 모두 다 뽑혀나갔더라며 올린 글을 읽었다. 댓글에 정확하게 1개, 2개를 정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내용이 있었고 한 사람에게 농작물을 허락한 순간, 내 것이 아닌 게 되어버린다는 의견도 있었다. 허락받고 농작물을 가져간 사람이 지인까지 데리고 와서 하나 둘, 가져가버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흙 담아 놓은 화분을 걱정했고, 모종을 심은 다음에는 모종을 걱정했다.

아파트 화분에 심은 모종은 가지, 오이, 고추, 상추, 허브 등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일부러 아이들과 팜파티를 하기 위해 고른 거였다. 그러니 누구나 따고 싶어 하지 않을까. 

지나가던 아기가 무심결에 똑 따버리면 어쩌지. 

어른들이 먹으려고 가져가면 어쩌지.

큰 아이들이 장난 삼아 망쳐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자리이고, 계속 지켜볼 수도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모종을 심은 날, 아이들은 안내판을 만들었다. 우리가 만든 텃밭이니 눈으로만 봐주라고, 절대 손대면 안 된다고 각자 쓴 안내판을 화분 따라 줄지어 붙여 놓았다.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안내판을 보고 안심하고 돌아갔다.

한 손에 잡혔던 모종은 120cm 지지대를 따라잡을 만큼 키가 컸다. 작은 두어 장 잎만 자란 상추도 쌈을 싸서 먹어도 될 만큼 잎이 커지고 여러 장 달렸다.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오고 잦은 비가 내렸다. 이제 상추 몇 장은 따야 하지 않나, 싶을 만큼 자랐다.

또 비가 내렸다. 흠뻑 비를 맞았으니 괜찮으려나, 식물 생각이 났다. 쓱 둘러보고 가려는데 상추가 이상하다.

상추 대는 있는데 부드러운 잎은 찢겨 나갔다. 벌레가 먹었다면 둥그렇게 파먹은 구멍이 있을 텐데 대만 남기고 뜯긴 모양이 좀 이상했다. 이건 벌레가 한 것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상추 여러 장이 모두 뜯겨 나갔다. 가지 잎사귀도 일부 뜯어져 나갔다. 이상하다.

함께 화분을 돌보는 선생님에게 슬쩍 물어봤다.

"선생님, 혹시 오늘 화분 보셨어요? 상추 잎이 뜯겨 있어요."

"네? 어제 봤을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화분을 보러 나갔다. 

"이렇게 뜯어먹은 건 새가 그런 거예요."

우리가 간과했던 새가 말썽을 일으킨 거라니.

우리는 맛도 못 본 상추의 여린 잎은 새가 맛있게 잘 먹었다. 아마 사람의 눈을 피해서 파티를 벌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야금야금 다 먹어 치웠다.

나는 대체 누굴 위해 모종을 고르고 심었던가. 

급한 대로 상추 위에 빨래망을 뒤집어 씌웠다. 지나가던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다가온다.

"왜 씌우는 거예요?"

"새가 상추를 다 먹어버려서 못 먹게 하려고."

"새가 빨래망 틈으로 들어와서 먹으면 어떻게 해요?"

"아마 한 번 들어오면 못 나갈걸."

"새가 갇힐 텐데요!"

"그럼 새 한 마리 잡는 거지, 뭐."

설마 내 말을 진심으로 알아들은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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